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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토성(靑海土城)

 
청해토성 북문지(ⓒ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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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해토성 북문지(ⓒ국립중앙박물관)

청해토성 북벽(ⓒ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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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해토성 북벽(ⓒ국립중앙박물관)

청해토성 지도 은 함경남도 북청군 하호리에 있었던 8세기 후반 발해의 성으로, 신창토성·북청토성·하호토성이라고도 한다. 옛날 발해 영역의 남단, 동해에 면한 평야에 그 터가 남아 있다.
발해 5경의 도성은 방형 또는 장방형의 토성이나 토석성(土石城)으로 축성하고, 성안에는 남북과 동서로 교차되는 대로를 설정하는 것이 특징이며, 특히 남북의 대로인 주작로(朱雀路)는 너비가 동서대로보다 넓었다 한다.
발해는 국토의 중요 지역에 상경·중경·동경·서경·남경의 5경을 두었는데, 이 중 남경의 도성 위치에 대하여는 함흥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이 토성을 발굴하고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함경남도 북청의 동남방 16km에 위치하고 있는 청해토성이 남해부라고 보고 있다.
성 주변에 용전리산성, 안곡산성, 거산성 등이 있는데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청해토성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는 위성 역할을 하였다. 또 야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북쪽에 감대봉·화삼봉·대덕산(1,416m)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청해토성동북아역사넷>북한의 발해 유적에서 살던 사람들이 묻힌 것으로 전해지는 600여 기의 평리무덤떼, 가마터, 오매리절터를 중심으로 한 절골유적, ‘발해고도지’라고 새긴 비석이 서 있고 성의 북쪽에 커다란 호수가 가로놓여 있다.
발해가 일본과 교류할 때인 776년(문왕 40)에 단 한번 남경을 거쳐 토호포(吐號浦: 新昌)에서 배가 떴다고 하는데 이때 풍랑을 만나 167명 중 120명이 실종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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