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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증언자료

일본군 ‘위안부’ 여성의 경험을 말한다는 것

일본군 ‘위안부’ 여성의 경험을 말한다는 것

면접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에게 구술을 요구했을 때 그에 대한 반응은 매우 다양했다. 기존의 구술집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은 것을 섭섭해 하면서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면접자를 타박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면접자들의 인사 방문조차 꺼리는 경우가 있었다. 인터뷰에 적극적인 생존자에게는 구술이 자신을 동네 스타로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신문이나 TV에 소개된 후부터는 주변에서 알아보고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어떤 생존자는 ‘위안부’ 등록증을 액자에 끼워 거실 벽에 걸어놓으며 ‘자랑스러워’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랜 피해의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소극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인터뷰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들을 쉽게 예단했던 면접자들의 태도가 얼마나 성급했던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이 여성들에게 과거는 현재의 삶을 이겨낼 수 있는 동력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위안부’ 등록증을 받고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부터 오랜 기간 동안 앓았던 병도 낫고 삶에 대한 애착도 더 강해지게 된 사례는 과거를 말하는 행위 자체가 치유의 과정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수의 ‘위안부’ 생존자들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우리 연구팀은 이제까지 나온 구술집에 포함되지 않은 생존자들을 중심으로 구술자를 섭외 하였지만 인터뷰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과거가 알려지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였다. 면접자들은 이 작업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를 설명하며 설득했지만, “역사도 좋지만 내가 살아야지”라는 울부짖음 앞에서 역사적 당위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승낙을 한 경우에도 가족이 외출하고 없을 때에만 면접자의 방문을 허락하거나, 혹은 집이 아닌 다른 면접장소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 자신을 드러내는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몇 번씩 확인 받고 나서야 구술에 임했다.
많은 ‘위안부’ 생존자에게 자신의 과거는 죽을 때까지 가슴에 안고 가야 할 부끄러운 경험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양심을 속이고” 살아왔던 것에 대한 자책으로 힘들어한다. 그녀들의 내면적인 불안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악몽을 꾸거나 정신분열증을 앓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생존자 개인에게 ‘위안부’ 경험은 과거 역사에 묻혀진 채로가 아니라 그녀들의 현재에 언제고 되살아나는 망령인 것이다.
‘위안부’ 생존자들이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오랜 세월동안 금기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망각은 가부장적 한국사회에 의해 강요된 것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 그녀들 개인에게는 생존의 방식이기도 했다. 즉 “억울해도 나는 그냥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해방” 되었다거나, “그걸 다 기억하고 살았으면 아마 살질 못 했을 것”이라는 고백은 망각이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힘겨운 세월을 견뎌내기 위한 선택이자 생존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애써 잊었던 “참말이지만 꿈 속 같은” 과거를 되씹는 과정은 안개 속 같이 희뿌연 미로를 통과해야 하는 힘겨운 여정이다. 이 여정은 자기 고통의 근원과 마주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구술자들에게 있어 구술행위는 고통의 재현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을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각오와 결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위안부’ 경험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단지 생존자가 입을 열기만 하면 되는 개인적인 결단의 문제만은 아니다. ‘위안부’ 생존자들의 구술은 여러 겹의 복잡한 그물망 위에 놓여져 있다. 그녀들에게 과거를 말한다는 것은 남편과의 이혼을 의미했으며, 자식들의 가슴에 피멍을 들이는 행위였고,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는 것이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부정적 시선과 정신적 지주인 그녀들의 또 다른‘남편’(친아들, 양아들, 남자 조카)의 반대는 정작 어렵게 구술을 결심하고도 그것을 번복하게 만들었다.
자존심 회복이나 역사적 의무감, ‘위안부’ 등록 이후 국가로부터 받는 보조금 등이 그녀들의 구술을 강제하는 하나의 축이라면, 가족과 사회의 시선과 견제는 ‘위안부’ 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끊임없이 회의하게 만드는 불안의 축이다. ‘위안부’ 생존자들의 구술은 이 두 개의 축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고, 갈등하고, 번민하는 과정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안부’ 생존자들의 구술 행위는 구술상황이 놓인 복잡한 그물망을 뚫고 나와 자신에게 씌워진 침묵의 굴레를 거부하는 행위이다. “부끄럽지만, 부끄럽지만은 않은” 자신의 생애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 동안 한국 사회가 유포해 왔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비켜 가는 주체의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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