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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발해 문화유산 지도

국내성(國內城)

국내성 지도(위치)
국내성 서벽(2007)
국내성(國內城) 동북아역사넷>집안 국내성지(통구성) 은 졸본성(卒本城)에 이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로, 서기 3년(유리왕 22년)부터 427년(장수왕 15년)까지 425년 동안 고구려의 수도였다. 그 위치는 현재 성벽 일부만 남아 있는 집안시내의 통구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이 성은 드물게 볼 수 있는 평지성이며, 압록강의 중류에 위치해 있다. 성벽은 사각형 또는 직사각형 모양의 돌을 쌓고 중간의 틈새에는 흙과 모래로 채웠는데 굽도리 부분은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들여쌓았다. 동쪽 담 길이는 554.7m, 서쪽 담 길이는 664.6m, 남쪽 담 길이는 751.5m, 북쪽 담 길이는 715.2m로 둘레를 모두 더하면 2,686m에 달한다. 담장의 높이는 4.2m, 너비는 7~10m이다. 또 성 밖에는 인공으로 만든 해자를 빙 둘러 물이 흐르게 했다.주 002
각주 002)
이이화, 『찬란했던 700년 역사 고구려』, 언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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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은 6곳이 있는데 남북에 각각 하나씩 있고 동서에 각각 둘씩 있다. 6곳의 성문 모두에 성문이 성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옹문(甕門)이 있고, 동·북 두 면에 연못이 있다. 성의 네 모서리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성벽 위에 모서리에 지은 누각인 각루(角樓) 터가 있으며, 4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성벽을 돌출시켜서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전면과 좌우 양 측면으로 3면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게 만든 시설물인 치(雉)가 설치되어 있다. 또 이러한 석축성이 축조되기 이전에 토성(土城)이 존재했음이 확인되었다.

지금은 이 일대에 아파트가 들어서 북쪽 성벽만 남고 거의 사라졌으며 성벽의 높이도 2m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주변에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를 비롯하여 태왕릉(太王陵)·장군총(將軍塚) 등 고구려의 유적·유물들이 산재해 있어 고구려시대 국내성의 영화를 말해 준다.
중국 정부는 2000년대에 들어 이 일대를 정비하여 잘 보존하고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국내성위치은 수도를 평양성으로 옮긴 뒤에도 평양, 한성과 더불어 3경 중의 하나로, 고구려의 정치, 군사적 요충지로 중시되었다. 평지성인 국내성은 왕궁과 관청이 있고 귀족들과 일부 평민들이 거주하는 도성이었다는 점과 고구려의 왕족과 귀족들의 벽화고분이 평양성과 이곳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는 점을 통하여 이 성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 각주 002)
    이이화, 『찬란했던 700년 역사 고구려』, 언어세상.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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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國內城) 자료번호 : ismy.d_0002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