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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평양성

내성(궁성)의 문

내성(궁성)의 문

내성의 성문으로는 현재 동남쪽에 대동문위치, 북쪽에 칠성문위치이 있고, 문자리는 서쪽에 정해문위치, 남쪽에 주작문위치, 동쪽에 장경문위치과 동암문위치이 있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이 가운데 장경문, 칠성문, 대동문 만이 기록이 남아있다. 내성의 서문인 정해문 남쪽에 주작문이 있었다는 것은 평양속지와 평양대지에 기록되어 있다.
대동문은 동남쪽에 치우쳐 배치하고 장경문은 청류벽을 끼고 배치하였으며 서쪽에는 서남에 치우쳐 정해문을, 남쪽에는 동남에 치우쳐 주작문을, 북쪽에는 칠성문을, 동북쪽에는 암문을 각각 배치하였는데 이러한 배치는 각각 중성과 북성 그리고 성 밖의 서북 및 동북, 동남으로 통하는 길과 군사전략적 의의를 고려한 것이다. 따라서 이 성문들은 모두 고구려 당시의 문들이었다고 추정된다. 대동문은 그 주위가 절벽을 이루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그 주변만 평탄하고 대동문 건물에 쓰인 주춧돌과 축대에 고구려 시대의 것이 있다.
다음 내성(궁성)의 서문은 정해문이었다. 정해문 터는 내성의 서북모서리 만수대 등성이에서 남으로 내려 뻗은 능선이 일단 끊어졌다가 다시 남산재 언덕에 이어진 낮은 지점으로 교통조건이 매우 유리한 위치에 놓여있다. 이 문은 내성의 동문인 대동문과 중성의 서문인 보통문의 중간에 있었으며 동서로 관통하는 직선 중간에 놓여있다. 이 문지에서는 고구려로 판단되는 주춧돌과 수많은 고구려 기와편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내성의 남문은 주작문이다. 주작문은 남산재의 능선이 궁성, 서남 모서리에서부터 동쪽으로 굽이 돌면서 대동강 가까이에서 낮아진 지점(현재 중앙도서관 동북쪽)에 있었다. 그러나 주작문은 이미 그 흔적이 없어져 궁성의 남문이라고 비정할 만한 유적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고구려 궁전이 자리잡고 있던 남수대 남쪽 경사면의 정남에 놓여 있으며 함구문과 일직선 위에 높여있는 지형으로, 궁성 남문의 위치는 여기를 내놓고는 다른 곳은 될 수 없다.
궁성의 북문은 칠성문이다. 그 위치는 만수대, 을밀대 능성 가운데에서 낮은 지점에 해당되며, 이 문의 바깥 경사면은 비교적 순탄하여 드나들기 편하다. 이 문 밖의 고구려 성돌로 쌓은 옹벽은 당시의 모습을 잘 보유하고 있다.
장경문은 궁성의 동벽에 달렸던 사잇문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청류벽 밑을 대동강 물이 흐르고 있어 나루터로서는 적당하지 못하다. 또 부근에 대동문과 같은 큰 문을 두고 여기에다 큰 성문을 설치하였을리 없다. 따라서 이 문은 중성에서 대동강 기슭 청류벽 아랫길로 드나드는 작은 문으로 생각된다. 동암문은 북성으로 통하는 비밀통로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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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궁성)의 문 자료번호 : ispy.d_0002_0030_0010_002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