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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평양성

지표조사

지표조사

한백겸(1550∼1613)은 『구암유고』의 『기전유제설』에서“정미(1607) 가을에 나의 동생 유천공이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는데, 나도 어머님을 모셔드리기 위해 평양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기전유제를 보았으며, 천맥이 모두 정연하게 남아 있었고, 파괴됨이 없었다. … 그 땅을 살펴보니 그 전형 무법과 맹자가 논한 정자지제는 같지 않았다. 그 중에서 함구문과 정양문 사이의 구획이 가장 분명하였다. 그 제도는 모두 전자 모양을 이루었고, 전에는 4구가 있고, 매 구는 모두 70무였다. 대로의 안에서 가로로 보아도 4전 8구, 세로로 보아도 역시 4전 8구로, 4전은 4상을 본받은 것이고, 8구는 8괘를 본받은 것이다. 8의 2곱인 64구도 정정방방으로 그 법상이 바로 선천방도와 유사하다. … 대략 구의 사이는 1무로, 전의 사이는 3무로이고, 64구를 하나로 구획한 바깥 3면(동, 서, 남)에는 9무대로가 있는데, 이 큰길은 두 성문(정양문·함구문)으로부터 영귀정나루에 닿았다. 이것은 왕래하는 큰길과 같았으며, 오직 전답 사이의 둔덕만을 위해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꼭 16전 64구로 구획하여 구역을 만든 것은 한계를 위해 만든 것이다. 여기서부터 밖으로는 밭 사이에 길을 파먹으며 경작하여 옛날의 길을 잃어버린 데가 있으니, 옛 자리를 잃어버린다면 후인들은 설치한 본의를 알지 못하고, 3무를 기준으로 삼아서 정정할 것이고, 다시는 큰길과 중간 길의 구분이 없어질 것이다.”주 008
각주 008)
丁未秋。舍弟柳川公觀察關西。余奉晨昏到平壤。始得見箕田遺制。阡陌皆存。整然不亂。… 中國失禮。徵在四夷。其不信然歟。就其地諦審之。其田形畝法。與今孟子所論井字之制。有不同者焉。其中含毬,正陽兩門之間。區畫最爲分明。其制皆爲田字形。田有四區。區皆七十畝。大路之內。橫而見之。有四田八區。豎而見之。亦有四田八區。四田。四象之象耶。八區。八卦之象耶。八八六十四。正正方方。其法象。正類先天方圖 … 界區以一畝之路。界田以三畝之路。其三旁九畝大路。由城門達之詠歸亭津頭。似是往來通衢。而非專爲田間阡陌而設。然其必以十六田六十四區。畫爲一甸。則亦不無界限之意。自此以外。田界之路。或有侵耕失古處。則後人未知制作本意。必以三畝爲准而正之。無復有大中之分。
『久菴遺稿』. 上, 箕田遺制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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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종합DB라고 하였다.
『기자지』(1879) 권4의 차천로(1556∼1615)의 부에도“늦게 함구문을 나가 정전을 찾으니, 지금도 유적이 남아 있어 인현(기자)을 우러르게 되었다.”고 하였다. 또 『평양속지』고적조에 인용된『기자지』에는 기정 남쪽 9무로는 동으로 함구문 밖에 이른다고 하고, 9무로는 지금도 곧바로 동성에 이르는데, 여기서 십자대로을 이루나 약간 유적이 없어졌다고 하였다.
박지원(1737∼1805)은 『과농소초』의 전제조에서“계전의 머리에는 반드시 망석을 마주 보게 세워서 사표를 삼았는데, 이 지방 사람들은 이를 법수라고 부른다. 대로의 양측이 줄을 대놓고 깎아낸 것같이 생긴 것은 밭두둑을 배운 것이고, 마을의 앞면이 모두 곧게 직선을 이루는 것은 도로에 준하였기 때문이다. 울타리나 문간이 모두 정제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은 앞면을 본받았기 때문이고, 줄지어선 가로수들의 줄이 곧아서 조금도 들숙날숙함이 없는 것은 울타리를 본받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1953년 중앙력사박물관 현지조사대가 실측한 자료에 의하면 외성의 남문인 거피문(영귀루)를 통과하는 남북대로의 법수 폭은 13.8∼13.9m였고, 함구문을 통하는 남북대로의 법수 폭은 13.9∼14m였다고 한다.

  • 각주 008)
    丁未秋。舍弟柳川公觀察關西。余奉晨昏到平壤。始得見箕田遺制。阡陌皆存。整然不亂。… 中國失禮。徵在四夷。其不信然歟。就其地諦審之。其田形畝法。與今孟子所論井字之制。有不同者焉。其中含毬,正陽兩門之間。區畫最爲分明。其制皆爲田字形。田有四區。區皆七十畝。大路之內。橫而見之。有四田八區。豎而見之。亦有四田八區。四田。四象之象耶。八區。八卦之象耶。八八六十四。正正方方。其法象。正類先天方圖 … 界區以一畝之路。界田以三畝之路。其三旁九畝大路。由城門達之詠歸亭津頭。似是往來通衢。而非專爲田間阡陌而設。然其必以十六田六十四區。畫爲一甸。則亦不無界限之意。自此以外。田界之路。或有侵耕失古處。則後人未知制作本意。必以三畝爲准而正之。無復有大中之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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