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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도」의 등장과 善本

 
 

「평양성도」의 등장과 善本

 

「평양성도」에 대한 명칭은 소장처에 따라 「箕城圖」, 「平壤圖」, 「平壤城圖」, 「西京圖」 등 조금씩 다른데, 이 글에서는 평양성 일대의 경관을 1폭에서부터 여러 폭의 병풍에 담은 그림을 총칭해 「평양성도」라고 부르고자 한다. 「평양성도」처럼 특정 지역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그림의 질적‧양적 수준은 「평양성도」에 견줄 정도는 아니었다. 현재 남아 있는 사료에 따르면 늦어도 16세기 중반 무렵부터는 평양의 풍광을 그림에 담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상이 승전색 崔漢亨과 승지 이양에게 명하여 永崇殿〈平壤府에 있는데 太祖大王의 影幀을 안치해 둔 곳이다〉을 奉審하게 하고, 인하여 西京〈바로 평양이다〉의 山川과 樓觀의 景勝을 그려오게 하였는데, 이때에 畫史에게 명하여 채색을 칠하여 병풍을 만들게 하고, 또 鄭惟吉에게 명하여 詩를 짓게 하고 이양에게 명하여 記를 짓게 하고서, (다음과 같이) 전교하였다.
“나는 옛 도읍을 갖추어 보고 싶어서 하는 일이지만 혹 사람들 중에 무익한 일에 뜻을 둔다고 탄식하는 자가 있을까 두렵다.”(『명종실록』권26, 명종 15년 6월 2일 정유) [주002]
각주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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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酉/初, 上命承傳色崔漢亨、承旨李樑, 奉審于永崇殿, 因畫西京 山川、樓觀之勝以來。 至是命畫史, 繪綵爲屛, 又命鄭惟吉作詩, 李樑作記。 傳曰: “欲予備觀古都矣, 恐人或有恨其留意於無益者。”
『명종실록』. 권26. 명종 15년 6월 2일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명종실록』에 실린 위의 기사에 따르면 명종 15년(1560) 6월 이전에 명종은 최한형과 이양 등에게 명하여 평양의 산천과 누관 등의 풍경을 담은 그림을 그려 병풍을 만들게 하였다고 한다. 이때 제작된 작품이 현존하지 않는 까닭에 병풍에 담긴 그림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풍광을 담고 있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산천과 누관의 경승을 그려오게 하였다는 점이나 “옛 도읍을 갖추어 보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평양성도」 병풍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현존하는 「평양성도」 병풍은 수십점에 이르는데, 그 동안의 연구에 따르면 송암미술관 소장본(이하 송암본이라 함)과 육군박물관 소장본(이하 육군본이라 함)이 가장 古本인 동시에 善本으로 꼽히고 있다. 양자가 제작된 시기는 약간의 시차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로 비정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 장안성을 복원하기 위한 기초자료로서 조선 후기에 그려진 「평양성도」를 활용할 경우에는 송암본과 육군본을 우선적인 검토 대상으로 꼽을 수 있다. 다만 송암본과 육군본에 담긴 평양의 풍광은 1800년 전후의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송암미술관 소장본_기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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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암미술관 소장본_기성도


 

주 002
丁酉/初, 上命承傳色崔漢亨、承旨李樑, 奉審于永崇殿, 因畫西京 山川、樓觀之勝以來。 至是命畫史, 繪綵爲屛, 又命鄭惟吉作詩, 李樑作記。 傳曰: “欲予備觀古都矣, 恐人或有恨其留意於無益者。”
『명종실록』. 권26. 명종 15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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