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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증언자료

구술의 재현과 편집상의 문제들

구술의 재현과 편집상의 문제들

복잡한 그물망을 뚫고 나온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연구자의 손을 거쳐 텍스트화 되면서 역사쓰기의 장에 본격적으로 들어선다. 구술을 텍스트화 한다는 것은 구술자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문자화 한다는 것이 아니다. 구술 텍스트는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관점에서 듣고, 재현하는가라는 정치적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연구자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구술의 재현은 역사담론의 장에 구술자와 연구자가 함께 손을 잡고 들어가는 작업이다.
구술자가 면접자를 매개로 스스로의 경험과 기억을 1차적으로 재현했다면 면접자는 구술자의 1차적 재현을 최대한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구술자의 몸짓, 표정, 침묵 등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녹취록을 통해 2차적인 재현을 하였다. 그리고 편집본은 2차적 재현물인 녹취록을 바탕으로 하되 독자들의 가독성을 고려하여 재편집된 3차적 재현물이다. 이 세 가지의 재현(물)들은 한 사람의 경험과 기억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각각 다른 형식과 영역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생산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녹취 과정이 면접자가 인터뷰 상황을 얼마나 잘 기억하고 있느냐와의 싸움이라면 편집본을 생산하는 과정은 독자의 이해를 염두에 두면서 구술자의 이야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배치하느냐의 문제이다.
편집본 구성을 시작하면서 연구팀은 무엇보다도 구술자의 기억구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구술을 배치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구술자가 사실(fact) 그 자체를 얼마나 정확하게, 많이 기억하고 있느냐가 아니었다. 우리가 구술자를 통해 듣고 싶은 것과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은 구술자의 기억 그 자체뿐만 아니라 구술자의 기억구조 즉, 말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사회적 담론 지형 안에 있는 구술자가 기억하는 것과 침묵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형식으로 기억하고 있는가이다. 다시 말해서 이 편집본은 어떤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이 아닌,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수 십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자신들이 겪었던 경험과 그 경험 때문에 구성된 생애 전반을 자신들만의 독특한 기억구조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편집본을 만들어가면서 팀원들은 면접상황에 함께 있지 않았던 독자들에게 구술자의 기억구조를 그대로 따라오라는 것이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지를 차츰차츰 느껴갔다. 복잡하게 엉켜진 채로 기억의 실타래를 던져놓는, 혹은 치매에 걸려 누구의 경험인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쏟아내는, 혹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는 구술자의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함께 공감하기 위해서 연구팀에서는 구술자의 기억구조를 따라가기보다 오히려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고 어떤 이야기를 그냥 묻어 둘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때문에 이 편집본은 구술자의 경험과 기억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연구팀의 이해와 관심에 의해, 혹은 2003년 현재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들에 의해 배제되고 선택된 것이다.
편집본을 만들어가면서 연구팀은 편집의 원칙들도 새롭게 만들어 나갔다. 그것은 초기에 편집방향으로 잡았던 구술자의 기억구조를 훼손하지 않는 것에 중점을 두기보다 편집자의 적극적인 개입 지점을 드러내자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 과정이 구술자에게 주도권을 주었다면 편집본 구성의 주도권은 편집자가 가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편집자의 개입의 지점들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개입의 지점은 일차적으로 소제목과 표제를 넣는 것으로 나타내었다. 소제목과 표제는 짜임새 있게 정리된 글이 아닌 ‘이야기’로 구성된 텍스트를 읽는 독자들에게 중간 중간 맥을 잡아주는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이 소제목과 표제는 대부분 구술자의 이야기 속에서 따왔지만 그렇다고 구술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와 같이 맥락화 시켜서 이야기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독자들의 가독성을 고려하여 편집자가 만들어낸 표지판이다.
두 번째 개입 지점으로 논의 된 것은 면접자의 질문을 넣을 것인지의 여부였다. 연구팀 내에서는 인터뷰 상황이 상호 주관적이었는데 편집본에서 면접자의 질문을 의도적으로 삭제하는 것은 마치 구술자 스스로가 독자들에게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처럼 보여 왜곡의 소지를 제공 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게다가 면접자의 질문 없이 구술자의 이야기만으로 편집본의 맥을 이어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 과정에서 면접자의 질문을 의도적으로 삭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구술자의 주체성, 즉 구술자 자신이 스스로의 경험을 재현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물론 인터뷰과정에서 면접자는 구술자의 기억을 촉발시키기 위해 질문을 던지면서 경험의 재현에 관여하였고 그 경험들을 다시 독자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녹취록과 편집본을 만들면서 곳곳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하지만 말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경험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편집의 주도권이 면접자에게 있더라도 경험과 재현의 주체는 구술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편집본에 면접자의 질문이 포함된다면 면접자와 구술자의 목소리가 혼재되어 구술자의 목소리가 잘 드러나지 않을 수밖에 없고 이것은 곧 경험과 재현의 주체로서의 구술자의 목소리가 희석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하자면 경험주체의 목소리를 더 잘 들리게 하기 위하여 편집본에서는 질문을 의도적으로 삭제하였다.
질문을 포함시키지 않는 대신 대괄호와 소괄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긴 설명을 요하는 최소한의 것만을 본문 밖에서 각주로 설명하고 간단한 사투리나 지시어, 동작 등은 모두 본문 내에서 대괄호와 소괄호로 설명하여 독자들이 구술성이 강한 문자를 읽을 때 생기는 어려움을 본문 내에서 해결하도록 하였다.
질문을 대신하는 개입지점은 따옴표 기호를 통해서도 나타냈다. 이 따옴표는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 -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2001, 풀빛, 이하 증언4집)에서 힌트를 얻었다. 증언4집에서는 따옴표를 구술자가 독자를 향하여 말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기호임과 동시에 구술자 스스로가 자신을 재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호로 사용하였다. 우리는 증언4집의 고민을 수용하되 좀 더 확대된 의미로 따옴표를 사용하였다. 우리가 사용한 따옴표는 면접자의 질문이 삭제됨으로써 잘 드러나지 않는 면접상황의 상호 주관성, 구술의 파편성을 나타내는 기호이다. 즉 따옴표 기호를 통해 구술자 스스로가 독자를 향해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 편집자가 곳곳에 개입해서 이야기를 재배치하고 있음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또한 독자들은 짧게 끊어지는 따옴표 안의 이야기를 통해, 혹은 길게 이어지는 따옴표를 통해 구술자가 어떤 부분에서 힘들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어떤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구술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따옴표는 편집자의 개입지점을 드러내는 기호임과 동시와 구술의 파편성을 나타내는 기호이다.
하지만 단지 구술 상황에만 한정된 기호로 따옴표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따옴표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경험을 언어화 할 때 나설 수밖에 없는 ‘낯설음’을 상징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언어로 남성의 경험을 듣고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해 있어서 여성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듣는 것에 낯설다. 언어는 곧 인식에서 나온다. 따라서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어떤 사건이나 경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은 끔찍한 집단강간의 경험을 ‘그것’ 혹은 ‘받았다’라는 언어로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과 ‘받았다’는 언어를 자연스럽게 수용해 왔다. 그녀들은 ‘그것’을 집단강간으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통제되어 왔고, 때문에 ‘강간을 당했다’라고 표현하지 못한다. 우리 또한 아직까지도 ‘순결을 빼앗겼다’라고 인식하고 듣는데 익숙해 있어서 그녀들이 ‘강간을 당했다’라고 말한다면 적잖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이 여성들은 여성의 경험을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언어를 가지는데 소외되어 왔기 때문에 가부장적 사회구조 안에서 앞선 세대 여성들의 경험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경험이 별반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혹은 우리 자신의 경험이 언어화 될 때 낯설음을 느낀다. 따라서 이 책에서 사용한 따옴표의 의미는 면접상황의 상호주관성, 구술의 파편성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여성의 경험을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낯설음’을 표현하는 기호로 사용하였다. 이 낯설음은 앞으로 여성들이 언어를 가지고 다양한 여성의 경험들이 담론화 될 때 따옴표와 함께 사라질 것으로 믿는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의 개입지점은 참여기에서 나타난다. 연구팀은 구술작업이 구술자와 면접자의 관계, 구술을 하고 있는 상황과 조건이 어우러져 완성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참여기를 실었다. 따라서 참여기에서는 구술자와 면접자의 사적인 관계들을, 혹은 구술텍스트 이외의 맥락, 예를 들어 구술자의 개인적인 사정이나 정치적인 이유들로 텍스트에서 설명되지 못한 이야기나 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 줄 것이다. 더불어 구술자들을 만나고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편집자의 고민들도 함께 첨가하였다. 물론 참여기에서 조차도 드러낼 수 없는 구술자의 사적인 사연들은 끝까지 ‘비밀’로 붙여져야 했고 심지어는 처음 인터뷰를 시작 할 때에는 허락을 했지만 인터뷰가 끝나갈 때 쯤 책에 실리는 것을 반대해 이 책에 실리지 못한 구술자들도 있다. 연구팀은 인터뷰나 출판을 거부하는 혹은 거부하게 하는 과정과 맥락 또한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에 대한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또 다른 형태의 ‘증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참여기가 아닌 실패기도 함께 실었다. 실패기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과 피해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듣는 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투쟁인가를 느끼게 될 것이다.
참여기를 쓰는 과정에서도 몇 가지의 논쟁들이 있었다. 특히 구술자들을 어떻게 불러야할지, 호명을 통일하기가 쉽지 않았다. 팀원들은 각각 저마다의 이유로 ‘할머니’, ‘그녀’, 혹은 구술자의 이름 그대로 부르기를 고집했다. 일반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은 할머니라고 호명된다. 할머니라는 호칭에서는 친근함이 묻어 나와 일본군 ‘위안부’ 라는 무거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여성들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마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할머니라는 호칭을 쓰기를 반대하는 팀원들은 한국사회에서 할머니는 힘없고 무성적이며 타인을 위해 무엇이든 양보해야할 것 같은 사람으로 이미지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라는 호칭은 구술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라는 하나의 집단이 아닌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독립된 주체임을 드러내고자 하는 우리 작업과 역행하여 또 다시 할머니라는 고정된 이미지로 구술자들을 집단화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할머니라는 호명보다 구술자의 이름이나 ‘그녀’라는 대명사로 호명함으로써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집단화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라고 호명하기를 주장하는 팀원들은 우리가 구술자를 만났을 때 이름을 부르지 않고 할머니라고 부르기 때문에, 즉 우리와 구술자 사이의 사적관계를 참여기에서 만큼은 그대로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인터뷰 상황에서 구술자는 말하는 주체이고 우리들은 듣는 주체이기 때문에 삼인칭 대명사인 ‘그녀’를 사용하는 것도 구술자를 타자화 시키는 느낌을 준다고 했다. 그렇다고 할머니라고 호명하는 것이 결코 할머니에 대한 한국사회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하였다. 인터뷰 상황이 우리가 구술자를 관찰하는 것이 아닌 상호작용이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할머니라는 호명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두 문제의식을 어떤 하나의 방향으로 정리하여 호명에 대한 일치를 보기보다 두 문제의식 모두를 독자를 향해 열어놓고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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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의 재현과 편집상의 문제들 자료번호 : iswj.d_0001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