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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평양성

내성 : 기자묘

■ 내성 :기자묘

  • 기자묘 앞에 위치한 건물의 구조는 송암본과 육군본 사이에 다소 차이가 있으며, 송암본에는 묘비 양측에 석물이 놓여 있는 반면 육군본에는 묘비만 묘사되어 있음. 기자묘가 내성벽 바깥쪽에 위치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됨.

기자묘
중국 은(殷)나라의 삼인(三仁)의 하나로 전해내려오는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건너와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에 따라 후대에 추정된 무덤이다. 그러나 상고사연구의 진전으로 기자동래설의 허구성이 드러나 현재로는 후대에 잘못 와전되었거나 조작된 전설로 인정할 뿐이어서 자연히 가자묘문제도 똑같이 취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려사』 예지(禮志) 잡사조(雜祀條)에는 1102년(숙종 7) 10월 기자를 기녀마기 위한 신사(神祠)를 세워 제사를 올리자는 내용의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역시 그 당시에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진 기자를 기념하자는 뜻일 뿐 실제로 실존하였다는 의미는 아니라 할 수 있다.
현재 이른바 기자묘라 불리는 능은 아마 이 때에 건설되었을 것이며 나아가 이러한 능의 존재는 그 때 건설된 기자사당자리를 가지고 후대에 허위축조 한 것으로 보인다.
송암미술관 소장본_기자묘
육군박물관 소장본_기자묘
3D복원_기자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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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 : 기자묘 자료번호 : ispy.d_0004_0030_0040_0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