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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증언자료

“잊아버리면 절대 안 된다”

“잊아버리면 절대 안 된다”

임정자

  • 년도
  • 나이
  • 내용
  • 1922년
  •  
  • 경남 진주에서 출생
  • 1926년
  • (5세)
  • 부산으로 이주
  • 1938년
  • (17세)
  • 부산 인근지역에서 만주로 연행
    8년 동안 대만, 홍콩, 해림, 대련, 상해, 하얼빈 등 여러 지역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
  • 1945년
  • (24세)
  • 해방 후 해림 부근에서 김○○와 반 년여 동안 동거
  • 1946년
  • (25세)
  • 평양 피난소를 거쳐 부산에 도착, 충무에 정착
  • 1958년
  • (37세)
  • 마산으로 이주
  • 1996년
  • (75세)
  • 일본군 ‘위안부’ 등록
  • 2004년
  • (83세)
  • 경남 마산에 거주

부산 위치 →해림 위치 →부산 위치
- (임정자는 해림 외에도 대만 위치 , 홍콩 위치 , 상해 위치 , 하얼빈 위치 등지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으나, 이동 경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좋은 음악만 나오면 춤이 나오고, 전에 그거 나오는 전축이 있었거든. 나, 나는 그게 낙이라. 친구들 오면 전축 틀어 놓고 춤 한 번쓱 치고 노래 부르다 놀다 가고 지금도 좋은 음악 나오면 가만-히 누워서 감상 안 하나.
“음악 좋아합니다. 노래도 슬픈 노래, 비극 긑은 거 좋아합니다. 희극은 안 좋아합니다. 테레비 연속극 비극 긑은 거 나오면 얼매나 좋아한다꼬. 메느리 나와 갖고 시어머니 서러움 받는 거, 결혼해 가지고 살다가 시가 가서 압제 받고 버림 받아 쫓겨나는 그런 것도 좋고, 와 그리 비극이 마음에 들대.
“나가 외로와 그라는가 꽃도 그리 좋아하거든 … 꽃도 좋아하고.
“내가 우짜다 이리 늙었는가 싶으다. 나이 많아도 마음은 젊은 마음이지. 내 몸이 인제 말로 안 들어. 나[이] 먹고는 몬 이기는 기라. (한숨을 쉬며) 아이고-.
“이래 마음이 서글프네예. 작년꺼지는 안 그렇더만은 올해는 그리 서글픈 마음이 많이 듭니다. … 마음이 자꾸 슬플 때가 많애예. 누구 보고 하소연도 몬하고.
“내가 죽으면 몽달구신 될 끼다. 결혼을 해 봤나 뭐 했노, 내가 처녀로서 팔십한 살 묵도록 늙었은께네. 내가 한이 많습니다. 내가 이 얘기할라 카면 (울먹이며) 눈물이 날라 케서 안했다. 누구 보고 얘기할끼요.

그 한 동을 맨들어 갖고 물 일라고 딱 폼 잡는데.
“졸업도 못했어요. 소학교 사학년 다니다가 중퇴했다 아이가. 생활이 고달프다 보니까 묵고 살기 위해서. 그래 내가 학교 졸업도 못하고 [고무신] 공장에 들어가서 취직을 했제.
“열여섯 무서 취직하고 한 일 년 다닜거든. 일 년 다니고 … 공장 안 나가고 어머니 도와드릴 끼라고 [집으로] 드갔지. 밥은 안 해 묵어도 물 긑은 거 질어다 주고 집안 청소나 하고 그랬지.
“내가 열일곱 살 무서 꺼끼(끌려) 갔어. 열일곱 살[이면] 애 아입니까? 한참 할무이들[한테] 어린냥 할 땐데 그때 그기 뭘 압니까? 천진난만하이 너무 어리숙했고- 뭘 몰랐어요.
“그때는 수도가 없었고 샘에 물 질러다 묵거든. 충무 주 069
각주 069)
임정자는 연행지역이 경남 충무였다고 기억하나 정황으로 봐서 연행지역은 부산 인근지역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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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그 샘 우에 천주교절(성당)이 있었어요. 바로 그 밑에 (두 팔을 벌리면서) 이만한 샘이 있었어요. 그는 공동샘인가 동네사람들이 전체 그서 물을 질어다 묵대. 물도 많이 안 나오고 쪼껜쪼껜씩 흘러내리는 기라. 그래, 뚜루박을 까루면 한 빨씩 한 빨씩 올린다. 주 070
각주 070)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조금씩 끌어올린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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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 찌룰라 쿠면(채우려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요. 그 한 동을 맨들어 갖고 물 일라고 딱 폼 잡는데, 뭣이 와서 날로 (면접자의 다리를 치면서) 떡- 이라는 기라. 등드리를 두드리대. 휙 뒤를 돌아본께 군인이라.
“일본군인이더라. 군인이 여 [어깨에] 별 달고, 칼 차고 모자 씨고.
“그래 내가 ‘누구세요?’ 이란께네, ‘아가씨, 나 좀 봅시다’ 이래. 그때 옆에 사람은 한국 사람이대. ‘왜 그라는데요?’ 이란께, ‘아가씨들 한국에서 고상하지 말고 좋은 데 취직시키 줄 낀께네 우리 따라가자’ 이기라.
“좋은 데 취직시키 줄꾸마 카드라. 아가씨들한테 해롭게 안 합니더. 우리가 공장을, 큰 공장을 채맀는데 사람 몇 사람을 더 구해야 된다 쿰서로.
“옷 맨드는 공장이라 쿠대. 그 뭐 [어떤] 일하는 거[까지] 옳게 가르켜 주나 오데. 그래, 내 [옷] 맨들 줄 모르는데 쿠니까 가서 배우면 된다 이기라. 첫 먼제(첫 번째)는 모른께네 갈켜 주는 사람 있다 이기라.
“‘안 됩니다. 나는 샘에 물 질러 와 가지고 이거 부모님 말씀도 없이 갈 수 없습니다’ 칸께, 마 무조건 추럭에 올리는 기라, 추럭에. 내 뭐 힘이 있나, 추럭에 올맀지.
“‘아이고,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우리어머이한테 말 없이 가면은 맞아 죽습니다.’ 겁을 내 가지고 막 울고 이란께네, 울어도 마 말 안 들어줘.
“강제로 두 놈이서 붙잡고 가는데 어쩔 도리가 없어요. 어머이한테 말하고 온다고 해도 안 된다 이기야. 가서 편지를 하면 된다고 이라는데 우짜끼요. 내가 뭐 남자한테 이길 수 있나. … 운전해서 실- 가삐는데. 꺼끼 가는 기지 뭐.
“그래, 꺼끼 가는데 부산까지 갔다. … 저 부산 가서 또 딴 여자들로 둘이 데리고 오대. 한 사람은 경주 처녀고, 한 사람은 저 고성 주 071
각주 071)
경상남도 고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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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라.
“부산 가서 자고 그 한날(다음날) 열차로 가대. 열차로 가는데 끝이 없는 기라.
“기차 안에서 … 요 양쪽에 남자 앉고 내 가운데 앉고. 행여 도망갈까 싶어서 그라는 모냥이지.
“자꾸 마음이 불안하고 그렇대. 이 사람들이 데려갈 때 나한테 해꼬지하러 데려가는가 이런 마음이 들고, 가기도 서뭇서뭇하고 막 기차에 뛰 내릴 마음도 있고 뛰 내리면 나 죽어삔다 아이가. 죽으면 우짜끼고, 옴마 아버지도 못 보고. 튀 나올라 하면 도주할 데가 오데 있노 기차 안인데. 아이유-.
“오데꺼지 가느냐 쿤께, 자꾸자꾸 데리고 가는데 만주꺼지 가삤어 고마.
“열차를 타고 이틀 사흘로 가는데 다리가 통통 붓더라,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까. 그때 마 아무것도 안 묵고, 점심도 안 묵고 배도 고프고 죽겄더라.

다대미

요가 뭐 하는 데냐 물 손님 받는 데라 쿠대.
“열차를 타고 내리 갖고 첨은께네에 대만을 갔다. 대만이라 쿠대. … 대만이 만주 아이가. 주 072
각주 072)
임정자는 만주와 대만이 같은 곳이라 여기고 있다. 기차로 대만을 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처음에 간 곳은 만주일대이며 이후 대만 등지의 남부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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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잡아간 사람 꼬라지도 안 보이고, … 고마 얄궂은 데 주 여삔다 이기라.
“한국인 아주머니가 일본사람이랑 통하는 갑더만은. 그 통해 갖고 그리됐던 갑다.
“요가 뭐 하는 데냐고 한께 그 있는 아가씨들이 ‘요 우찌 그리 잽히왔소?’ 그리 묻더라. 샘에 물 길러 가 가지고 왜놈들한테 붙잽히 왔다 쿤께네, ‘아이고- 우찌 하긋노. 애기 긑은 이 아가씨를 우찌 그리 데리고 갈 끼고. 아이고, 여기 몬 올 데 왔습니더’ 날로 보고 그래. 그래 요가 뭐 하는 데냐 물은께네 손님 받는 데라 쿠대. ‘손님 받는 게 뭐요?’ 일본군인들 오면 데꼬 누-자고 한다고 그리 쿠대. 아이고, 우짜긋노. 앉아 울었다. 울어도 소용있나? 울어서 목이 다 쉬고 기운도 없고. 어떻게 한국을 나갈꼬 싶으고 나갈 길도 모르고 어쩔 도리가 없어요. ‘요게 꺼끼 들어오면 못 나갑니다’ 그래, 아가씨들이. ‘우리도 붙들리 와 가지고 이리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 간께네 여자들이 두 명 있대. 또 같이 간 여자가 자야하고 모옉이 주 073
각주 073)
부산에서 같이 연행당한 두 여자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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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내꺼지 서이, 너이, 그 집 여자가 다섯이네. 다섯이서 손님 접대를 하는 기라.
“집이 일본집처럼 생깄대. 현관이 있고 마루도 일본 마루 긑대. 다대미방이고 막 그렇대. 가운데는 정원이 있고 가운데 저거방(주인방) 앞에 큰 정원이 있고 못이 있고 붕어도 키우고 꽃도 키우고. 또 저쭉 마루 앞에 방이 세 개 조로록 있고, 요쪽 청에 조로록 방이 세 칸 있고 또 현관에 들어오는데 그 방이, 아가씨들 모두 앉아서 저녁으로는 화장하고 앉아있대.
다대미방에 앉아 있은께네, 밤 된께 남자들이 놀러오는 갑더라. 놀러와 가지고 여자들을 이쁜 여자만 빼가 가는 기라. 이쁜 여자만 빼 갖고 ‘아노 온 나가 이이나주 074
각주 074)
‘저 여자가 좋다’란 뜻의 일본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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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면 내 자는 방으로 덷고 가는 기라.
“요 들어가자 왼쪽편 세 번째, 세 번째지 내 방이. 다대미방이 한 요중하이 주 075
각주 075)
요조항다다미 네 개 정도의 방을 이르는 일본말이다. 다다미 네 장은 대략 두 평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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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것더라. 방이 사각방인데, 우리 저 방만 할까. 방에 아무것도 없고 이불 뿐이라. 소지품이라 하면 조그만한 찬장 하나 놔 놓고 그것 뿐이라. 일본놈들 상대하고 하룻밤 잠만 자는데 무슨 짐을 갖다 놔 놓것노. 우리 옷 겉은 거 소지품은 주인집 방에 놔 놓고, 그 자는 방에는 아무것도 안 놔 놓는 기라.
“손님들 오면 밤중꺼지 시간도 없이 접대를 해. 그라고 인자 파티 겉은 것이 있으모 송별연할 때, 나도 기모노 입고 인력거 타고 불려 안 가나. 그런 데[서] 초대가 많이 들어오더라 나한테. 와 다른 여자들은 안 하고 내만 자꾸 불러대는 기라.
“다른 여자들은 일본말 제대로 모르거든, 내는 일본말로 알고 한께네. 그때만 해도 얼굴이 괜찮았던 모양이지. 화장하고 다까머리 주 076
각주 076)
기모노 입을 때 하는 일본전통 머리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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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다 올리고, 큰 머리.
“그라면 내 마 뭐 ‘도조 오아가리 구다사이주 077
각주 077)
‘잘 드세요’란 뜻의 일본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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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면서 술 부어 주고, 노래 부르라 쿠면 노래 한 곡쓱 불러 주고. 일본 오도리 주 078
각주 078)
기생 등이 추는 일본 전통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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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쿠면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오케이샤- 돈나리--’ 그 다 불러 주고. 나 노래 잘 했거든, 일본 노래. 그러니까 그게 저 마음에 들어 그랬는가 송별연만 열면 하야시 사다꼬 주 079
각주 079)
임정자는 하야시 사다꼬라는 이름 이외에도 레이꼬, 레짱으로 불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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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고 연락이 온다고. 내 본명이 하야시 사다꼰데, 그게서 부르는 이름은 레짱, 레짱이라 불렀거든.
“[인력거를 타고] 내리면 일본사람들 뺑 둘러 안 앉았나. (꿇어 앉으며) 꿇어 앉아서 이리 절 안 하나. 이리 질로(버릇이) 들어 갖고 점도록 꿇어 앉아도 다리는 안 아파요. 내 맨날 이리 꿇어 앉는 질이 들어 갖고예, 지금도 만날 꿇어 앉습니다. 무릎팍에 멍이 다 들었다 인자.
“술 묵고 나서 또 내[한테] 마음이 있으면 우리집에 와서 진 밤을 안 자나. 진 밤 자면 또 화대 받거든. 화대 받아 갖고 오데 가[지고] 가냐면 주인방에 갖다 안 주나. 진 밤 받았다 카면 아무리 딴 사람이 와서 시간빼기로 놀다 갈라케도 못 나가는 기라. 하룻밤 잘 때까지 그 방에서 있어야 되는 기라. 소변하러 갈 때나 대변하러 갈 때나 나가지, 못 나가는 기라. 저거 기분 맞춰 준다고. 그런께 그 집에서도 내가 손님을 끌고 인기가 있고 잘 하니까 딴 데로 안 보낼라고 안 하나, 우리 주인이.
“안 보낼라고 하지만은 자꾸 날로 딴 데로 덷고 오라고 연락이 오는데 안 보낼 수가 없는 기라.
“‘하야시 사다코는 저 딴 데, 딴 나라로 가야 된다’ 쿠대. 같이 간 여자는 안 데리고 가는데 내만 데리고 가대, 내만 데리고 가.
“딴 데서 자꾸 오라고 연락이 오대. 똑- 가면 주인집에 돈을 안 주나. 그 여자 보내라고. 화대비를 안 주나. 나는 안 가면 안 되는 기라. 나는 주인 명령에 사니께네. 좋아도 가고 궂어도 가고 저거 하라 쿠는 대로 안 하나. 내 몸 가[지고] 내 맘대로 몬 한다 아이가. 매인 몸이 돼서 내 꺼끼간 죄로서.

‘기브스’

저거 기분 안 맞춰 줘 봐라. 여자를 두들겨 패고 그란다 아이가.
“해름 주 080
각주 080)
중국 흑룡강성 해림(海林)시라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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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덷고 가대, 해름을.
“중국사람도 살고 애놈(왜놈)들 부대도 있고, 부대가 여러 군데 있대.
“그래 덷고 가 가지고 그 ‘다까사코노 이에 주 081
각주 081)
해림 위안소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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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다.
“그 드간께 아가씨들 많이 있더라. 그래 가는 날 저녁에 내 방을 이층을 주대, 침대방이대.
“그서 누- 자고 주인집에서 밥 해 주는 거 묵고, 아침에 일나면 점도록 손님 접대하는 기라. 아침에서 저녁까지 새벽까지 계속하는 기라. 중국인들도 오는 기라, 군조꾸(군속)라. 군조꾸들이 와 가지고 시간빼기로 하고 가는 기라. 파딱파딱하고 가는 기라. 그래 인자, 돈을 주면 돈을 받아 주인한테 갖다 주면 포(군표)를 내주대.
“인자 몇 호실 몇 호실에 아가씨가 돈을 얼마치 받아 왔다 쿠면 포를 받고. 그래 딱딱 모아 놨다 아이가. 포를 딱딱 모아 놔도 나는 돈을 한 푼도 안 주는 기라. 주인이 다 묵는 기라.
“목욕 갈 때나 조께 주고 외출 갈 때 뭐 산다 쿠면 조께 주고 그 뿐이라. 돈도 못 버는 기라, 못 벌이요.
“에이고- 우째 무작한 짓을 해서 돈을 다 모을꼬. 그 돈이 다 악으로 나간다. 넘의 살로 판 돈이 뭐이 좋을 것고. 그 할망, 그 여자 죽었을 끼다. 그때- 그 여자가- 사십 살 됐었는데 죽었지 뭐 살았나. 뒤졌을 끼다.
“일본군인들 무자낍니다(무지막지합니다), 무자끼. 여자들 생각합니까 오데? 저거 기분만 만족하면 그걸로써 그만인데. 저 기분 안 맞춰 줘 봐라. 여자를 두들겨 패고 때리고 그란다 아이가. 또 술 처묵고 오는 거는 자는 여자를 던지 삘고. 그런 것 보면 일본사람들 악질이라. 독해, 그 보면. 내 그리 이팔 병신 안됐습니까. (오른쪽 팔을 좌우로 돌리며) 이 팔 요리요리 돌리면 아파.
“침대[에] 딱 이리 누 자는데, 어띠 피곤한지 잠이 들었는지 모르는 기라, 누가 들어와도. 문도 안 잠구고 자는데 [일본장교가] 딱 날로 멕살로 잡아서, 이층이거든. 밑에다 던지삤어.
“탁 던지삤는데 내가 케오 돼 갖고 팔로 다 빼가 뿌러졌어요.
“아이고, 아파라, 아파라. 이래 [어깨를] 쥐고 내려와서 ‘어머이, 주 082
각주 082)
임정자는 위안소 주인을 어머니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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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인이 날로 이층서 던지서 아파 죽겄다’ 쿤께 어머이 나오더만은 뭐라 쿠대. ‘내 부대에 연락해서 니 잡아 여라 쿠끼다’ 쿤께, [장교가] 겁을 내 가지고 [부대로] 갔다. 그 뒷날 또 술에 취해 와 가지고 ‘아, 다까사코노 이에 온나 오데오니뽄지기다까나?’이라고 들어오는 기라. 일본말로, 이 집에 여자가 내가 던지서 팔이 부러졌담서. 그래, 옴마가 튀- 나와서 어서 우리 아 팔 곤치라고 삼서(하면서) 우짜겠노 말이지. 그래, 병원에 덷고 가라 카면서 돈을 주더라 카드라.
“여름인데 (오른쪽 어깨를 가리키며) 여까지 기브스를 해 논께, 한달 보름 만에 기브스한 거를 뜯어낸께네 숭시러버서 몬 보것더라. 아이고- 땀띠가 나가지고예 헐어서 엉망이고 머리도 빗기 주고 밥도 떠믹이 주야 묵고 아무것도 몬해요. 방에서 꼼짝없이 이래가 앉아 있는 기라. 손님 접대도 못하고 오로지 앉아서 얼마나 고생이 심한지. 내 혼자 주인방에 누워 가지고 밥 한 숟가락 갖다 주면, 그것도 떠믹이 줘야- 떠믹이 주는 밥 배도 안 부르더라. 그때 한참 묵을 때 아이가. 배도 많이 곯고.
“지금도 일나면 이 팔이 아픕니다. 어제도 [병원] 원장[이] [나]보고 대기 (매우) 피곤한 데가 어디냐 쿤께, ‘이 팔입니다’[그랬다]. 그런 말 주 083
각주 083)
장교에 의해 다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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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나. 내가 넘어져 갖고 다칬다 그랬지. 그래 약을 주고 주사를 맞고 진정이 되긴 됐는데 이라다가 며칠 있으면 또 아픕니다.
“보이소, (오른쪽 어깨를 보이며) 요 빼가 안 다릅니까? 옷이 자꾸 이리 내리간다. 그래서 내가 골벵이, 벵신이 다 됐어요. 이 누가 알긋노.
“참-- 하느님 아버지가 나를 돌봤어. 살은 게 기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또 후리모

내 사지가 다 째지 갖고 말로 몬하요. 열일곱 살 얼라 아이가.
“그리 어린 것을 그란께 째지는 건 사실 아니요. 606호도 맞고 그리했다, 병원에 가서. 그때는 그 중국 병원인갑더라. 그 가서 치료를 받았어.
“병은 걸리는 거 없어요. 항상 건강해요. 일주일에 한 번쓱 그 검사를 하는 데, 병이 있나 없나. 그 참 부끄럽더라. 그 남자가 검사를 하는데 딱 누서 기계를 넣어 가지고 벌리보고 그라대. 뭐 바이도쿠, 매독이 있는가 그거 볼라꼬. 그 군인들 병 옮아 놓으면, 뭇 사람 상대를 하니까 병이 걸릴까 싶어서 검사를 하거든예, 군인들 땜에. 첫 먼저 그 열일곱 살 무 가 가지고 남자 상대를 하는데 사지가 피가 나고 째지 가지고. 요또 후리모 주 084
각주 084)
노란색의 소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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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고 그거 바르면 잘 낫아요. 606호도 많이 맞았고 병 안 걸릴라꼬. 그래 약 발라 가지고 아파도 또 상대를 해야되니 죽어나는 기라. 마 아픈 기라. 에이고 에이고 기가 찬다.
“일본군인들 병 오를까 싶어서 염려를 많이 한다.
“샷쿠(콘돔) 그거를 사용하는 기라. 그거 끼워 주면 아무 말도 안 하는 남자가 있고, 아- 싫다 쿠는 사람도 있다. 싫다 쿠면 그거 또 안 끼우고 상대를 하고 그리 안 하나.
“그거 끼우면 여자한테는 수월태, 새지를 않으니까. 그 호르몬 긑은 것이 딱 빠져나오니까 빼 가지고 딱 마 화장실에, 휴지통에 버리면 되지. 여자한테는 깨끗하는 기라, 빙도 안 오르고. 주로 남자한테 빙이 오르는 모양이라. 여자한테는 안 오르고. 그래가 뭐 매독도 걸리고 음질(임질)도 걸리고 그렇지. 나는 뭐 오면 매번 끼아야 된다고 안 끼우면 당신 병 오른다고. (긴 한숨을 쉬며) 에휴- 에이고 그 묻지 마라 인자 마. 괴롭다. 쯧- 말해봤자 그 말이 그 말이지.
“임신한 여자는 내 못 봤다. 그리 되면 임신한 여자들 있을 거야. 나는 그리 당해도 임신 같은 거는 안되더라. 이상하다. 너무 남자 접촉이 심해서 그렇는가.
“뭐 임신했더라도 [아기를] 살짝 버맀삐면 오데 아나. 이 개월 삼 개월만에 그랜 사람은 떠루는 사람도 있고. 이 개월 삼 개월만에 병원에 가서 주사 맞으면 아 떨어지는 갑대. 그때는 뭐 생길라 카는 핏덩어리 아이가. 너무 들어차면 또 안 되고, 한 삼 개월, 사 개월 되면 주사를 낳아 갖고 떠루는 거는 봐도 놓는 거는 없다. 그서 낳아가 어찌 될 것고. 그 애기 놓으면 어찌 되노.
“아이고, 저리 되면 자슥을 생기는 거로 낳아가 키아야 되는데 입장이, 그런 입장이 돼 논께 놓지도 못하고 손님도 못 받은께네 죄를 많이 짓지 그란께. 그 새끼 낳아 봐야 어느 애비 자식인지 아나, 여러 사람을 상대를 한께네. 누가 아버진지 분간할 수 있습니꺼?

죄인 취급

마 죄인이나 한 가지지. 죄인도 그렇게는 안 할 끼다.
“팔 년을 있어도 한 군데만 안 있었소. 주 085
각주 085)
임정자는 연행 당한 17세 때부터 귀국 전 24세까지 대만, 해림, 상해, 홍콩, 대련, 하얼빈 등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8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닫기
자꾸 이리 덷고 다니고 저리 덷고 다니고 그라대요.
“그래 당해 가지고 딴 데를 또 데려가대. 죄인매로 꺼끼 대니는 기라.
“해름에서 어딜 또 일본군인들이 데리고 가는데 그 천막을 쳐 놨대.
“천막을 쭈욱 쳐 놓고, 천막이 하여간 길더라. 한 오 메다 더 넘겄더라.
“천막을 쳐 놨는데 칸칸이 칸칸이 침대가 있어요. 한 칸 한 칸, 한 사람 잘 거 다 여 놨어. 침대가 한 열 갠가 놔 졌더라. 그래 그 안에 드가라 쿠대. 그래, 드갔다 인자. 안 드가면 맞아 죽을 낀데 우짤 것고, 겁이 나서. 드간께네 그서 저녁을 묵고 앉았은께네 화장하라 쿠는 기라. 화장하고 앉아 있은께네 왜놈들이 총칼로 차고 착착 들어오대. 여자들이 열 명 앉았은께네 ‘아노 온 나가 이이나’ 쿠면서 탁 덷고 드가. 침대로 가는 기라. 가면 저거 하자는 대로 말로 들어야 된다. 그리 안 그라면 죽을까 싶어서 겁이 나 갖고, 그때만 해도 암퇴 가지고 너무 어졌어요 내가. 저거 하자 쿠는 대로 내 몸을 다 육체매로 이용할 대로 다 하고 그리 간다.
“지 말 안 들으면 [손이] 탁 올라가고 탁 올라가고, 두드리 패 놓고 나가삔다꼬. 두드리 패면 마 [내가] 이로 가 끅끅 물어 씹는다. 이놈의 다리를 물어 뜯고 그라면 ‘아, 이따이(아프다) 이따이’ 이 지랄한다. 그라면 딱 [손이] 또 올라오고. 힘이 있나? [그래서] 이빨로 물어뜯는다. 그런께 내 [지금] 이빨로 쓰도 몬 하는 모냥이라. 나도 나이 들면(드니까) 그런 용기가 들대, 고마. 오래 있고 한께네.
“밤낮으로 눈만 뜨면 군인들 상대지. 밖에 나가도 못하는데. 멫 년 동안을 그리 곤혹을 당하고 살았는데 오데고 갈 낍니까. 마 죄인이나 한 가지지. 죄인도 그렇게는 안 할 끼다.
“부모가 보고 싶어 걱정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고, 못 묵는 술로 빼갈도 다 무 보고. 빼갈 얼마나 독하노? 빼갈 그 한 잔을 무면 어찌 그리 눈물이 많이 날꼬, 고향 생각도 많이 나고. 넘 몰래 화장실 가가 다 울어 보고 뒷모퉁이 가 다 울어 보고. 참- 내가 우짜다가 그리 걸리가 고상하는가 싶으고. 내만치 고상한 사람은 없을 끼다.
“오데 도망을 가고 싶어도 갈 데도 없고 도망 갈 길도 모르긋고, 만주꺼지 해름꺼지 꺼끼 왔는데 우찌 알고 빠져 나갈 끼고. 참- 막막하대예.
“내가 너무 몸이 피곤하고. 그 짓을 어찌 하요. 하룻밤도 아이고 매일매일 그 짓인데 낮이나 밤이나. 기계도 자꾸 지름을 쳐야 되는데 지름을 안 치고 자꾸 써 재치니 그 고장 안 날 것가.
“하루 십 명을 상대를 하는데 몸이 배기나겄어요? (면접자를 가리키며)
아가씨 긑으면 죽는다. 난 그만치 몸이, 기대(기운)가 좋았다꼬. 산에 마 뛰어올라갔다 내리갔다 해도 피곤한지 모르는데 뭐. 나 뛰기운동을 하면 아무도 몬 잡소. 이제 골벵이 들어서 안 되는 기라. 내 담배그릇 오데 있노. 한 대 피웁시다.
“주여--.
“내가 이제 고마 홧병이 나는갑습니다. 마음이 안 편한께네. 담배를 끊었다 새로 푸요. 담배가 내한테 안 좋아예. 기관지가 안 좋거든예.
“내 몸이 정상이 아인데 담배 피아가 되긋나? 화가 난께 고마 담배를 피고 피고, 담배가 늘어 갖고 이리 몬 끊는다 아이가. 병원에 가면 의사들은 ‘담배 피지 마세요’ 하지만, 말은 쉽게 하지만 나는 한이 내 안에 씌이 가 있는데 오데 풀 데가 있습니까.

하데나까 주따이조

지금도 그리 생각이 난다, 그 사람.
“그리하다가 인자 장교들이, 일본장교들이 그 부대가 그서 한 십 리나 되거든요. 부대가 있어요. 밤이 되면 나오는 기라. 내한테 오는 사람은 하데나까 주따이조라. 젊은 사람, 스물네 살 뭇써요.
하데나까 주따이조가 몸을 그리 많이 생각해주대. 마, 오랫만에 전장터에 있으면 여자 생각도 안 나긋나? 그것도 없어요. 날로 그만큼 생각을 해 준다. 다 저거 가정집에 동상들이 있고, 이모또(여동생) 생각이 난다꼬. 우짜다가 레이꼬상이 이리됐냐 쿠고 오면 눈물을 흘리고 그라대. 그래 같이 울면 ‘사다꼬, 나꾸나요(울지마). 나꾸나요.’ 지도 울고 나도 울고. 날로 얼라. 이 이쁘게 해 주고 사랑 많이 받았어요.
“[나를] 그리 재울라 애를 씨대. ‘내무리나사이오. 하이, 사다꼬. 내무리나사이오.’ 주 086
각주 086)
사다꼬, 잘 자요’란 뜻의 일본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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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많이 했다 쿰스로 날로 애기매로 재우는 기라. 딱- 내가 새북에 누 자면 살째기 일나 가지고 베구(베개)로 우에 본께, 재떨이 밑에 본께 뭣이 있대. 뭣인고 본께 돈을 딱 넣어 놓고 갔더라. 화대비인 모냥이라. 그 놔 놓고 가는 기라. 화대비를 내놔야 내가 주인을 갖다 줄 거 아이가. 내 방에 잤신께네.
“그란께 정이 더 들고, 그자? 내 몸을 애끼 주고, 생각해 주고. 한국에[서] 와서 욕 본다 쿠고, 우찌 이런 데 끌맀느냐 쿠고 그리샀더라. 가와이소다, 불쌍타 이기라. 꼬옥 일주일마다 한 번쓱 그리 오대.
“그래가 인자 한가할 때 편지가 오는 기라. 레이꼬상, 몸이 많이 고달프지, 불쌍한 여자다 이라면서 이런 데 꺼끼가 와 가지고 곤혹을 당하느냐 삼서 한국땅에 무슨 땅에 살았느냐 묻고. 그 편지 받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한 일 년쯤 넘은께 부대에서 아- 하다나까 주따이조가 전사했다 쿠대. 내가 앉아 울었다. 그래 주인 아주머니가(한테) 그 면회 갈 수 없느냐, 하다나까 주따이조 마지막 가는 길에 가볼 수 없나 이런께, 부대 안에 몬 드간다 쿠대.
“하-- 하데나까 주따이조를 내 오데 가서 보겠노. 먼 발치에나마 서서 기도나 해 주라 이기라.
“그래, 못 가봤다. (눈물이 글썽이면서) 먼 발길에서 저어- 나가는 것만 봤지. 안됐더라. 일본 동경서 온 사람이라 하다나까 주따이조가 … 이름도 안 잊아 뿌고 계급도 안 잊아 뿠는데.
“다-- 죽어서 썩었을 끼다.
“지금도 그리 생각이 난다, 그 사람.

만남, 그리고 헤어짐

한 오 개월을 살았는갑다. 참 재미나게 살았어요.
“내 누- 자는데 총소리가 똥똥똥똥 나대. 일나본께 뭐 아무도 없고, 주인 여자 혼자 있대. ‘옴마, 다 오데 갔노?’ 한께, ‘전부 다 피난갔다. 니 와 그리 어적거리노?’ 내가 좀 꾸물대거든. ‘옴마 오데로 가야 되노?’ 한께, ‘할 수 없다. 저 해름 쪽으로 나가야 된다.’ 그리 나가면 우짠다고. 우찌 살꼬.
“피난해[서] 일본놈들[한테] 쫓기가 해름으로 온께네, [그 동네 아주머니가] 좋은 데 재혼(결혼)해라, 재혼해 살면 일본놈들 다신 안 온다 이기라. [아주머니 소개로] 재혼을 해 본께네, 그 사람도 조선존(조선사람)데 조껜할 때 일곱 살 무서 중국땅 왔다 쿠대. 이름이 김○○이라. 주 087
각주 087)
임정자는 김○○씨와 중국에서 같이 생활한 것을 ‘재혼’이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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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착하고 참 좋대예. 전장만 아니라도 그 남자[하고] 중국[에서] 살았을란지 모른다, 중국사람 돼 가지고.
“그래 고서 한 오 개월을 살았는갑다. 참 재미나게 살았어요. 그때는 말만해도 잘 웃고, 나이 젊어 놓으니까, 방구만 끼도 턱 웃고. ‘왜 자꾸 웃어요?’ 날로 [보고] 이리샀고. 우찌 그리 우습는고. [그 사람이 나보고] ‘많이 웃으세요. 젊은 땐 웃음이 많이 난다’ 그리샀고.
“그러다 한참 있다가 [김○○이] 군대에 잽히갔어, 839부대 잽히갔어. 839부대[에] 옆집 아주머니하고 찾아간께 그 안 들어왔다 안 쿠나. 안 가르키주대. 죽었는지 살았는지 오데 알아볼 길이 있나? 그리 보고 싶다 내가. 남자 잘 생깄어요, 얼굴 넓-적하이. 아이고- 들어오면 ‘여보’이라고 들어오고.
“그래 혼자서 뭐 그 사람 집에 돈이 안 있나. 그거 갖고 혼자서 [밥을] 낋이 묵고 있은께 저 우에 [동네 사는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대. 맘씨 좋은 아주머니 예언니(의언니) 삼았는데, ‘동생아 울집에 온나. 오늘 찰밥 해서 같이 묵고 놀고로. 우리 영감쟁이 나가고 없다’ 그라샀대. 그래, 그리 안 갔나. 그 놀러 가 가지고 전쟁이 터져 가지고 집에 몬 들어와 보고, 바로 그 집에서 튀나가 산을 타고 그래 피난소에 내려갔어요.
“총소리 나고 직일라 쿠고 난리대. 그라고 피난을 안 갔나 고마, 그 언니하고 나하고 둘이서. 어데라꼬 뛰간다꼬 간 기 시-커먼 논이 나오는데 얄궂은 신을 신고 가 논께 신이 뻘 구디(구덩이)에 되기 빠져 가지고 어찌할 수가 있습니까. 맨발로 뛰갔다 아이가. 산을 올라가는데 가시덩굴에 발도 찔리고 피가 나고. 아이고- 참 멘스는 나와샀제- 아래 찰 거는 없제 옷은 그대로 입고 나왔제. 마 여기 요가(사타구니쪽) 씻기인께(헐어버리니까) 막 아프고 그렇더라. 물이 묵고 싶으면 산에 물 졸졸졸 내려오는데 손으로 받아 묵고, 어떤 아주머니는 막 아를 목을 쫄라 죽이고, 저거 살라꼬. 아 우는 소리 들으면 막 저 저 839부대에서 알고 잽히 안 가나. 아 우는 소리가 얼마나 밤중에 요란하게 듣기노. 그래 갖고 산에서 근 한 달로 저리 숨고, 이리 숨고 말도 못 합니다. … 목욕도 하고 싶고 갑갑해 죽고 싶고.
“얼굴이 지금보다 몬해. 씻을 데나 있나? 총 안 맞을 끼라고. 에이고 무시라 무시라. 내 중국땅이라 쿠면 진절미가 난다. … 나 고생 마이 했습니다.
“막 총소리가 나고 그래서 피난을 오데로 갔느냐 하면, 그 해름 우에 그 무슨 동네다. 아따- 오래 돼 논께 나 잊아 뿠다. 그 동네 있은께 소련군이 내려오대, 러시아. 키가 크고 눈이 새파랗고 머리가 까맣고. 무서바서 이리 숨고 샀다. 그런 사람들은 여자 해롭게는 안 해. 안 해도, 아이- 나 무섭더라. 소련이 얼마 안되는 갑더만은 소련땅까지 피난 갔다, 갈 데가 없어 가지고.
“밤새도록 기침을 해 갖고 기관지도 안 좋고. 결국 기관지가 안 좋은 거는 저 만주서 피난 나올 때 그때 기관지가 걸렸어. 산에서 누 자는데 추버 갖고. 기관지가 걸린 지 오래 돼 논께 이제 잘 낫지가 않는다, 안 낫아. 이 큰일났어.
“그래 내려와 가지고 피양(평양) 피난소 내리오대. 그 빈대는 무신 그리 많애요, 여름이라.
“피난민들이 한- 오십 명 됐다, 여자 남자 할 것 엄씨. 피앙 피난소로 온께네, 강냉이를 받아 논 게 마 좀이 무었어. 맷돌 한 번 슬- 갈은 거를 갖고 양이 똑 (손가락 세 마디 만큼의 양을 표현하면서) 요만 밖에 안돼. 고 덩거리 주는데 한 덩거리 갖고 되나? 그거 묵고 점도록 배가 고파 똑- 죽겄더라. 에고 내 이러다 죽겄다, 우리 옴마도 못 보고 죽겄다아. 내가 죽어도 한국(고향) 가서 죽어야 될 낀데 이라다 어짜노. 피양 피난소를 근 석 달로 있었어요.
“그래가 인자 삼 개월 만에 한국(부산)으로 오게 되는데, 큰- 군함이 대어졌대. 우리 모두 그 배만 타면 부산으로 도착한다 이라 쿠대. 내가 뭘 아나? 그 사람들 가는 데만 따라갔지. … 배 안에 드간께 참- 크대, 식당도 있고 자는 데도 있고. 마 그 배를 타고 한 달로 오는 기라. 멫 달로 고생했노.

귀가

어머니한테는 얘기했어. 아버지한테는 그런 얘기 몬하것더라.
“내 열일곱 살이가?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 스물두울, 스물서이, 스물너이, 칠 년 동안. 칠 년 됐네. 열일곱 살에 갔거든.
“본께 스물네 살에 왔네. 열일곱 살에 가 갖고. 딱 스물네 살이네.
“그래, 인자 부산을 도착해 가지고 큰집을 찾아갔어. 내가 뒷문을 뜩 들어가서 고마 얄궂은 남의 다 떨어진 운동화를 주[어]가 끌고 옷이나 있나. 그 산에서 저녁마다 이슬을 맞고 산 생활을 마 근 두 달을 했제. 똑 얻어먹는 그래이(거지) 한가지라. 그래 갖고 큰집에 떡 드간께 어떤 아주머니가 수돗가에서 뭘 씻거 샀대.
“‘미안하지만은 우리 큰어머니 계십니까?’ 난 이 집에 할머니가 우리 큰어머니 된다 쿤께,
“‘그래예?’ 그래, [며느리가] 일하다 뛰들어 간께,
“‘어머니, 어머니예, 얻어 먹는 아주머닌데 걸뱅인갑십니더. 어머니 찾십니더’ 이래.
“‘눈- 고?’ 큰어머니 쫓아나오더만은 딱 이리 보더만.
“‘가수내, 우리 정자 아이가. 아이고 가수내야 니가 걸뱅이가 됐네. 와 이리 됐노? 아이고이- 쯧쯧’ 큰어매는 내 왜놈한테 끌려갔는지 모르고. 그런 소리 부끄러버서 우찌 할 끼요.
“‘어머니, 아버지 엄마가 오데로 이사 갔습니까? 먼저 살던 집에 간께네 없던데.’
“‘아이고, 너거 아배 어매 충무로 이사 안 갔나. 그래, 내일 내가 편지를 해서 너거 아버지를 내려오게 하께.’ 그래 아버지가 내려왔대. [아버지가] 큰집에 와 가지고 … ‘아이고, 새끼야. 오데 가 가지고 그리 고생을 했노.’ 아버지가 놀래 가지고 큰집에서 울고불고 초상난 집 긑이.
“어머니한테는 얘기했어. 아버지한테는 그런 얘기 몬하것더라. 동생도 모르고 다 안 했습니다, 동생한테 우찌 얘기 하긋노.
“옴마한테 말로 한께 옴마가 어찌 그리 우는지 마, 밤새도록 울었샀더라. 눈이 이리 붓고. 에이고이- 그래 [이제는] 물 질르러 멀리 안 보내는 기라. ‘그 가지 말고 요 가까운 데 샘에 [길러가라].’
“우리 엄마도 내 땜에 골벵 들고. 자식이 샘에 물 길러 가 가지고 오데 연락할 길이 있나, 오데 알아볼 길이 없은께네. 어머이가 [내 없어지고 난 후부터] 골벵이 들어가 전에 살아계실 때 본께, 만날 가슴이 두근두근 뽈락뽈락 이리샀더라, 내 땜에레. 자슥이 눈에 넣어 안 아픈 자슥이 없다 카는데, 부모 마음이 안 그렇겠어요.
“그래가 충무에 들어간께 넘이 부끄럽더라. 그래 갑자기 [내가] 나타나논께네 모두 소문에 이자, 저 집 딸은 저기 임 주사가 낳은 딸이 아이다, 아들 하나하고 딸 하나밖에 없는데 갑자기 저런 큰 딸이 나타났다고 그런 소문이 듣기(들려). 그래 샘에 물 질러 갔는데, ‘당신, 임주사 딸이 아니지요?’ 그리샀고. [내가 엄마한테] ‘옴마, 샘에 물 질러 간께네 모두 옴마가 논 딸 아니라고 그라더라’ 그러쿤께네, 어느 년들이 그리 안 보고 쓸데없는 소리하느냐고, 그년 끌고 오라고, 그래 난리가 났대예, 에이고 참-.

미련

내 족두리도 몬 써봤다. 그기 한이 되는 기라.
“연애하다가 … 한국땅 와 가지고 연애결혼 해 가지고 살았지.
“그 사람이 일본 명치대학교 나온 사람인데 성이 홍가라고. 그 사람하고 내가 스물네 살 무서 만내 갖고 서른일곱 살꺼지 살았다.
“충무서 고마 우리집에 놀러오대. 동생 주 088
각주 088)
임정자는 4남 3녀 중 장녀이며, 이 동생은 그녀와 연년생인 남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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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군데, 자주 놀러오대. 그래다가 눈이 맞아 갖고 연애가 됐지.
“내가 두 살 더 먹었어요. 사랑은 국경이 없다 안 합니까?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
“내 몸을 그서 망치가 왔는데 옳은 결혼이 됩니까? 몬하지요. 내 양심에도 몬하지요. 몸을 전신에 베리가 왔는데 우찌 내가 새처녀라고 넘을 속이고 결혼을 하겠어요. … 내 족두리도 몬 써봤다. 그기 한이 되는 기라. 저 집 딸이 먼 데서 왔다 한께네 뭐 나쁜 짓을 하고 왔다고 이해를 해서 그렇는지 [남자 집에서] 나하고 결혼 못하라고 반대를 하고 그랬어. 그래, 내 몰래 선을 봐 가지고 오데 부산에다 장개를 들었던 모냥이라. 난중 본께 장개간다고 가마가 들어오고 그리샀대. 그리싸도 사랑은 한 군데 두 군데 없는 갑대예. 내 놔두고 결혼해도 그 여자한테는 안 가대예, 만날 우리집으로 오지. 그 여자 [하고] 결국 헤어졌다 아이가.
“우리 친정서 같이 살았지. 아버지도 좋다 쿠고, 사우를 좋다 쿠고 어머니도 좋다 쿠고 다 좋아했는데, 시가서 그리 반대를 하는 기라.
“그래 그 사람한테 아 하나 안 낳았나, 딸꺼정.
“그것도 내가 안 놓고 내가 받아가 키았다 아이가. 내 몸이 원카(워낙) 험하게, 보다시피 베리 논께 애를 못 낳았다 아이가. 자궁이 어찌 됐는 모양이지. 그런께 애를 못 놓고 있지.
“우리 작은방에 충무 있을 때 세를 놨는데 그 젊은 아가씨가 그 살았거든. 그 아가씨가 연애해 가지고 아를 낳았거든. 아를 배 가지고 우리 집에서 낳았다 아이가. 그래 아가씨가 아를 몬 키운다 아이가. 그래 낳아 가지고 날로 주대. 그래 딱 받아 가지고 내가 안 키았나.
“(생각에 잠기면서) 찍어 놓은 사진도 있는데. 딸아 이쁘다 아이가.
“그 낳아가 결국 죽었어. 돌 아래 병이 나가 돌 지나 죽었어. 이름이 현잔데, 그 애 딱 죽고 난께 둘이 딱 헤어지네. 그 애 보고 살았는 모양이라. 그 딸아 딱 죽고 난께네 남자가 무단히 나가 가지고 집에 안 들어오고 그라대.
“그때 그것만 살았어도 이리 애롭지는 않을 낀데.
“아무리 자신있게 살아도 ‘와 나는 애기를 못 낳았을꼬.’ 그만치 열여덟 살 무서 내 몸을 험하게 해 논께네 애를 몬 낳아. 내 그리 생각합니다.
“내 서른일곱 살 무서 우리 어머이하고 다 마산으로 이사를 왔거든.
“나는 마 내대로 마 요정에 아가씨들 빨래도 씻거 주고, 출퇴근하는 아가씨들 아 봐주고 돈 받고 이래가 내 생활을 해서 살았으예. 지(홍씨) 없어도 얼마든지 사는 기라.
“내가 한국에 나와 갖고 여관에 가서 빨래도 해 주고 청소도 해 주고 이리 고생했제.
“나가 참- 마 생활력이 강합니다. 아이고 살 끼라고 오만 거 다 해 봤소.
“마산 어머이한테 오니까 이것도(홍씨) 따라 안 오나.
“그래, 마산집 찾아왔대. 찾아와가 쯧-.
“‘니 결혼한 여자한테 가라. 요 뭐하러 오노?’ 내 그라니까.
“‘에헤, 내가 마음이 있어서 결혼했나? 어른들한테 못 이기서 결혼했지. 그래도 내 마음은, 사랑은 니한테 다 있는데 난 니[랑] 떨어지고는 몬 산다’ 그라대. 죽으나 사나 내한테 붙어 있을라 쿠고 그라대.
“이미 결혼한 사람을 무슨 희망이 있을 끼라고, 내가 피해 댕깄지. 그래도 정은 있어요. 지금도 미련이 아직 남아있어.
“아이고이- 그 정은 몬 잊습니다. 지금도 보고 싶고 미련이 있어가 한 번 봤시면 싶으고 그렇습니다. 오데가 사는지 모르지, 요새는 연락도 없고.
“충무 살던 곳에 가면 연락 듣겠지. 내 충무 갈 일이 있습니까, 안 가는데. 인자 가늦까(다 늦어) 나[이] 들어 찾으면 뭐 합니까, 안 그래요? 지도 좋은 사람 만내서 살겠지 뭐. 그래도 뭐 처녀로서는 그기 첫사랑인데 그 사람이, 비록 내가 뭐 중국땅 갔다왔지만은.

한(恨)

잊아버리면 절대 [안 된다]. 내가 한이라도 풀고 죽었으면 좋긋다.
“늙은께 골벵이야, 골벵. 골벵이 딱 들었어.
“이리 당했으니까 내가 육신이 제대로 배기나겠어요. 나이 많으면 다 골벵아입니까. 이 다리가 고마 밤새도록 욱신욱신 아프는데. 젊을 땐 모르겠는데 나이 많으니까 다리가 쑤시고 팔도 아프고 죽것어요.
“나 지금도 길에서 왜놈들 일본말 하면 뒤에서 칼로가 목을 치으면 싶은 마음이 드는데, 고상한 거 생각하면. 일본사람이라고 다 그럴까만은도, 마 원수 같이 생각합니다. … 일본사람한테 우리 동생도 총에 맞아 죽었제, 주 089
각주 089)
임정자가 귀국하던 해(1945년), 항일 투쟁하던 남동생(당시 23세)은 일본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녀는 동생의 임종을 보지 못했고, 귀국한 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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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리 육신을 당했제, 이란께 왜놈이 원숩니다.
“참말로, 내 깨끗한 어머니 아버지[한테서] 태어난 이 육신을 가지고 왜놈들한테 몸을 바칬나 싶은가 그리 생각하모요, (길게 한숨쉬며) 하- 내 다리 내가 끊고 싶고 그런 마음이 다 듭니다. 그래도 모진 목숨에 몬 죽고, 빼족한 일도 없는데 이리 살아봐야 내가 뭐 하긋나 싶으고 … 지겹는 기라. 나이 들어간께네 자꾸 그렇습니다, 젊을 때는 안 그렇더만.
“오늘도 내가 몸은 자꾸 아프제. 내 혼자 누서 테레비 키고 누웠다가 앉았다가 이리이리 하루하루 지냅니다. 누구한테 하소연 할 데도 없고. 옴마가 있어서 이런 얘기할 것가, 뭐 행제 간이 있어서 이런 얘기할 것가. 마, 동생 주 090
각주 090)
칠남매 중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은 임정자와 막내 남동생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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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있는 그것도 남잔데, 남자한테 우찌 얘기할 것고. … 오데 좋은 일이라서 넘보고 얘기할 것가. 내 혼자 고심 많이 합니다.
“듣고 가서 하소연을 해 주소.
“잊아버리면 절대 [안 된다]. 내가 한이라도 풀고 죽었으면 좋낐다.
“(눈물을 흘리며) 이런 얘기 내가 오데 가서 하면서 죽을꼬 말다. 완전히 내 혼자서 그런단 말다. 누가 있노?
“내가 나이가 좀 젊은 것 같으면, 한 오십만 한 육십만 돼도 내 마 서울에 올라가서 청와대에 들어가서 마 하소연을 하면-, 이런 마음을 멫 번 묵었어요. 내가 부끄러운, 부끄러운 대신에 하소연 할라고 이런 마음도 다 묵어 봤고. 대통령한테 안 가면 오데 말할 데 있십니까.
“죽으면 내가 천국 가서 이런 말할 데가 있겄지, 이런 마음이 들고.
“나는 좋-은 데 결혼해 가지고 넘과 금슬 좋게 살아봤으면 그기 소원이다. 넘 날 때 나도 났건만은 와 내 팔자는 이리됐나 싶으고.
“사람이 났다가 여기 잠시 쉬었다 가는 긴데 났다가 탁- 결혼해 가지고 남편한테 사랑도 받고 이리 좋은 시절을 살았으면 한이 없것네. … 한이 돼서 [다음 세상에는] 여자로 태어나 갖고 남자한테 사랑 받아봤으면 좋겠다. 그리사는 사람보면 부럽드라. 그리 몬 살아 보기 때문에.”

  • 각주 069)
    임정자는 연행지역이 경남 충무였다고 기억하나 정황으로 봐서 연행지역은 부산 인근지역으로 추정된다. 바로가기
  • 각주 070)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조금씩 끌어올린다는 의미이다. 바로가기
  • 각주 071)
    경상남도 고성군. 바로가기
  • 각주 072)
    임정자는 만주와 대만이 같은 곳이라 여기고 있다. 기차로 대만을 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처음에 간 곳은 만주일대이며 이후 대만 등지의 남부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가기
  • 각주 073)
    부산에서 같이 연행당한 두 여자의 이름. 바로가기
  • 각주 074)
    ‘저 여자가 좋다’란 뜻의 일본말. 바로가기
  • 각주 075)
    요조항다다미 네 개 정도의 방을 이르는 일본말이다. 다다미 네 장은 대략 두 평 정도이다. 바로가기
  • 각주 076)
    기모노 입을 때 하는 일본전통 머리 모양. 바로가기
  • 각주 077)
    ‘잘 드세요’란 뜻의 일본말. 바로가기
  • 각주 078)
    기생 등이 추는 일본 전통춤. 바로가기
  • 각주 079)
    임정자는 하야시 사다꼬라는 이름 이외에도 레이꼬, 레짱으로 불렸다고 한다. 바로가기
  • 각주 080)
    중국 흑룡강성 해림(海林)시라 추정된다. 바로가기
  • 각주 081)
    해림 위안소의 이름. 바로가기
  • 각주 082)
    임정자는 위안소 주인을 어머니라 불렀다고 한다. 바로가기
  • 각주 083)
    장교에 의해 다친 이야기. 바로가기
  • 각주 084)
    노란색의 소독약. 바로가기
  • 각주 085)
    임정자는 연행 당한 17세 때부터 귀국 전 24세까지 대만, 해림, 상해, 홍콩, 대련, 하얼빈 등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8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바로가기
  • 각주 086)
    사다꼬, 잘 자요’란 뜻의 일본말. 바로가기
  • 각주 087)
    임정자는 김○○씨와 중국에서 같이 생활한 것을 ‘재혼’이라 표현했다. 바로가기
  • 각주 088)
    임정자는 4남 3녀 중 장녀이며, 이 동생은 그녀와 연년생인 남동생이다. 바로가기
  • 각주 089)
    임정자가 귀국하던 해(1945년), 항일 투쟁하던 남동생(당시 23세)은 일본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녀는 동생의 임종을 보지 못했고, 귀국한 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가기
  • 각주 090)
    칠남매 중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은 임정자와 막내 남동생뿐이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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