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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평양성

내성 : 을밀대

■ 내성 :을밀대

  • 송암본에는 을밀대가 완전히 누락되어 있는데, 개장 과정에서 잘렸을 가능성도 있음. 반면 육군본에는 잘 묘사되어 있음.
  • 을밀대는 육군본에 의거해 복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됨.

을밀대
을밀대는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북장대로 금수산 을밀봉 위에 솟아있는 것이다. 을밀대라는 명칭은 ‘웃미르터’ 혹은 ‘웃밀이언덕’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아득히 먼 옛날 ‘을밀 선녀’가 경치에 반하여 하늘에서 자주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에서 생겼다고도 하고, 고구려시대에 이 장대를 굳건히 지켰다고 전해지는 ‘을밀 장군’의 이름을 따와 지었다는 전설도 있다.
지금의 누정은 1714년에 축대를 보수하면서 고쳐지은 것이다, 그러나 높은 축대의 원형은 고구려 때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높이 11m에 이르는 높은 석축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것으로 수원성의 장대와 같이 탑상으로 솟아올라 있다. 이와같은 석축은 경사지를 절벽으로 따내고 외벽면으로 석축을 쌓은 단애성벽으로서,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자연지형을 잘 이용한 뛰어난 성벽 축조기술을 보여주며, 적은 노동력으로 뛰어난 방어력을 가질 수 있어서 평산성(반산성)•산성 등지에 고루 사용되었다.
누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팔작집으로 비슷한 시기에 건립한 칠성문루와 비슷한 규모이나 그 의장의 격식에 있어서 한층 높은 것이다. 기둥은 밑 부분에 높이 1m 정도의 4각 돌기둥을 받치고 그 위에 흘림기둥을 이어 세우는 형식으로 하여 비바람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였다. 이는 개성 남대문과 같은 처리기법이며, 조선후기 개방형 장대건축에서 흔히 발견되는 수법이다.
기둥 위에는 2익공 공포를 얹었다. 화반에는 귀면무늬로 된 것도 있고, 연꽃무늬로 된 것도 있다. 상부구조는 5량가 형식이며 천장을 가설하지 않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부재의 장식이 매우 세련되고 누정에 입힌 화려한 모로단청과 부재에 그려 넣은 귀문과 여의주를 든 용은 다채로움을 더한다.
을밀대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는 ‘乙密賞春(을밀대의 봄맞이)‘으로 일찍부터 백성들의 사랑을 받아 평양8경의 하나로 알려져 왔다.
송암미술관 소장본_을밀대
육군박물관 소장본_을밀대
3D복원_을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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