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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발해 문화유산 지도

충주고구려비(중원 고구려비: 中原高句麗碑)

충주고구려비(중원 고구려비) 모습
충주고구려비(忠州 高句麗碑)위치는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에 서 있는 고구려 비석이다. 일반적으로 신라시대 충주의 옛 지명에서 비롯된 ‘중원고구려비’한국사데이터베이스>중원 고구려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81년 3월 18일 국보 제205호로 지정되었으며, 원본은 충주시 중앙탑면 용전리에 위치한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에 보존되어 있다. 비석은 오랜 동안 용전리 선돌마을의 마을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선돌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오랜 동안 이 돌을 빨래판으로 썼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4면 가운데 2면의 글자는 마모되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 이 돌은 높이는 203cm, 폭은 55cm이다.
비문의 판독 결과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글자와 ‘대사자(大使者)’ ‘대형(大兄)’ 등 고구려 관직 이름이 등장함으로써 고구려비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고구려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을 따라 영역을 넓히고 국경을 표시한 비로, 400여 자를 새긴 것으로 추정되었다. 최근에 495년(문자명왕 4)으로 보는 견해와, 449년(장수왕 37)으로 보는 견해가 폭넓게 지지를 받고 있다. 비는 대체로 고구려의 중원 진출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그 영토가 충주 지역에까지 확장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비문의 내용 중에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형제관계임을 천명하는 의식을 치루고, 고구려왕이 신라왕인 東夷寐錦(동이매금)과 신하들에게 의복 등을 하사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신라를 동이라고 부른 표현은 당시 고구려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 평가되고 있다. 특히 ‘新羅土內幢主(신라토내당주)’라는 기록은 당시 신라의 영토 안에 고구려 군대가 주둔했던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前部大使者(전부대사자)’·‘諸位(제위)’·‘使者(사자)’ 등 고구려 관등명과 광개토대왕 비문에서와 같이 ‘고모루성’ 등의 글자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충주고구려비는 5세기 고구려의 남진(南進)과 신라와의 관계를 알려주어 사료(史料)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특히 고구려의 금석문(金石文)은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 등 매우 일부만 전해지고 있는데, 이 석비는 한반도의 중부 지역인 남한강 유역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 높게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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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고구려비(중원 고구려비: 中原高句麗碑) 자료번호 : ismy.d_0002_005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