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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一 出城/ 구주단

薊山紀程

 
 

卷之一 出城/ 九疇壇

 

구주단(九疇壇)
평양은 옛날 기자(箕子)의 도읍지이다. 그 유풍과 고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있으니, 그 기이한 구경거리를 철저히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마침내 주작(朱雀) 지도 ㆍ함구(含毬) 지도 두 문으로 해서 나섰다. 성은 내성(內城)[도성도 뷰어연계 007]과 외성(外城)[도성도 뷰어연계 023]이 있는데 각각 한 성에 한 문씩이다. 외성 나가는 데로 길을 잡아 정전(井田)의 옛터를 찾았다. 밭 길은 왕래하는 사람이 많았고, 정연한 구획(區劃)은 그린 것 같으며, 사방에는 등성이가 없어 가이없이 뻗어 있다. 모퉁이에 돌을 세워 1정(一井)의 한계를 표시하고 있다. 밭 가에 기자궁(箕子宮) 지도 의 옛터가 있는데 궁전이 우뚝하다. 동구(洞口)에 ‘인현리(仁賢里)’란 비석이 세워져 있고, 궁전 문에는 ‘팔교문(八敎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동구로 해서 문으로 들어가면 단이 마련되어 있고 거기에 돌을 쌓아 단면에 새기기를, ‘구주단(九疇壇)’이라 했다.
또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기자궁구기(箕子宮舊基)’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비석에는 음기(陰記)가 있는데 고 관찰사 이정제(李廷濟)가 지은 것이다. 여기서부터 또 앞으로 얼마쯤 가면 기자의 우물이 있고 우물 곁에는 돌을 세워 ‘기자정(箕子井)’이라고 새겨 있다. 우물의 깊이는 열 길가량이나 되는데, 우물의 난간에서 굽어보면 다만 파란 물빛만이 보일 뿐이다. 구삼문(九三門)으로 해서 내전(內殿)으로 들어가니 그 당급(堂級)의 제도는 서울의 학교와 같아, 북쪽은 삼익재(三益齋), 남쪽은 양정재(養正齋), 좌우의 재방(齋房)은 의인재(依仁齋)ㆍ지도당(志道堂)이었다. 재실에는 경의생(經義生)이 있어 큰 족자 하나를 받들고 나와 펼쳐 보여 주는데, 그것은 정전구혁도(井田溝洫圖)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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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疇壇
 
平壤。古箕聖都也。其遺風餘躅。猶有存者。則不得不搜剔其奇覽。遂由朱雀,含毬兩門出。蓋城有內外。而各一城一門也。路出外城。訪井田舊址。田路旁午。井井如畫。四無崖脊。一望無際。夫隅立石。標一井之制。田畔有箕子宮舊基。殿宇巋然。洞口豎仁賢里之碑。殿門揭八敎門之扁。由洞入門。則設壇築石。刻於壇面曰九疇壇。又豎碑而刻箕子宮舊基五字。碑有陰記。故觀察使李廷濟所撰也。自此又前行數帿。有箕子井。井傍立石。刻曰箕子井。井之深。可十許丈。俯井欄視之。只見蒼蒼者水色。由九三門入內殿。堂級之制。京城庠舍。北曰三益齋。南曰養正齋。左右齋房曰依仁齋,志道室。齋中有經義生。奉一大簇展示。是井田溝洫圖也。
 
野色蒼蒼接遠天。古宮西畔石壇圓。三千歲後東明國。遺制猶看井井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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