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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평양성

제1장 고구려 장안성의 구조와 도성체계

고구려평양성

서론

서론

고구려의 도성은 크게 세 차례의 천도에 따라 졸본(卒本)-국내(國內)-평양(平壤)으로 변화하였다.『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高句麗本記)에 따르면, 고구려는 유리왕(琉璃王) 22년(3)에 국내(國內)로 천도한 뒤에도 환도성(丸都城)과 평양동황성(平壤東黃城) 등으로 잦은 왕실 소재지의 교체를 단행하였으나, 장수왕(長壽王) 15년(427) 평양으로 천도할 때까지 400여 년 동안 국내 지역에 도읍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성이 위치하였던 지금의 집안(集安) 일대에는 국내성(集安縣城)과 환도산성(丸都山城; 山城子山城)이 남아 있는데, 왕성으로 기능한 평지성의 국내성과 방어성 역할을 하던 산성의 환도산성이 하나의 세트를 이루며 조성되었다.
이러한 조합은 427년 평양천도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고구려 도성제의 주요한 특성이 되었다. 당시의 평지성으로는 안학궁성(安鶴宮城)과 청암리토성(淸岩里土城) 가운데 하나로 추정되며, 산성은 대성산성(大城山城) 일대로 비정된다.
평양 천도 뒤에도 고구려 도성은 평원왕(平原王) 28년(586)에 장안성(長安城)으로 옮겨지는데, 일반적으로 같은 평양 지역에 위치한 두 도성을 전기 평양성과 후기 평양성으로 구분하여 파악하고 있다.
평원왕대에 천도한 장안성(長安城)은 현재 평양 시가를 둘러싸고 있는 이른바 평양성(平壤城)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전체 성곽은 북성(北城), 내성(內城), 중성(中城), 외성(外城; 羅城)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성벽의 총둘레는 23킬로미터, 성내(城內)의 총면적은 12평방킬로미터에 이른다. 전체적인 지리적 형세는 북쪽으로 산을 끼고 동․서․남으로 대동강(大同江)과 보통강(普通江)이 둘러 있으며, 북성과 내성은 산지대를 이용하여 쌓아 지대가 높고 외성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은 궁성으로 이용되었으며 왕궁터는 만수대 일대나 조선시대 감영지로 추정된다. 북성은 지대가 높은 금수산 일대의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산성인데, 지형조건상 내성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외성 안에는 격자형 도로망에 의한 가로구획(街路區劃)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일반 도성민이 거주하는 평지성으로 기능하였다.
장안성은 이전의 도성과 달리 평지성과 산성의 구조가 결합된 복곽식 성곽으로서, 이른바 평산성(平山城)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평지성과 산성의 조합이라는 고구려의 주요한 도성 방어체계가 장안성에 이르러 이상적인 형태로 완성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평지성의 이점과 산성의 이점이 결합됨으로써, 유사시에도 기존의 생활조건을 유지하면서 적군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방어력을 갖춘 도성체제가 마련된 것이다.
평양성 도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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