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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평양성

성벽

성벽

성벽을 쌓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성벽의 안팎을 성돌로 쌓아올린 양면축조방법으로 평지성에 흔히 적용되었다. 다른 하나는 바깥쪽만 성돌로 쌓아 올리는 방법인 외면축조방법으로서 산등성이나 능선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을 때 사용되었다.
평양성의 경우에는 양면축조방법과 외면축조방법을 지형조건에 맞게 배합하여 적용하였다. 즉, 내성의 을밀대, 만수대, 산등재, 남산재 등 산등성이와 능선, 중성의 남벽이 통한 안산, 창광산, 해방산 등 언덕경사면, 북성의 모란봉 경사면에서는 전면적으로 외면축조방법이 적용되었다. 그리고 평천구역과 같은 평지대와 일부 강기슭 평지에는 양면축조방법을 적용하였다.
평양성은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높이와 너비를 지대와 지형조건에 따라 차이를 두었다. 모란봉이나 만수대와 같이 산등성이나 능선을 따라 쌓은 성벽의 높이는 4~5m 안팎이고, 평천구역과 같이 평지대에 쌓은 성벽의 높이는 7~9m이다. 성벽의 너비는 산지대에 쌓은 단애성벽은 밑너비 3~6m, 윗너비 2.5~4m이며, 평지대의 성벽 밑너비는 약 6~8m, 윗너비는 4~6m이다. 평지성에는 성벽 안쪽에 전면적으로 내탁을 붙였는데, 그 너비는 17m에 달하는 곳도 있다. 내탁이란 주로 평지성 안에서 성벽 위를 자유롭게 오르내리며 전투활동에 편리하도록 흙을 다져 붙인 부분을 말한다. 이와 같이 평양성의 평지대에서는 산지대에서보다 넓고 높이 쌓았다.
다음으로 평양성의 성벽면을 쌓은 방법은 지형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단일식방법으로 성벽의 기초에서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같은 비례로 성돌을 조금씩 들여쌓음으로써 성벽면을 안으로 경사지게 쌓아 올린 수법이다. 다른 하나는 계단식방법으로서 성벽밑부분의 몇단은 마치 층계 디딤돌을 놓듯이 두드러지게 안으로 들여쌓다가 그 다음부터 같은 경사를 주어 쌓아 올린 수법이다.
평양성의 축조방법은 대부분이 단일식이며 내성과 북성의 일부 성벽굽도리만 계단식이다. 단일식방법으로 쌓아 올린 외성서벽의 한 지점을 보면 굽도리의 첫째단은 4cm이며 둘째단은 3cm 각각 안으로 들여쌓고 그 위에서부터는 약 2cm씩 들여쌓음으로써 일정한 경사를 이루게 하였다. 외성 성벽은 대체로 이런 형식이다.
계단식으로 쌓는 방법은 을밀대나 내성의 동, 서벽의 일부와 북성 남벽의 일부와 같이 성밖이 가파로운 곳과 골짜기의 성벽에 적용되었는데 이 경우에 굽도리의 제1~5단 성돌은 8~22cm, 제6~9단 성돌은 5~7cm 안으로 쌓아 올렸다. 그 위에서부터는 약 2cm씩 단일식으로 쌓아올렸다. 특히 을밀대 축대의 모서리에 쓴 성돌은 윗면 안쪽을 쪼아 낮추고 그 테두리에 턱을 주어 덧놓은 계단식성돌이 밀려 나오지 않도록 하였다. 이것은 다듬은 돌을 쌓은 것이 서로 맞물려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것에 주의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성 건설에서 을밀대와 같이 높은 축대인 경우에 내리누르는 압력에 의하여 굽도리의 성돌들이 밀려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성벽면을 쌓는 방법으로는 대체로 성벽의 굽도리에 큰 성돌을 쓰고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작은 성돌을 이용하였다.
성벽을 쌓아 올리는 방법은 균일하게 다듬은 성돌로 그 이음선이 가로 평행성을 이루도록 벽돌 쌓듯 어긋물려 정연하게 면과 선을 맞추어 쌓았는데 대개 성돌은 정확하게 6합으로 물리고 뾰족한 뒤초리부분이 성심에 깊이 박히도록 쌓았다. 6합이란 성벽을 쌓을 때 성돌이 위아래로 각각 두 개씩 몰리고 좌우로 한 개씩 몰리게 쌓아 한 개 성돌이 여섯 개의 성돌과 한 단위로 서로 맞물리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4합에 비하면 훨씬 견고하다.
또한 성벽의 견고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성심을 튼튼히 다지고 쌓았다. 먼저 성돌의 뿌리를 길게 하여 뾰족한 부분이 성심돌에 의하여 다시 2~4합으로 몰리게 함으로써 기초에서부터 성벽을 쌓은 것과 같은 힘을 받게 하였다. 이는 성벽의 견고성을 보장하며 무너져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건축역학 상 매우 중요한 조치이다. 성심은 넓적한 돌로 마치 구들을 놓듯이 반듯하게 깔고 그 틈에 조약돌과 약간의 진흙을 섞어서 번갈아 겹겹으로 쌓아올렸다. 이러한 방법으로 축조된 성벽은 성 밖에서 성벽을 허물기 매우 힘들며 만약 성돌을 뽑아낸다 하여도 구멍이 생기나 무너지지는 않는다. 성심 축조에서 또하나의 중요한 조치는 성벽돌과 성심돌 사이에 긴 돌로 서로 맞물려 누르고 그 사이에 틈이 없이 조약돌로 다져넣었다. 이는 성벽돌이 성심에서 점차 벌어지는 것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어긋누르는 힘에 의하여 서로 연결시키며 성벽이 앞으로 밀려나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는 조치이다. 이렇게 쌓여진 성벽은 비록 일부 성벽돌이 뽑아진다 하여도 성벽은 그대로 유지되며 만일 적이 성 밑에 접근하여 갈퀴같은 것으로 성돌을 뽑아내어도 성벽은 한덩어리로 힘을 받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던 것이다.
평양성 쌓기의 또하나의 특징은 단애성을 평지성과 유사하게 튼튼히 쌓은 것이다. 단애성축조법은 언덕 바깥면만 깎아 내리고 거기에 등을 대고 쌓기 때문에 석재와 노력을 적게 들이고도 쉽게 쌓을 수 있다. 그런데 만수대 천리마동상 부근의 성벽기초 단면을 보면 고구려인들은 무려 6m의 너비로 깎아내고 견고한 지반을 기초로 삼아 5~6m의 폭을 가진 돌성벽을 쌓았다. 이 성벽 역시 성벽돌과 성심돌 사이에 긴 돌을 놓아 연결시키고 그 사이에는 자갈을 섞어 다져놓은 점에서는 평지성 축조법과 차이가 없다. 그런데 그것이 성돌들과 굳어져서 매우 견고한 성벽으로 되었다. 이것은 축조형식에서 볼 때는 단애성이 분명하지만, 그 너비와 높이 그리고 그에 소요된 석재와 전체 성벽의 체적을 계산하면 평지에 쌓은 성과 거의 같다. 다시 말하면 땅 위에 쌓는 평지성과 같은 평성벽이 땅 속에 하나 들어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 위에서는 5~6m의 돌성벽이 성안 지면과 연결된 대지를 이루어 전투활동에 매우 편리하게 되어 있으나 성밖에서는 깎아지는 절벽 위에 높은 돌 성벽이 앞을 가로 막아 감히 덤벼들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런 축조방법은 성벽돌이 단애성을 쌓을 때 깎아내린 벽면으로부터 벌어지지 않게 하며 만일 적들이 성 밑을 판다 하더라도 너비가 좁은 단애성에서처럼 돌벽부분이 갈라져 내려앉지 않게 한다.
연광정이 서있는 덕바위 부근에서부터 북으로 장경문터에 이르는 구간은 대동강의 침식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진 절벽을 이용하였는데 여기서는 그 절벽의 형태에 따라 바위에 붙은 흙을 깎아내고 적이 기어오를 수 있는 틈마다 석회로 성돌을 붙여 막았다. 이러한 축조방법은 북성의 남벽에도 적용되었다. 또한 성벽의 견고성과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성의 기초에서부터 성 밖의 경사면에 진흙을 다지거나 돌을 깐 곳도 있다. 북성의 북벽과 같이 안팎이 모두 가파로운 능성 위에 성벽이 놓이는 부분은 그 기초의 안팎 경사면에 진흙을 다져 깔았다.
평천구역 보통강 기슭에 쌓은 일부 성벽굽도리 밖에는 약 30~50m 폭으로 지표면에 돌로 포장한 흔적이 있었다. 이것은 장마 때 대동강이나 보통강의 물이 성벽의 굽도리를 파고드는 피해를 박기 위한 것이었다.
성벽의 경사도는 평지대와 산지대 그리고 그 지형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다. 즉 평지대에 쌓은 성벽의 경사도는 급하고 산지대에 쌓은 성벽은 완만하다. 평천구역 정평동의 외성벽은 82도~83도로 거의 수직선을 이루고 있으며 모란봉의 능선을 따라 쌓은 성벽은 78도~79도로 평지대에 쌓은 성벽에 비하여 비교적 완만한 흐름선을 보여준다. 산지대의 성벽을 완만하게 한 것은 성벽 밖이 가파롭기 때문에 성벽이 밖으로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성벽 위에는 눈썹돌(이마돌)을 얹어 성벽과 성가퀴를 구분하였다. 눈썹돌은 성벽면에서 약 8~10cm 가량 성벽 밖으로 내놓았는데 그 형태와 다듬은 수법은 성돌과 같으며 다만 차이나는 것은 규격이 좀 작으며 납작한 것 뿐이다.
외성북벽 6합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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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자료번호 : ispy.d_0002_0030_0010_001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