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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전해 준 우리문화

벼농사 전래

기원전 3세기에 이르러 한반도 남쪽에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배와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가 대마도위치, 큐슈 일대에 정착을 시작했다. 고도화된 농경기술을 가진 그들은 볍씨를 담아 농사도구, 토기 등과 함께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들이 오늘날 일본문화와 일본인종, 일본국가의 토대를 이룬 야요이인(弥生人)들이다. 이 야요이인들이 이룩한 고대 일본문화를 야요이문화(弥生文化)라고 한다. 야요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그 시대의 전형적인 토기가 도쿄도 분쿄구에 있는 야요이 마을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야요이인의 기원과 문화가 어떻게 성립하였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학설이 난립하고 있다. 이전 시대인 조몬시대와 연관은 있으나 대부분 독특한 문화 형태를 띠고 있다. 처음으로 벼농사가 시작되었고, 조몬 토기와 형태나 강도가 다른 야요이 토기가 제작되었으며, 처음으로 금속기를 사용하였다. 그로 인하여 일본문화의 토대가 형성되었으며, 일본국가의 원형이라고 믿는 야마다이국(邪馬臺國) 같은 소국들이 생겨났다. 특히 인종적이 면에서 조몬인과 다른 문화집단이 대량으로 유입되었는데, 한반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일본의 농업과 관련해서, 과거에는 조몬시대부터 야생 벼가 존재했다는 이른바 ‘자생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벼농사에는 조몬시대에는 발견되지 않은 특수한 재배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파설’이 힘을 얻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어 전파된 경로에 대해서는 첫째, 중국 화남지방에서 전파되었다는 설, 둘째, 화중지방 양자강에서 큐슈로 상륙했다는 주장, 셋째, 화북지방에서 출발해 산둥반도와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에 도착했다는 경로가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교통능력으로 보아 세월이 오래 걸리기는 하나 문화의 전파경로상 반드시 한반도를 경유해야 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후쿠오카현의 야요이시대 패총이나 이타츠케위치의 수전 유적지에서 발견된 탄화된 단립미는 한반도 철기시대 유적지인 경남 김해 패총위치, 경기도 여주, 충남 부여 송국리 유적 등에서 발견된 탄화된 단립미 볍씨와 동일한 탄화미이다. 이처럼 볍씨가 동일할 뿐 아니라 벼농사가 큐슈 북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그 출발지가 한반도 남부임을 알려준다. 또한 야요이시대 사용된 여러 농기구의 형태나 토기 등도 한반도 남부 지역의 것과 일치한다. 한반도 남부의 특징적인 무문토기를 비롯하여 농기구도 같은 것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벼농사가 한반도에서 유래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야요이문화가 한반도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는 장례 풍습에서도 나타난다. 묘제와 장례의 관습은 그 집단의 역사적인 경험과 문화적인 특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야요이시대에는 한반도와 동일한 형식의 지석묘, 상자식 석곽묘, 옹관묘, 마제석기, 붉은 간그릇 등이 큐슈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일본 열도에서 발견된 고인돌군은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남방형 고인돌과 동일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타즈케 유적(板付遺蹟) 전경
이타즈케 유적(板付遺蹟) 전시실 전경
이타즈케 유적(板付遺蹟) 전시실 내부
이타즈케 유적(板付遺蹟) 출토품 01
이타즈케 유적(板付遺蹟) 출토품 02
이타즈케 유적(板付遺蹟) 출토품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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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전래 자료번호 : iskj.d_0002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