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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평양성

내성 : 칠성문

■ 내성 :칠성문

  • 송암본에는 칠성문이 완전히 누락되어 있는데, 개장 과정에서 잘렸을 가능성도 있음. 반면 육군본에는 잘 묘사되어 있음.
  • 칠성문은 육군본에 의거해 복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됨.

칠성문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에 있는 칠성문은 6세기 중엽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북문으로 처음 세워졌다. 칠성문이란 북두칠성에서 유래하여 북문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성문의 위치는 유지되었지만, 문루는 1711년(숙종 37)과 1764년(영조 40)에 중건된 기록이 있어 이 시기의 것으로 보인다. 칠성문에서 문길이 있는 아래 부분은 계속해서 보수되었지만, 대체로 고구려 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칠성문은 성벽을 서로 어긋나게 겹쳐 쌓은 사이 틈에 성벽과 직각방향으로 쌓아 만든 것으로 암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성문의 석축을 성벽에 직각으로 쌓아 자연스럽게 옹성 역할을 함으로 방어의 목적을 수행하였는데, 북한의 학계에서는 이를 고구려의 성문제도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성문의 이러한 방식은 일반 암문과 차이가 있는데, 암문은 성문이 있다는 사실을 적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 문루를 두지 않는데, 칠성문은 문루를 두어 암문과의 차이를 두었다.
칠성문의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이다. 문루에는 사방 돌아가면서 흘림기둥을 세웠는데, 정면 가운데 어칸은 밑에 낸 홍예문길을 피하여 조금 넓게 잡았다. 이것은 문루의 중심을 강조하는 효과를 낳는다. 기둥의 상부에 공포를 사용하지 않고, 대들보 밑에 아름다운 초엽을 받쳤다. 건물 내부는 다른 문루와 마찬가지로 천장을 가설하지 않고 시원하게 틔워 놓았으며, 어칸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단청은 모로단청으로 치장하였다.
대체적으로 칠성문의 문루 의장은 일반적인 문루의 격식에 비하여 간략하게 처리되었다. 반면에 하부의 석축은 쉽게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방어에 유리한 독특한 구성을 갖는다.
송암미술관 소장본_칠성문
육군박물관 소장본_칠성문
3D복원_칠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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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 : 칠성문 자료번호 : ispy.d_0004_0030_0040_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