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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獻指掌編/ 箕子墓

林下筆記

 
  • 출전『林下筆記(임하필기)』 제13권 —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 평양부(平壤府)를 중성(中城)과 합성(合城)하다.
 

文獻指掌編/ 平壤府를 中城과 合城하다

 
한국고전종합DB
【민진원(閔鎭遠)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평양의 성부(城府)는 내성(內城) 밖 서남쪽에 중성(中城)이 있고 중성 밖에 또 외성(外城)이 있으며, 내성 밖 동남쪽 모퉁이에는 모란봉(牧丹峯)이 있는데 이것이 곧 부성(府城)의 주봉(主峯)입니다. 이 봉우리에 올라가면 성안을 굽어볼 수 있어서 아무런 장애물이 없으므로 만약 이 성을 지키고자 한다면 이 봉우리를 버려두어 적에게 엿보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성의 남문 밖에 또 한 갈래의 산등성이가 뻗어 있는데 이것이 수백 보에 걸쳐서 성보다도 높게 치솟아 있으니, 만약 중성으로 나오게 한다면 이른바 산등성이라는 것이 자연 성안으로 들어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안은 둘레가 16리에 불과한 데다 각 고을의 군사와 백성들이 모두들 위급함에 임박하면 성안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와 같은 16리의 성으로는 좁아서 이를 수용할 수 없으며, 또 내성에는 우물이 없어서 사람들이 강물을 길어다 먹고 있는데 혹시라도 변고가 생겨 적인(敵人)들이 그 상류에 독약이라도 풀게 될 경우 성안 사람들은 필시 목이 말라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만약 중성을 통합하여 이를 하나의 성으로 만든다면 중성에는 우물이 많으므로 사람들이 갈증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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