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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증언자료

왜 ‘이야기’인가?

왜 ‘이야기’인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의 구술은 ‘위안부’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제기하고 일본의 책임을 묻는데 있어 가장 호소력 있는 증거 자료가 되어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운동에서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증언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것과 ‘위안부’ 여성의 경험을 말하고 듣는 작업은 같으면서도 다른 차원의 일이다. 사실의 정확성이 요구되는 증언은 사료의 공백을 메우는데 유효한 방법일 수는 있으나, 구술자가 삶의 주체로서 자신의 생애에 대해 평가하고 해석하는 구술주체성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위안부’ 여성들의 경험을 듣는 작업을 ‘증언’으로 국한시킬 경우 면접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을 듣는 잘못을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의 엄밀성이 요구되는 다분히 엄숙한 증언과 달리, 우리가 구술을 ‘이야기’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이유는 그것이 가지는 주관적 체험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경험 당사자의 해석을 존중하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개인의 경험과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어 온 공식 담론을 아래로부터 허물기 위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이 과거를 기억해 내는 것은 공적 역사, 즉 역사적 지식이 갖는 권력에 대해 투쟁하는 것을 의미한다.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주장대로라면 이들이 갖고 있는 기억의 잔재들이 만들어 내는 역사는 복수로서의 역사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복수로서의 역사는 많은 접합점들, 즉 역사가 여러 방향으로 전환될 수도 있는, 그래서 지금과는 다른 현재와 다른 미래로 연결될 수도 있는 접합점들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 따라 이 책에서는 과거 역사가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한 개의 역사라는 관점을 버리고, 과거에 대한 비판적인 접점들을 찾기 위해 개인들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제까지 “강제로 끌려간 일본군위안부”라는 공식 기억과 자신의 사적 기억이 균열을 일으킬 때 개인의 기억은 금기의 기억이 되어왔다. 우리 사회가 기억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는 “강제로 끌려간” 기억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가난 때문에 성매매업소에 팔려갔다가 영문도 모른 채 전장의 위안소로 동원되었던 여성들의 고통 따위는 없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었던 여성과 가난 때문에 팔려갔다가 위안소로 동원되었던 여성들의 고통에는 어떤 질적인 차이들이 있는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조선의 가부장제와 식민지 민족문제가 만나는 접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강제로 끌려간”이라는 규정은 ‘위안부’ 문제를 단순화시킴으로써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다양한 이념들 간의 상호작용을 간파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한 규정은 가부장제와 성매매 문제를 ‘위안부’ 문제의 한 축으로서 이해하지 못하게 하며, 성매매 업소에 팔려갔던 수많은 여성들의 경험을 배제시킨다. 식민지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이러한 여성들의 경우 일본군의 성노리개로서 “강제로” 동원된 여성들과 동일하게 위안소에서 폭력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예외적인 경우로 취급되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배제되어 왔다. 이것은 일본군 ‘위안부’ 개념이 지나치게 동원과정의 강제성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동원과정만을 부각시켜 일본군 ‘위안부’의 전형을 만들어냈던 기존의 ‘위안부’ 개념의 생산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위안소에서의 성폭력 경험과 그 당사자의 기억을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 개념이 재정립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에서, 이 책에서는 “강제로 끌려간”이라는 수식어를 과감히 버리고, 그 동안 민족담론의 틀에서 배제되었던 개인의 경험들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즉, 거대담론 아래에서 공론화 되지 못했던 개인의 역사를 ‘이야기’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억을 역사화 한다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기억을 국가나 민족 담론 내에 위치 지우려는 것이 아니다. ‘위안부’ 여성의 경험을 말하고 듣는 과정은 그 자체가 기존의 역사 담론에 대한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며, ‘위안부’ 생존자의 경험을 민족주의 담론으로 단일하게 읽어냈던 통합전략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경험을 역사화 한다는 것은 그동안 민족사가 전유해 왔던 ‘위안부’ 여성의 경험을 ‘여성들의 역사’로 되가져오는 작업이자 경험 당사자의 시선과 기억으로 민족을 다시 보려는 시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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