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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증언자료

“그 많은 군인들이 나한테로 그렇게 올지는 꿈에도 몰랐네”

“그 많은 군인들이 나한테로 그렇게 올지는 꿈에도 몰랐네”

  • 년도
  • 나이
  • 내용
  • 1920년
  •  
  • 전라남도 무안 출생
  • 1935년
  • (16세)
  • 평양 직업소개소로 속아서 감
    해성-상해-하얼빈 등지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
  • 1943년경
  • (24세경)
  • 하얼빈에서 보성 남자와 살림 차림
  • 1945년
  • (26세)
  • 보성 남자와 전라남도 해남으로 귀국
  • 1947년경
  • (28세경)
  • 해남에서 박○○와 혼인
  • 1953년
  • (34세)
  • 아들 출산
  • 1955년경
  • (36세경)
  • 당골로 생계유지
    박○○ 사망
  • 1958년
  • (39세)
  • 당골하는 남자와의 사이에서 딸 출산
  • 1962년
  • (43세)
  • 딸 사망
  • 2004년
  • (85세)
  • 해남에서 아들 내외, 손녀들과 함께 살고 있음

해남 위치 →평양 위치 →해성 위치 →하얼빈 위치 →해남 위치
“워-매 내가 아조 그런 일 저런 일 생각하믄, 밤에도 잠 안 오믄 그런 일이 눈에가 화-안 해 갖고, 하-- 내가 어찌케 그런 디서 살아 나온 것이 다행하다[라는 생각이 들어].
“어디로 어디로 간다고 날마다 차만 타고 밤이나 낮이나 그라고 드만은 인자 나중에는 어디 땅인가 몰라도 겁-나게 먼 디를 간디, 본께는 그 눈 속에, 동짓달이나 되았든 것이여, 음력. 그랬든가 눈은 흑--허니(하얗게) 온디, 옛날에는 군인들이 노-란 군인 옷을 입었어라우, 모자도 그런(노란) 모자 쓰고 그랬는디. 군인들이 어--띃게 눈 속에서 훈련을 한닥 해, 겁나게 해. 그때는 모른께. 군인들 받는 디로 간다고 [누가] 이렇게 야그나 [해주냔 말이제], 덮어 놓고 좌우당간 일본으로, 머시기로만(공장으로만) 간닥 했응께 그렇게만 할지 알고 그라고 따라간께, 흑--헌 그 눈 속에 군인들이 그렇게도 많이도 훈련을 받고 있거든. 겁-나게 많애, 한반 데도 아니고 다른 디 가믄은 또 있고 또 있고 그라드란께.
“‘워매 저렇게 추운디-’ 내 속으로만, ‘저렇게 추운디 눈 속이 얼-마나 추울까’ 그랬더니 오-매 오매 그 많은 군인들이 나한테로 그렇게 올지는 꿈에도 몰랐네.

비단공장

사람들이 겁나게 많애, 여자들이. 비단 짜는 공장인께 이렇게 사람이 많은갑다 그랬제.
“[혼사가 들어오는 데마다] 꼬옥 그렇게 새 총각 있는 데서 얼렁 안 찾고 자석 못 낳는 데서 꼭 그렇게 첩으로만 찾고.
“쪼깐 키워 갖고 크믄은, 열일곱 살만 묵으믄 겔혼을 하자고 혀. 아부지 어매는 그렇게 한다고 한디 내가 죽어도 마닥해, 내가. 나는 원래 곧은 성질이라 절-대 나는 굶어 죽으믄 굶어 죽어도 그런 첩노릇 함시롱 놈 애믹이거 나, 놈 못할 일 안 시킨다고.
“죽어도 인자 그 첩노릇은 안 할락 한께, 좋은 디 봐서 여운닥 했는디.
“뜬금없이 뭔 사람들이, 남자들 서이 [집으로] 들어옴시롱 한나는 일본 사람이, (콧수염을 흉내내며) 수염 쪼깐 살짝 이렇게 해 갖고는 모자도 아조 멋-지게 쓰고, 우 아래 꺼-머니 양복으로 딱- 입은디다가, 흑헌(흰) 와이셔츠에다가 요런 [나비]넥타이 하나 이렇게 맸드만. 또 둘이는 여그 한국사람이라 한복을 입었어, 그때만 해도 한복을 입었어. 그렇게 말 통해 준(통역해 준) 사람 한나하고, 이장하고 그렇게 왔던 것이여.
“그렇게 어떤 사람들이 뜬금없이 들어옴시롱 일본 가믄은, 비단 짜는 공장으로 가믄은 비단 짬시롱 겁-나게 돈도 잘 벌고 펜하고 좋고 귀경도 좋고, 돈도 많이 벌어서 집에다가 부모한테다 부쳐주믄 부모들이 논도 사고 밭도 사고 그래 논닥 하고.
“그 사람들 말을 들어보믄은 그럴 듯 허거든. 인자 우리가 곤란하기나 하고 그란께 일본으로, 비단 짜는 공장에 가믄은 얼른 돈 쪼깐해서 부쳐주믄 부모들이 쪼깐 살것다.
“나는 그래도 암만해도 못 갈성부러. 거가 어디라고 거기를 가냐. 또 내가 그런 말(일본 말)이라도 안단 말이제. 암만해도 못 갈성부런께 쮯밋쮯밋하고.
“‘암만해도 나는 자신이 없어서 그렇게 못하것는디라우’ 한께, 아부지가 있다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그-까지것 눈으로 보믄 알제. 보믄 배와서 하제 뭔 뱃속에서 배와 갖고 나오냐?’ 그람시로 남도 간닥 한께 가제. 가서, 그런디라도 들어가서 그런 것이라도 배와 갖고 돈벌이도 하고 그라제 집구석에만 자빠졌을라냐고. 그라고 또 미운 소리하고 그랬쌌기나 하고.
“아부지가 그렇게 미운 소리하고 지천(야단)을 할 즉에 ‘아이고- 아부지 나 죽어도 갈라우, 갈라우, 가서 죽더라도 내가 가제 어째라우’ 그라고 내가 따라간께 곁에 [따라온 한국] 사람들이 절-씨구나 하고 급살맞어. 일본 사람은 아무 소리도 안 하고.
“그때 열여섯 살에 갔응께.
“일본으로 바로 간다고 그러더니 평양으로 가드란께.
“사람들이 겁나게 많애, 여자들이. 비단 짜는 공장인께 이렇게 사람이 많은 갑다 그랬제. 그랬드니 어째 암 말도 안 하고 비단 짜란 말을 안 해, 그 공장도 안 비여주고. ‘[왜] 비단 짜란 말을 안 할까-’ 그라고 인자 꺽정을 했제.
“가만히 본께 뭔 남자들이 오믄은 여자들을 이리 덷고 가고 저리 덷고 가고. 그라고 뭔 말하고 한 것이 암만해도 공장이 아님성부러.
“남자들 댕김시로 [각시들을] 보듬고 급살맞드란께. 그래서 공장이 아니란 것을 거기서 내 속으로, 느낌으로 [알았어]. 그래 갖고 맨날 맨날 아조 눈물만 나오고 못 있겄어. 그란께 나 차라리 좀 먼 디로, 딴 디로, 먼 디로 보내주라고.
“나는 한국 사람들 사는 데 여가 안 있을란다고.
“먼 데로 가분닥 한께 그리 보내주드만, 해성으로, 중국 해성이란 데.

‘처음 손님’

한 번도 자도 못한 사람이, 들어가도 않은 밑천에다가 처음 손님을 일곱이나 받았당께.
“한 번은 허가 났다고 그래, 허가 냈다고. ‘무슨 허가를 내라우?’ 그런께, 인자 아버지 어머니한테로, 저 고향으로 전라도 고향으로 전화해 갖고 법에서 다 연락해서 아버지 승낙을 들었기 따문에 서에서 인자 허가 내줘서 손님받게 되았다고 그러네.
“나는 [군인들이] 그렇게 많이 와도 각시들이 여럿된께, 한 [여자] 앞에 그렇게 여러 사람을 접대한 지를 몰랐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다른 사람한테를 가기 싫은께 안 가서 [나한테] 그렇게 온 것인가, 첨으로 왔닥 한께 다른 사람한테 안 가고 그렇게 찾어 온 것인가. 이-거 뭐냐 분간이 없네 기냥. 아조 기냥 시간이 없이 그렇게 한 사람 자고 나가믄 또 한 사람이 문 앞에서 문을 또딱또딱 하고, 얼릉 빨리빨리 나오라고 글 안 한가, 뭣이라고 쏠래쏠래 하고. 또 뭣한 사람은 나보고 씻어주락 허네, 그 밑천을. (벽을 치며) 글 안해도-- 글 안해도 죽것는디 밑천을 또 씻혀줘야 나간닥 하네. 문 앞에서는 문 뚜드리고 빨리빨리 나오락 한디, 워따 워따 내가 뭘로 씻이냐고, 조선말로, 나는 그렇게 안 해[봐]서 모른다고 하믄, 못 씻는다고 또 씨불씨불 막 뭐락 해.
“음력 동짓달이믄 무-섭게 눈 많이 오고 젤-로 추울 때여. 눈은 흑-허니 오고 아조 징하제, 그란디 또 기어코 씻고 오락 하믄 또 씻고 약 볼르고 와. 어--찌케 울음이 나와서 죽겄으믄 [군인이] 왜 기분 나쁘게 우냐고.
“외롭고, 말할 지도 모르고 통할 지도 모르고, 조선사람 같으믄 이만저만 한닥 하요, 이렇고 저렇고 한닥 하요 한단 말이제, 그것도 못하고.
“첨으로 인자사 가서 나이도 벨라 안 많은 사람을 갖다가, 뭐 연애라도 걸어서 이렇게라도 저렇게라도 해봤단 말이제, 그라지도 않은 사람을 갖다가 어-쯔께 손님할라 많이 받았든지 기냥 내가 죽을 정날을 쳐 갖고(죽을 뻔 해 가지고) 병원에까지 갔드란만.
“하루에 시상에 처음 손님을, 한 번도 자도 못한 사람이, 들어가도 않은 밑천에다가 처음 손님을 일곱이나 받았당께, 처음 손님을.
“오매 오매 차라리 놈의 첩으로라도 갈 것을. 더 있느라고 있으믄은 총각도 만날 수도 있고 정쟁이(도저히) 못하믄은 첩으로라도 갔으믄은 요런 꼴을 안 볼 거인디.

무서운 일요일

일요일 닥치믄 미리서부텀 가심이 두근두근두근 이래.
“손님을 한 분씩 받으믄은 밑천에다 삿쿠(콘돔)를 끼고, 고무장갑 맨이로 삿쿠를 끼고 헝께 그놈이 안 터지믄은 생조실 주 001
각주 001)
씻을 수 있는 곳.
닫기
에 가서, 목간통에 가서 생조[만]하고 약을, 흑한 미끈미끈헌 젤 같은 약을 볼르고 들어오고. 그놈이 터져 불믄 가서 또 따순 물에 소독물 해서 생조를 하고 그 약을 볼르고 들어오고. 그렇게 해야 그 담에 손님이 기분 안 나뻐락 한다고. 씻도 안 하고 도로 손님을 받으믄 손님이 기분 나뻐락 하고 돈 찾어 갖고 가분닥 허요. 하- 그란께 애기들 시키듯기 하드만. 그래서 즈그들 시킨 대로 하제 어짤 것이여 인자는, 죽도 살도 못한디. [할 수 없이] 그렇게 주인시킨 대로 했어.
“일요일 닥치믄 미리서부텀 가심이 두근두근두근 이래. 어-쯔케 그 일을 생각하믄.
“[일요일이면] 오--매 오매 수십만 명을 내보내니 뭐 말도 못하제, 각시들이 많하지만은. 한 집만 되간이? 여러 집이여, 그런 집이. 무슨 관 무슨 관 여러 집이랑께. 그래도 그 군인들을 워낙 많이 내보낸께, 그랑께 그렇게 많이 받어져라우. 나 하루에 스물일곱 명까지도 받았어, 서른 명 쪼까 못 받았어.
“아-조 그랄 때는 (마치 지금 바깥에 군인들이 서 있는 것이 보이는 듯 놀라며) 이--잉 막 뚱글뚱글 나래비로(한줄로 쭉) 서서 신도 못 벗고 막 그냥 삿쿠만 끼고 들어와서 자고 나가고. 아, 빨리빨리 해서 얼릉 자고 나간 사람이 질로 좋은디, 술이나 간듯하니 먹고 와서 얼른 되지 않거나 하믄, 급살[맞은 사람] 만나봐 봐. 아조 한쪽 문 앞에서는 막 문 동동동동 뚜들고 얼른 나오라고, 빨리 나오라고 징하고. 기냥 나래비로 서 갖고 한- 것 나오믄 한 것 들어가고, 한 것 또 옷을 입음시로 나가믄, 벗음시로 들어오고. 그때, 그때가 젤-로 징했제.
“아이고 참말로. 나 원없이 고생했어. 살고 났은께 이렇게 말이라도 한께 그라제, 어휴- 살아난 거 생각허믄 아조 꿈도 같고. 하루믄 열일곱 명을 받고 난께 막 그냥 어지럽고 막 삥삥삥 돌아 갖고는 정신없이 나대면 술 먹었냐고 그래, 손님이 와서. 술은 나 못 먹은다고. 그때만 해도 술은 한 모금 안 했제. 술 안 먹었어도 그렇게 무단히 여그(머리) 아픔시롱 그란다고 하요.
“금방금방 숨 넘어갈락 해도, 술 취한거만이로 숨 넘어갈라 해도 저 하고 싶은 대로, 지 욕심대로 그- 급살맞으믄 그랄 땍에가 아조 죽겄어.
“손님을 많이 받고 나믄 허리는 허리대로 [아프제], 배에는 불 날락 하고. (아랫배를 가르키며) 배창시 여가, 아랫배가 아조 금방 터져 죽어, 금방 터져 죽는단께. 그것도 잘룬 사람은 괜찮애. 잘룹고 통통한 사람은 괜찮한디 가늘고 진 사람은 어-찌케-. 그래 갖고 또 얼-마나 얼음찜질을 했다고, 연장 진 사람 만나서 혼--나 갖고.
“어찌케 혼났든지 워-매 워매 일주일 돌아오기 전에 낫어야 쓴다고 인자 거그다(성기에다) 얼음찜질을 헌디 오-매 오매 얼음 한 덩어리, 그놈 한나를 애기들 모구장 안 있소? 그런 것 같은 기계가 있어. 거기다 달아 놓고 있으믄 시간이 지나믄 그것이 다 녹아. 녹으믄 여그가(성기가) 얼어 빠져 갖고 아픈 기가 멍멍해져부러. 그렇게 하고 하고 해서 그 큰 놈 한 덩어리를 하룻내 다 녹여야 다 한 거야. 그렇게 하고 나믄 며칠 썩은 쪼깐 안 아픈디, 또 쪼깐 진 사람 만나믄 또 거가 닿으믄 또 그렇게 아프고 그려.

한 통속

병원하고도 한 맘 한 뜻이고, 군인들, 높은 사람들하고도 한 마음 한 뜻이고, 법에서도 한 마음 한 뜻이고 그래, 주인하고는.
“[주인이] 끼니때마다 밥 해 주고 빨래도 안 허고 일도 안 했는디, 거그 풍속 배우고, 거그 풍속 따라갈란께 거그서 쪼깐 지쳤제.
“많이 있는 집이 [여자들이] 이십 명이 [있고], 글 안허믄 열일곱 명이나 열다섯 명이나. 적게 있는 집이 열세 명이나 그렇게 있어. 일본 곽도 있고. 일본 곽에는 맨 일본 여자만 있어. 한국 집은 한국 여자만 있고 그래. 또 중국 요리집도 있어.
“낮에는 [군인] 높은 사람들 나오고, 혼자 사는 [일반] 사람들이 그 자주 오고 그라제. [낮에는] 그렇게 많이는 안 와.
“우리 같은 사람들 보고 각시라고 [불렀어]. 각시라고[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다 써져 갖고 있단께. 큰-방 간판에 다 써 갖고 있어. 그라믄 자기들 아는 이름이 있으믄 아무개를 찾어. 사다꼬사다꼬, 정자면 정자, 그렇게 해서 이름을 찾어.
“[나는] 맹옥이라고 했어, 일본 이름은 사다꼬고. 내 이름은 공점엽이제, 시방은. 공점엽인디 그때는 맹옥이라고 이름을 지었단 말이오 거그서.
“손님을 받고 있으면, 손님을 받고 있은께 금방 쪼끔만 기다리라고 그라믄 거그 서서 기달리제. 그래서 그렇게 나래비로 기다리고 있단께. 다른 각시한테로 가믄 쓰제만은 일단 맘 먹고 나를 찾아온 손님이믄 기어코 거그 서서 기달리네.
“군인들 내보낼 때도 그 사람(일본군 장교)이 다 그런 것을 해서 준다요. (성기를 가리키며) 여그 찌는(끼우는) 삿쿠랑, 또 저 표지 주 002
각주 002)
공점엽에 의하면 돈을 대신했던 표지를 당시에는 멘지오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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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 그 돈, 잠깐 삼십 분이믄 삼십 분, 오십 분이믄 오십 분, 그 머시기 하라는 표지랑 다 주제. 그래서 갖고 나오고 들어가고 하제.
“시방 돈이로 하믄은 한 오천 원씩이나 하겄다, 군인들은 싼께. 기냥 개인 손님은 만 원이나 하믄 군인들은 반틈밖에 안 한께 오천 원이나 하겄어. 종이떼기 그놈 하나만 갖다 주믄 아무 소리 안 해. 조바 주 003
각주 003)
위안소에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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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주인이고.
“그것이(종이떼기가) 돈이여. 그놈 갖고 가서 바꿔올 데가 있어, 주인이 가서.
“여그로 치믄 은행에서, 뭔 조합이나 그런 디서 그렇게 바꿔주는 것이든만. 가보지는 안 했어. 주인이 다 이러고 저러고 하제 우리들이 갖고 가서 그렇게 바꾸지는 안 해.
“군인들 나올 때는 군인들이 많이 나온께 그날은 군인들 날이다 치잖여, 우리들 말이. 개인 손님이 많이 오믄은 기분 나뻐라 한다고 군인들이. 그란께 군인들 있을 때는 절대 개인 손님은 못 받은당께. 군인들 나오는 날은, 일요일날은. 그란께 [군인들만] 그렇게 많이 받은께 돈이 솔찮이 많하제. 싸기는 겁나게 싸도, 일반 사람들보다 반탱이지만은.
“주인 몰래는 군인들 못 내보낸께 주인이 다 통하고 했어, 주인들끼리. 어느 관이든지, 무슨 관 주인이든지 다 알아요. (작은 목소리로) 그라고 법 모르게는 못하거덩, 법을 끼고 한께. 손님이 혹시 간에 불행한 일 있으믄 연락을 하믄은 순갱이 내려와서 다 처리해 주고 가고 그래. 그란께 병원하고도 한 맘 한 뜻이고, 군인들, 높은 사람들하고도 한 마음 한 뜻이고, 법에서도 한 마음 한 뜻이고 그래, 주인하고는. 그랑께 다 법에서 허가 내주고, 손님들 내보내게 하고.
“매독이나 욂긴 여자들은 다 퍼져 갖고 난리믄, 할 수 없이 인자 손님을 못 받으믄, 손님 받으믄 큰일난께, 병원에 다 연락을 해 갖고 병원에서 델로 와라우. 델로 와서 실어다가 사흘이고 나흘이고까지 나을도록 까지는 거그서 [치료를 해 줘]. [서로] 연락 없이 어떻게 한 줄 아요?

쥐약

오-죽해야 나는 쥐약도 먹어봤을 것이요, 목매도 달아보고.
“어디가 아프고 그란다고 하믄 저 저 애펜 주사, 그 노-오라니 병 쬐깐한 거, 고런 주사 하나썩 놔 주고 또 약, 먹는 약 주고. … 그것을 맞고 있으믄 시-상 펜안하고 좋아.
“[나는] 매독, 매독이 저그 밑천으로 안 가고 바로 몽오리로 나와부렀어.
“뱃속으로 해서 몽오리로. 그래 갖고 몽오리가 요만썩(주먹 크기만큼) 했어, 요만썩.
“바로 옆구리로 나부렀어. 요, (양쪽 사타구니의 수술자국을 보여주며) 여기 이짝도 이렇게 있제, 여그 여짝도 이렇게 있제. 요렇게 있어 시방, 두 반데 가. 주 004
각주 004)
매독균이 사타구니 쪽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당시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은 요꼬네라고 불렀다. 실제로 현대의 매독에 관한 의학 서적에도 요꼬네라는 병명이 기록되어 있다. 공점엽은 이 요꼬네 수술을 두 차례 한 것으로 추정되며 양쪽 사타구니에 선명하게 수술자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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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갖고 그놈이 애려 갖고(아파 가지고) 아무리 가라앉게 주사 맞고 약 먹어도 안 들어. … 606호, 젤-로 옛날에는 그것이 독합지(독하지), 독하고 비싸고.
“글더니 한번씩 째믄, 병원에[서] 요렇게 비어. 그래 갖고 그- 독한 약을 거그다 볼라 갖고 이 구녘 주 005
각주 005)
수술을 하기 위해 칼로 짼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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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 처 넣은께 아조 죽고 못 살아, 아조 금방 숨이 넘어가. 퍼--어러니 거가 어--쯔케 아픈께 소독을 하믄 막 거그가 부글부글 끓어.
“[같이 있던 여자들이] 수술 이렇게 해서 낫으는 것이 내게로는 좋은 일이라 그래. 그란디 글 안 한 사람은 징하게 매독도 잘 걸리대, 그 밑천에가. 그래 갖고 막 요만썩 패, 낙지발 구멍만이로. 삘-개 갖고 막 그 속에가 뭔 잡쌀 같은 거 낌시롱. 긍께 징허드만은. 그래 갖고 손님을 못 받어, 아픈께.
“이놈(수술한 것이) 새 살[이] 차야 인자 손님을 받제, 새 살이 안 차믄 못 받어. 한 달포를 걸려사 이것이 얼렁 낫드란께. 그란께 그 동안에 영업 못한 거 다- 하루하루 써 놓고, 그것도 빚이여. 원-없이, 병원에서도 원없이 울고. 누-가 와서, 누가 와서 간호를 해 줘?
“도망치다 뚜드러 맞은 사람도 많애라우, 담 넘다가. 아이고 그라고 하믄 못 쓴다고 해도 그렇게 꺽꺽 그런 짓거리를 할라고 하는 사람들이 쌨습니다, 여럿입디다. 오-죽해야 나는 쥐약도 먹어 봤을 것이요, 목매도 달아보고. 나도 그랬어라우. 나도 죽겄습디다, 죽겄어.
“내가 짠뜩 죽것응께 죽어불라고 쥐약 쬐깐한 거 하나 사다가 뚜껭 벳겨 갖고 뽀옥- 누른께 빠-알간 놈이 나와, 치약맨이로 나와서, 고 놈, 흑흑흑-- 고 놈 묵을라고 들어 가 갖고도 천 번 만 번 울고.
“이-때까지 고생[해서] 한 이 년 간 [업주한테] 돈은 원없이 벌어줬어도 우리 아버지[한테] 돈 한- 입도 안 보내주고, [빚 갚을라면] 당아(아직) 멀었다고 밤나 손님만 받게 되니 사람 기가 맥혀서 죽을 지경이제. 일요일이나 한 달에 한 번이나 닥친다 하믄 쓴디, 한 달에 시 번쓱 니 번쓱이나 닥치니 못 견디고 죽겄응께 에이 죽어 불란다고 [쥐약을] 묵고 죽었는디.
“정신 한나도 없이, [쥐약이] 속에 들어간께 죽것든만 아조 죽것어. 그래서 뽈떡 들어눕는 소리를 잠 안 잔 사람이 들었든가 그랬어. 같은 [위안소] 여자들이 알아 갖고 변소에 와 보니 그라고 뻐드러져서 내가 죽어 갖고 있응께, 아-이고 주인보고 담방에 얼릉 불 키라 해 놓고, 이렇게 죽도록, 시상에 순하고 시상 좋은 사람을 이렇게 죽도록 만들었다고 주인보고 뭐락 하고, 병원에다 전화 해 갖고 차로 오락 해서 싣고 가서 그 징한 거 다 품어내고 주사 놓고 그래서 살아 갖고 그 집에 [다시] 와서 당아 기안이 멀었으니, 달수가 멀었으니 또 영업을 할 띡에(할 적에)-.
“아-이고 그때 그 [잠 안 자고 있던] 사람이 몰랐으믄, [병원에 안 가고] 영락없이 그 시간만 벗어지믄 아조 죽은닥 해, 그 속이 타서.

첫사랑

아조 어-찌케 사랑한가 아조 아조.
“친한 사람이 있었제.
“그 남자도 지식이 많안께 산 속에서 비밀공사를 해 갖고 총칼 그런 거 만드는 디를 들어갔어, 남자가. 나하고 동갑인디, [전라남도] 보성 사람인디.
“그 남자는 얼-마나 결심 있는 남잔가 거그(유곽에) 있을 때는 잠을 안 잔닥 해. 한 번쓱 있다가는 와도 잠을 안 잡디다, 잠을 안 자. 그란께 저 남자는 고잔갑다 했[드]만 고자가 아니라 그래. 그런 디 있는 사람은 깐뜩하믄 벵할라(병이) 옮는 사람이 많안께 못 쓴다고, 큰일 난다고. 그란께 [같이] 살 사람 아니믄은 자도 되지만은 장래성으로 [같이] 살 사람 같으믄 주의를 잘 해야 쓴다고. 그라고 그렇게 잠을 안 자고 삼 년 간을 이-딱하믄(이따금) 한번쓱 와도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살다가.
“그 사람이 하루삔에서 큰 회사에 댕긴께 그 사람 있는 데로 가느라고 하루삔으로 갔제. 친한 친구 한나가 하루삔으로 가믄은 손님 많고 돈도 흔하고 큰 데고 넓고 좋고 그란께 각시들도 많이 있고 그란다고 했싼께 그리 갔제. 그래서 하루삔으로 갔어, 친구 때문에라도.
“‘암디를 내가 갈라우. 간께 나 쪼깐 보내주쇼’ 그라믄 당신네들 돈을 많이 못 벌어줬으믄 돈 더 벌란께 못 가게 하고 그라지만은, 내가 그렇게 [돈 많이] 벌어준께 그란가 다 보내 줍디다. 그란께 주인 승낙 받고 [다른 데로 옮겨] 가서도 허가를 얼-른 내서 빨리 손님을 받는당께.
“해성이란 데 거그서 이 년이나 있고 또 하얼삔 가서 일 년 있고. 저 상해에 가서 또 반 년 있고. 여-러 해 있었어.
“거그(하얼삔) 가서 그 남자가 돈 쪼까 있는 놈 갚어 주고 덷고 나와서, 그 다음부터서는 그 남자랑 같이 살았제.
“손님 받을 때 육체 관계 안 하고 삼 년 간, 또 나와서 삼 년 간. 육 년 간 살았제.
“아조 어-찌케 사랑한가 아조 아조.
“그래도 애기는 안 생겼던 모냥이여. 애기가 그때 못 생기게 생겼제, 약도 안 해 먹고 그란께. 맨 빙 천지라 안 생기드만.
“[그 남자가] 언제나 우리가 돈 많이 벌어서 당신 보약을 해서 사람으로 맨들꺼냐고. 아조 아조 고생고생 원없이 하고 그랬다고. 그란께 마음적으로, 참 고독허니 사랑을 했제. 영-판 귀하게 사랑을 했어라우. 그 남자 같은 남자 없어요.
“첫사랑이제, 그 사람이.
“진짜 못 잊어라우 그 사람을. 그 사람을 못 잊어라우. 그란디 그 사람도 첫사랑이락 해. 여자를 안 사귀어 봤닥 하요.

이별

좋은 디 가서 벌어먹고 살라고 그란께 당신 혼자 해 갖고 [도망]갔제.
“남자랑 산 지 그래도 한 이 년인가 산께 히방(해방) 되아서 나온디-.
“중국서 나오다가 … [살림살이를] 차로 한나 싣고 나오다가 [중국 마적떼 한테] 싹- 한나도 없이 뺏겨 불고, 사람이나 가만두면 하지만은 그런 거 뺏으고도 사람을 칼로 찔러서 죽여분다 그래. 그놈에 깜짝 놀래고, 돈 뺏겨서 화 낄이고 아조 하루 지녁 내- 잠도 못 잔디다가 눈이 (두 주먹을 눈에 갖다대며) 이만치 붓어부렀어. 짠뜩 화가 요리(눈으로) 올라와 갖고 아조 땡땡 붓어 갖고 아무 데도 못 봐. 그란께 [첫사랑] 남자가 허리끈에다가 노끈으로 줄해서 [내] (허리춤을 가르키며) 여그다 감아서 자기 가는 대로 나보고 따라오라고 그랬어. 그래 갖고 나는 봉사 맞이 함시롱 저 삼팔선 주 006
각주 006)
조선 만주 사이의 국경을 넘어왔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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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넘어 왔는디라우.
“여그 조선 나올 때 그렇게 다 떨쳐분께 거지제. 둘이 다 인자 아무것도 없제.
“친정[은] 틀림없이 어디로 이사를 잘 댕겨싼께 어디 가서 산 지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마산면 주 007
각주 007)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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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작은아버지 산 데는 전에 내가 알았어. 그랬는께 찾아갔제.
“그래 갖고 나락을 한 가마니 주던가 보리를 한 가마니 주던가 하믄 그놈 돈[으로] 사 갖고 하다 못해 젓갈장시라도 해서 한 입이라도 벌믄 모태 갖고 (모아 가지고) 작은아버지 본전은 갖다 드리고 남은 놈 갖고 둘이 죽이라도 벌어먹고 산다고 그랬응께 좀 줬으믄 쓸 것인디 안 줘.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을 그런 것 주면 뭣으로 받은다냐고.
“그렇게 [작은아버지가] 독하고 모질게 해서 인자 그 남자가 몰래 이렇게 하작 했어. 몰래 나락 한 가마니 밤에, 뒤에 산으로 띠어다 놨다가 그놈 갖고 가서 둘이 어디 가서 뭔 장사라도 해 갖고 그놈 벌어서 모태믄 작은아버지 미안하다고 말하고 갖다 드리[자]고. 그랬어야 쓰제. 그랬어야 쓰제. 그랬어야 쓸 것인디 나는 생-전 이날까지 도둑질도 못하고 거짓말도 일체 안 하고 그란 사람여여. 그란께 죽어도 그 일은 못하겄는디 어째. [그 남자가] 그러믄 둘이 갈려도 못할라냐고, 안 할라냐고. [나는] 둘이 갈리믄 갈려도 할 수 없이 못하겄다고, 정정히 그렇게 할라믄 당신이나 해 갖고 가라고.
“나가서 당신 혼자 댕김시롱 어디 가서 벌어먹고 살라고. 나는 잊어뿔고, 땡겨뿔고 그라라고. 나는 도새(도저히) 애기도 못 낳을 사람인께, 나하고 살믄 당신 신세 조진께 당신 혼자 나가서 벌어먹고 살아라고 그랬어. 좋은 디가서 벌어먹고 살라고. 그란께 당신 혼자 해 갖고 [도망]갔제.

늙은 영감

스무 살을 더 먹었어. 그란께 한압시 그라게 생겼어.
“[이웃마을 할머니가] 우리 아들 아부지를 말해 주드라고. 놈의 집 산디 일밲이는 못한 사람이라고. 늙었어도 일밲이는 못한께 그 영감하고 살믄 쓰것다고. 그래서 [영감] 나이를 세어 놓고 본께 [나보다] 이십 년 우여, 스무 살을 더 먹었어. 그란께 한압시(할아버지) 그라게 생겼어.
“중매해 주신 그 할마니가 솥 한나, 밥 그릇 둘, 수제 둘, 이불 한나, 그렇게 줘서 산디-. 영감님은 일꾼으로 산께 거그서 일 년이믄 논 서마지기 준닥한만, 새경으로. 그래서 그 새경으로 [둘이 살기에] 뭣 한께 식량은 거그서 한가마니 찍어주든만. 쌀을 한 가마니 찍어주고, 나무는 거그서 구루마로 한나 솎아진 나무 한 그루 실어다 주고 그랍디다. 그래서 쬐-깐한 놈, 넘의 집 오두막 작은방 한나 거기다 치고 [살았어].
“겔혼식도 없지.
“거기서 사느라고 산께 또 먼자 [같이] 삼팔선 넘어 놓은, 그 사람이 [다시] 찾아 왔어.
“찾어 와서 같이 살자고 그란디 아 인자사 늙은 영감이라도, 나이 많은 양반하고 만나서 [같이 산 지] 얼마 되도 안했는디 어-띃게 남자를 또 따라가냔 말이여.
“그때는(중국에서 같이 살 때는) 할 수 없이 그런 노릇을, 더런 노릇이라도 한께 그랬지만은 인자는 조근조근 생각하믄 가정집 여자나 똑같은디, 얼마 살지는 안 했지만은.
“‘당신은 어띃게 했드나 장가를 안 갔응께 새 장개를 가서 자석 낳고 살어야 쓰고, 나는 자석을 못 낳은께, 죽어도 자석을 못 낳게 생겼응께-.’ 넘의 신세를 종쳐서는 못 쓰거든. 내가 사정 말을 다 했어. 언제나 [중국에서] 삼시롱도 그랬제. ‘정만 갖고 사는 것이 아니다.’ 참말로 정을 갖고 산닥 하믄 생전을 죽어도 못 갈리게 생겼제만은 내 자신이 없제, 내 자신이. 그란디다가 맨- 병만 앓고. 삭신병 앓제, 가심 앓제, 아조 뭐 징했제. 그것할라(성기마저) 생전 시커매 갖고 노상 얼음찜질 많이 했닥 해도 안 낫드만. 그래서 그 사람보고 다- 사정 얘기했어. 독한 맘 먹고 정을 떼고 어짜던지 다른 사람 좋은 사람 만나서 살라고, 장가가서 살라고.
“[그 남자는] 아--조 아조 죽-어도 못 갈린닥 했어.
“우리집이 아무 것도 없어도 좋다고, 손자도 뭣도 아무 것도 안 낳[아]도 좋다고. 인제 낙후에 어디서 넘의 자식이라도 데려다가 키울 수도 있다고 그렇게라도 하자고, 울고 불고 아조 못 갈린다고 했제만은 할-수 없이 갈린 것이 이렇게 해가 가고 나이가 이렇게 묵었그만이라우.
“같이 봉사맞이하고 그- 삼팔선 넘어올 때, 한 달포를 걸어서 나옴시로 고생하는 것으로 봐서는 꼭 [같이] 살아야쓰제, 그 사람하고 꼭 살아야쓴디 할- 수 없이 그 정을 떼고 갈렸당께.
“잘한 것이라고 생각하잖아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한께 고생할 때마다 그 [사람 생각이 나].
“나중에 들어보믄 잘 산닥 한께 좋기는 합디다, 나는 못되았어도. 좋기는 한디 내가 자석을 못 낳았으믄 더 참말로 팔자 탄복도 더 할 수도 있고 밤나 울고 그랄 것이디, 그래도 좋으나 그르나 저놈이라도 낳았응께.
“그놈이라도 낳았응께 어머니라고 그라제. 저 자슥도 안 낳았어 보쇼. 누가?

당골

비는 사람이야, 나는 비는 사람이야.
“애기를 못 낳을지 알았제, 절-대 못 낳을지 알았는디 한국에 나와서 우리 아들 아빠 만나 갖고 멤소고(염소고)를 다섯을 해 먹었어, 굵은 멤소고를. 그래서 사람을 맨들어서 이런 좋은 사람으로 되아 갖고-.
“눈도 밝아졌제, 삭신병도 낫었제, 갱도병(생리통)도 낫었제. 그라길래 저 애기가 생겼어요. 그람- 그렇게 안 했으믄 못 생게.
“[그래도] 애기가 여간 오래 있다 생겼제, 서른니 살에나 있었는디.
“애기 낳은 뒤로, 애기 시 살 묵어서, 영감님은 그때 쉰, 쉰다섯 살인가 여섯 살인가 먹어서 돌아가셨그만.
“[돌아가실 때가] 환갑 때도 못되았지. 큰- 벵만 앓고 맨당맨당 일만 해서 골벵만 들어 놓은께 구글구글구글 함시로 아조 생-전 실[질적인] 일은 못 한당께. 할 수 없이 내가 푼 들러도(품팔이도) 못 가지, 동냥 하러도 못 가지, 으디 가서 하다 못해 정갯잠살(식모살이)이[라도] 할 수 있시면 한디 그런 것도 못해, 그런 것도 안 해 봐서. 내가 인직까지 살았어도 놈의 일이라고는 안 해 봤당께는, 그렇게 없이 살았어도. 그래서 할 수 없이 요것(당골)을 배왔당께. 그라고 아버지 어머니가 이것을 했기 따문에 내가 아-조 모르지는 않았제. 그래서 내가 배와 갖고 한 것이 시방까지 이라고 댕겨라우.
“한 댓 달 배왔제.
“그런 것을 배울라믄 여러 해를 배와야 다 띠거든(떼거든). 고깔 쓰고, 절에 중만이로 고깔 쓰고 도복입고. 그라고 경문도 오만 경문을 다- 읽어야 쓰고. 산에 가서도 읽고, 집에서도 애기들 생일 때 읽고 그런 것도 다 배와야 하고 겁-나 배울 것이 많애. 그놈을 다 못 배웠어도 품삯을 비싸게 주고 두 내외간에 데려다가 날이믄 날마다 술밥에다 밥 해 믹이고 책 놓고 이렇게 이렇게 적어서 배와 갖고 … 아조 골-고루 다 배왔어.
“점 치는 사람이 아니여 나는, 당골이여. 책으로 뵈는(배우는) 당골이란께. 굿만 허로 댕기는 당골이여. 그란 사람이라 [이 동네에서] 나 모른 사람이 없어. 그람. 내가 여그 온지가 시방 이십 년 되았제. 우리 당골 될 쩍에 논만치로 멫 섬, 멫 호 그렇게 해서 [마을에서 나를] 사거던, 사고 폴고 한 거야. 그래 갖고 여그서 우리 아들 두 살 먹어서 덷고 와서 이것(당골)을 허기 따문에 시방도 생일 소원 빌러 댕기고, 백살 된 늙은이는 시방도 오라고 한께 가고. … 나는 점 하러는 안 댕겨요. 점 하는 사람은 귀신 들렸다고 벨 소리를 다 하지만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여. 귀신 든 사람은 우리 집안에는 없어. 다 당골이여. 우리 아버지, 어매, 작은아버지네들, 작은어매네들.
“비는 사람이야, 나는 비는 사람이야.

징한 남자들

늙으나 젊으나 환-장하제, 막 살작하고. 어-쯔케 징한지.
“딸 하나 낳았어. 그랬는데 다섯 살 먹어서 놈의 애기들 멱감는 디 따라가 갖고 물에 빠져 죽어부렀어. 살릴 걸 그것을 못 살리고 죽어부렀어.
“[아들] 여섯 살 믹여 놓고서 [딸을 낳았어].
“[영감님이] 아들 세 살 때 돌아가셨어도 다른 남자를 얻었응께 그 딸을 낳았제, 글 안 했으믄 못 낳았제.
“그 애기 아버지를 달리해서 얻었잖아, 영감님이 돌아가신께 당골은 해야 쓰고, 짐거리는 누가 갖다 줄 사람도 없고. 전에는 정월 설 쇠믄은 액맥이라고 다- 집집마다 하는 것이 있어라우. 그거(액맥) 할 때가 젤-로 젤로 죽겄어. 짐거리도 짐거리라야제. 하룻 저닉에 일곱 집, 야닯 집, 아조 그놈을 다-해야 한단 말이요. 오늘 낮에부텀 하기 시작하믄, 낮에 몇 집하고 저닉에 또 몇 집하고, 낼 아침에 날 샘시롱까지 끝마쳐. 그라고 낼 저녁에 또 가고 그래. 그라는 것 땀시 남자 안 얻고는 못하것어.
“거그도(딸 아버지도) 홀엄씨 만나 갖고 애기들을 닛이나 낳아놨드만. 그란디 [애기들이] 저것을 밤나 때려, 우리 아들을. 우리 아들이 어린께. 어른들은 당골하러 가고 즈그들끼리 놔두믄 우리 애기를 죽여불락 해. [딸 아버지가] 죽는다고 약 다 사다가 머리 욱에다 놔두고 나 죽으믄 초상 치르고 가라고, 죽어도 못 떨어지게 해. 그라고 징합디다만은 할- 수 없이 저것을 살릴라고 애기를 덷고 나왔어. 그 애기는(딸은) 키워서 주마고. 그러고 덷고 나와서 집에 오지도 말라고 찾지도 말라고, 그라고 떼어불고는 [딸을] 다섯 살 묵도록 키웠어. 그랬는디 넘의 애기들 그 뫼욕(목욕)한 디 따라가드니 금세 죽어부렀다고 애기들이 와서 말한디, 가서 건져다 놓은디 살아놔야제, 못 살아나제.
“그라고 남자 한나 또 얻었어, 그 뒤로. 그 남자가 즈그 에펜네 둘씩썩 있고 또 새끼들도 있닥 해서 [나는] 죽-어도 안 살락 한디-. 그 남자가 빚은 많아고 돈은 없고. 나는 나락을 많이 모태 놨제, 돈이랑. 그란께 그놈을 냄새 맡고 동네 사람을 다 찍어댔어. 주 008
각주 008)
그 남자가 공점엽에게 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동네 사람들에게 공접엽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잘 말해 달라고 부탁하고 다녔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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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텀 첩노릇이라믄 죽-어도 반대를 하고, 쪼깐해서부터 놈의 첩노릇을 한 사람은 사람으로 안 본다고 죽-어도 안 한다고 했는데도 그놈이 들어오게 생겼네, 그 남자가.
“기어코 빚 갚아주라 할라고-. [남자가] 들어오는 사흘도 못 되아서 인자 빚쟁이들이 또 달라드네.
“할- 수 없이 참 그 징한 놈한테 나락 그렇게 많안 놈, 돈 그렇게 많안 놈 싹-- 그렇게 긁어 빚 갚아 준께, [남자가] 기어 나간단 말도 안 하고 기어 나가부렀어. 워-매 워매 나 그렇게 징한 꼴 당한 사람이여, 나 벨 세상 다 살았어라우. 그란디 그놈 나간 뒤로 또 늙으나 젊으나 환-장하제, 막 [같이] 살작하고. 어--쯔케 징한 지 그 뒤로 당최 토-옥 끊어부렀드니 어느 통에 이렇게 늙어진께, 워따 늙은께 시상 펜안하그만. 그 징한 꼴 안 뵈인께.
“워--매 혼자도 못 살것드만.
“애기 있을 등수(때)가 있으믄 허리가 아프고 배가 아퍼. 뭔 잠자믄은 권련내가 솔-소르하니 어디서 나. (방 문에 구멍을 뚫어 거기에 담배 연기를 뿜고 있는 것을 흉내내며) 누가 후-- 그란 것 만이로 그렇게 나. 그래 갖고 깨어나기만 하믄 허리가 오그라짐시로 아랫배가 아조 끊어지게 아퍼. 애기 날라고 엎져서 막 기어댕기듯기. ‘워매 워매 나 죽겄네 나 죽겄네, 아이고 배야, 아이고 허리야’ 하고 기어댕기고. 그라는 세상을 삼 년 동안을 넴겼어도 나 [다른 남자랑] 안 했어. 어띃게 징하던지, 어-띃게 남자가 징해서.

조사

아이고 [남자들한테] 손님 많이 받었단 소리를 어--찌케[해], 참말로.
“조사를 겁나게 했어. 면에서 오고, 군에서 오고, 신문기자가 오고. 주 009
각주 009)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였음을 신고하자 확인 차 여러 곳에서 조사를 나왔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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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그리 저리 댕김시롱 쪼까썩 쪼까썩 오육 년 간 있었구만.
“오육 년 간 있었는디 막 부끄럽고 뜨겁고 징하길래 [조사 나온 사람에게]
그냥 사 년 밲에 안 했다 그랬어. 거짓말 얼른 못한디 그래도 부끄러워서 이년 동안은 감췄는디-.
“사 년도 말할 때 낯부닥이 후끈거리고 아조 징하제. 그래도 같은 여자들끼리는 쪼간 덜 에러워라우. 남자들이 와서 적음시롱 할 찍에, 그때가 젤-로 젤로 아조 낯부닥이 막 후끈그려 갖고 아조 부끄럽고 죽것고 그라든만은.
“아이고- [조사를] 그만 좀 왔으믄 쓰겄어. 그래도 [지금은] 여자 분이라 더 낫어요, 그런 말하기도 더 활발하고. 워-매 워매 낯부닥이 후끈후끈 해 갖고 내 마음으로 기냥 거울을 보믄 거울이 삐래질성부러(빨개진 것 같아).
“아이고 [남자들한테] 손님 많이 받었단 소리를 어--찌케 [해], 참말로.

원망

아부지가 그렇게 안 했으믄 내가 뭣 하러 거그를-.
“[중국에서 나와서] 우리 친정 작은아버지 집에를 찾어 갔어.
“찾어 온께 깜짝 반가와락 하든만. ‘아니 너 죽었다고 해서 인제까지 죽은 줄[로]만 생각했드니 어디가 있다가 인자사 오냐?’
“머시기 한 지는 알어--. (작은 목소리로) 거그 간 지는 안당께.
“아이고 여그서 아버지가 [허가를] 보냈다고 했닥 해.
“허가를 내 주믄은 그 허가 남새(때문에) 속이지를 못한닥 해. 우리 아버지가 또 일가 친척들[한테]도 말했대. 그래서 [작은아버지도] 위안부 들어간지는 안디.
“[작은아버지가 부모님은] 저-- 무안 흑산 주 010
각주 010)
전라남도 무안군 흑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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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산닥 해. 그래서 인자 거그까지 찾어갔어. 거그까지 찾아간께 넘의 작은방살이 하네.
“‘인제까지 집도 얻지 못하고, 집도 한나도 못 장만하고 그제까지 작은방 살이하요?’
“‘너 폴새 죽었다고 했는데 니가 참말로 살아서 왔냐, 죽은 혼이 왔냐?’
“‘내가 뭣 한디 죽은 혼이 여그를 온다우? 살았응께 여그 찾아오제. 아버지고 자석인께 찾어왔제 놈 같으믄 찾아 오것소? [중국에서] 여가 어디라고? 중국서 폴새 나왔어라우, 진적 나왔어라우.’
“‘[아버지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아요?’
“아부지가 그렇게 안 했으믄 내가 뭣하러 거그를-. (잠시 침묵) 젤로 손님 많이 받을 때가 젤--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소]. 나는 돌아가신 줄 알았어라우. 내 못 할 일을 그렇고 했는디 아버지는 뭔 복이 있어서 그적까지 살았을랍디여 했더니 안 돌아가시고 멀쩡해 갖고 있어. (목소리가 커지며) ‘나보고 죽었다고 하더니 아버지가 돌아가셨지,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알았더니 인제까지 그렇게 안 돌아가시고 살았소? 나 원없이 고생하고 왔소.’”

  • 각주 001)
    씻을 수 있는 곳. 바로가기
  • 각주 002)
    공점엽에 의하면 돈을 대신했던 표지를 당시에는 멘지오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3)
    위안소에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4)
    매독균이 사타구니 쪽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당시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은 요꼬네라고 불렀다. 실제로 현대의 매독에 관한 의학 서적에도 요꼬네라는 병명이 기록되어 있다. 공점엽은 이 요꼬네 수술을 두 차례 한 것으로 추정되며 양쪽 사타구니에 선명하게 수술자국이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5)
    수술을 하기 위해 칼로 짼 곳. 바로가기
  • 각주 006)
    조선 만주 사이의 국경을 넘어왔다는 의미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7)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바로가기
  • 각주 008)
    그 남자가 공점엽에게 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동네 사람들에게 공접엽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잘 말해 달라고 부탁하고 다녔다는 의미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9)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였음을 신고하자 확인 차 여러 곳에서 조사를 나왔다는 의미이다. 바로가기
  • 각주 010)
    전라남도 무안군 흑산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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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군인들이 나한테로 그렇게 올지는 꿈에도 몰랐네” 자료번호 : iswj.d_0002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