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獻指掌編/ 平壤府
林下筆記
文獻指掌編/ 平壤府
영숭전(永崇殿)은 부성(府城) 안에 있는 고려 때의 장락궁(長樂宮) 옛터에 있는데 아조(我朝)의 태조 영정을 봉안하고 있었으나 정묘년의 병화에 불에 탄 뒤 그대로 폐지되고 말았다.
부벽루(浮碧樓)는 부(府)의 남쪽 5리 되는 을밀대(乙密臺) 아래의 영명사(永明寺) 동쪽에 있는데 전조(前朝)의 승려 여상인(輿上人)이 세운 것으로 예종(睿宗)이 서순(西巡)했을 때 평장사 이발(李潑)이 이름을 지었고 본조(本朝)의 세조(世祖) 경진년(1460, 세조6)에 신숙주(申叔舟)가 그 기문(記文)을 짓고 광해군 계축년(1613, 광해군5)에 감사 김신국(金藎國)이 중건하였다. 선조(宣祖) 초에 명나라 사신 허국(許國)이 와서 이를 보고 말하기를, “그 경관(景觀)이 우리 중국의 소항(蘇杭 소주(蘇州)와 항주(杭州))과 서로 견줄 만하다. 그런데 소항은 번화하고 화려함이 비록 천하에 비할 데가 없지만 모두 사람들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에 비하여 부벽루는 그 청류(淸流)와 벽장(碧嶂)이며 도서(島嶼)와 봉만(峯巒)들이 실로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니 소항보다도 낫다 하겠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