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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평양성

북성 : 부벽루

■ 북성 :부벽루

  • 건물 자체는 육군본보다 송암본이 훨씬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구조도 다소 차이가 있음.
  • 부벽루는 송암본에 의거해 복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됨.

부벽루
부벽루는 평양시 중구역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건물로서, 금수산 모란봉의 동쪽, 대동강가에 깍아지른 듯 솟아 오른 청류벽 위에 세워진 누정이다. 393년(광개토왕 3)에 건립한 것을 1614년에 재건하였다. 부벽루는 고구려 때인 393년에 세워진 영명사의 부속건물로 초창되었으며, 영명루라고 불렀다. 그 후 12세기에 이르러 대동강의 맑고 푸른 물위에 떠 있는 둣한 누정이라는 뜻에서 부벽루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부벽루는 창건이후 수차례의 재건과 보수를 거듭하였는데 지금의 누정은 고려시대 중창된 건물이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되면서 1614년(광해군 6)에 재건한 것이다. 부벽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5량가 구조로 부연이 있는 겹처마 팔작집이다. 이 팔작지붕은 2익공을 얹은 배흘림이 거의 없는 원기둥이 떠받들고 있다. 이 기둥은 둥근 주춧돌위에 서 있는데 그 간격은 가운데 칸을 제일 넓게 하고 양옆으로 가면서 조금씩 좁혔다. 초석 중 정면의 2개와 후면의 1개는 고구려때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전금문으로 부터 부벽루로 오르는 좌우 두 곳의 돌계단도 고구려 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안 바닥은 마루를 설치하지 않고 잘 다듬은 박석을 정연하게 깔았고 천장은 보, 서까래 등이 그대로 노출되어 보이는 연등천장이며 모루단청을 하였다. 부벽루는 뛰어난 건축술과 아름다운 경치로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조선 3대 루의 하나로 이름 높았다. 부벽루에 올라서면 녹음 우거진 능라도를 품에 안고 청류벽 밑을 씻을 듯이 유유히 흐르는 맑은 물과 강 건너로 시원히 펼쳐진 넓은 들, 그리고 멀리 기복을 이룬 아담한 산들이 한 눈에 안겨와 그 전망이 비할 바 없이 좋다. 고려 때의 이름난 시인 김황원(1045-1117)이 이 아름다움을 시에 담으려다가 온종일 애쓴 끝에 "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긴 성 한 쪽면에는 넘실넘실 강물이요, 큰 들판 동쪽 머리엔 띄엄띄엄 산들일세)"까지 쓰고는 다음 시구가 더 떠오르지 않아 한스러워서 통곡하며 붓대를 꺾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전하여지고 있다. 부벽루의 낮 경치가 그렇듯 좋지만 밝은 달이 떠오른 밤경치도 그에 못지않게 훌륭하여 "浮碧玩月(부벽루의 달구경" 은 일찍부터 평양 8경의 하나로 불리어져 왔다.
송암미술관 소장본_부벽루
육군박물관 소장본_부벽루
3D복원_부벽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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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 : 부벽루 자료번호 : ispy.d_0004_0030_004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