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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 읽기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동아시아 역사 읽기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 저필자
    동북아역사재단

일본 역사교과서문제란 무엇인가

일본 역사교과에 한국사 관련 기술, 식민지 지배ㆍ침략전쟁 관련 기술, 독도 영유권 관련 기술이 왜곡되어 있거나 오해를 가져올 수 있도록 기술되어 있는 문제로, 1982년 일본 교과서 왜곡 파동을 계기로 한일 간에 현안이 되고 있다.
일본 역사교과서 기술이 문제가 되는 것은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일본의 청소년들이 교과서를 통해 잘못된 역사인식을 갖게 되면 신뢰에 기초한 한일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동북아정세를 고려하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이 협력해 나갈 일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교과서를 통해 잘못된 역사인식을 갖게 된 미래세대가 과연 신뢰에 기초한 한일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것은 한일관계뿐 아니라 동아시아에 있어서도 매우 불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것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역사인식을 부정하는 것으로 동북아의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은 부당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국제사회에 복귀했다. 일본 정부의 이러한 인식은 1993년 고노 담화나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구체화 되었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가 검정을 실시하는 역사교과서에도 이러한 담화의 정신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역사연구, 역사교육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를 오랫동안 기억하면서 동일한 과오를 결코 반복하지 않는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 번 새롭게 표명한다”(고노 담화)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에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무라야마 담화) 
 

역사왜곡의 경과

1950년대
이 시기 일본에서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하여 자민당이 탄생하고 집권하게 되었다. 자민당 내 보수우익 세력은 일본의 재무장을 위한 평화헌법 개정을 당헌으로 내걸고 교과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들은 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과 진보적 교과서 집필자가 기술한 교과서를 문제삼고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강조하는 역사교육에 제동을 건 것이다. 특히 ‘교과서조사관’ 제도를 도입하여 교과서검정을 강화하여 교과서에서 과거 일본의 침략과 가해사실에 대한 기술을 후퇴하게 하였다.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 교수

이러한 역사왜곡에 대해 도쿄 교육대의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 교수는 자신이 집필한 교과서에 대한 문부성의 검정 불합격 판정에 대해 교과서검정은 헌법과 교육기본법 위반이라며 불합격처분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65년과 67년에 제기하였다. 1970년 7월의 도쿄지방재판소는 이에나가교과서에 대한 검정은 위헌·위법이라고 판결(杉本判決)하였는데, 이 스기모토판결은 헌법, 교육기본법에 근거하여 국가교육권을 부정하고 국민의 교육권과 교육자유권을 인정하였다.
 
1980년대
이 시기의 교과서문제는 1972년 중일국교회복 이후에 난징학살 사건 등 일본의 가해사실을 부각시킨 교과서가 등장하자 이를 경계하려는 보수세력의 위기의식에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교과서문제는 일본의 침략의 정당화와 미화를 둘러싼 문제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전개되었다. 1982년 6월, 문부성이 검정과정에서 ‘출병’을 ‘파견’, ‘침략’을 ‘진출’로 수정하도록 지시했다고 언론이 보도한 것을 계기로 교과서 파동이라는 외교문제로 비화하였다.
일본의 교과서왜곡 사실이 한국 언론에 보도되자, 한국정부는 외교교섭을 중단하고 8월에는 독립기념관 건립을 위한 국민모금운동을 전개하였다. 9월에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에게 일본 교과서 39항목의 수정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왜곡부분의 시정을 약속하였다. 또한 일본 문부성은 1982년 11월 24일, 교과용도서검정기준에 ‘근린 아시아 각국과의 사이에 근현대의 역사적 사상을 다루는 데 있어서 국제이해와 국제협조의 시점에서 필요한 배려를 할 것’이라는 ‘근린제국조항’을 추가하여 국제사회의 대일 비판여론을 무마시켰다.
그리고 1986년에는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가 제작한 『신편일본사』의 내용에 대해 일본 국내외에서 비판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일본 총리는 문부성에 전면적인 재검토를 지시하고 문부성은 이 출판사에 대해 38항목의 수정을 지시하고 출판사가 이에 따르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1990년대 이후
냉전 종식 이후, 자민당내 보수정치가들이 ‘역사검토위원회’ 설치(1993년), ‘자유주의사관 연구회’ 발족(1995), 1997년 1월에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지위향상을 위해 과거사 인식에 대한 재고를 주장하였다. 이들은 특히 일본군 ‘위안부’와 난징대학살 관련 기술을 공격 대상을 했다.
새역모는 2000년 4월에 후소샤(扶桑社)교과서 검정신청을 하고, 이듬해에 130항목 이상 수정이 이루어져 2001년 4월 2일에 최종적으로 검정 통과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대책반을 설치하여 5월에 수정요구안을 작성하였다. 요구안에는 후소샤 교과서에 대해 25항목, 다른 7종 교과서 기술에 대해서 10항목 등 총35항목에 걸쳐 검토의견이 포함되어 일본 정부에 전달되었다. 이러한 요구에 대해 후소샤는 2항목을 자발적으로 수정하였으며, 일본정부도 한국관련 2항목에 대한 수정권고를 지시하였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학설상, 또는 검정 제도상 한국의 수정요구에 의한 재수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2005년 이후
2006년 12월 자민당 보수세력의 주도로 60년 만에 ‘교육기본법’이 개정되었다. 새로운 교육기본법에서는 ‘공공의 정신’, ‘전통과 문화의 존중’, ‘우리나라(일본)와 향토를 사랑’ 등의 내용이 명기되었다. 애국심 교육을 강조하는 교육기본법의 기본 취지는 2008~2009년에 개정‧공포된 학습지도요령 및 해설서에도 반영되어 공포되었다. 문부과학성은 개정된 교육기본법과 학습지도요령의 목표를 교과서에 충실하게 반영시키기 위해서 검정심의회의의 보고에 의거하여 2009년 3월에 교과서 검정제도를 개정하였다. 새 검정기준에서는 교육기본법과 학교교육법, 학습지도요령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들 목표에 의거한 교과서 기술 여부를 심사한다는 내용을 추가하고 있다.
또한 2008년 중학교 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 처음으로 독도를 명기함으로써 일본 교과서에서 독도 기술이 늘어났다. 이후 제작된 교과서에는 영토영해관련 기술이 지리는 물론 역사 교과서에도 확대되고 있어서 한일 간의 갈등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자국중심적인 역사관에 의거한 교과서를 제작하고 있는 ‘새역모’는 내부 갈등으로 인해 분열되었다. 그 이유는 ‘새역모’가 발간한 교과서 채택률이 저조(2001년=0.039%, 2005년=0.39%)한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2009년에 2개 조직으로 분열되었다. ‘새역모’ 잔류세력은 후소샤 측과 결별하고 지유샤(自由社)라는 교과서 출판사를 통해 교과서를 제작하였으며, 2009년 4월에 지유샤판 ‘신편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였다.
이쿠호샤의 「새로운 일본의 역사」(2012)
지유사의 「새로운 역사교과서」(2012)

한편 ‘새역모’ 이탈세력은 보수세력의 지원을 받아 2006년 10월에 ‘일본교육재생기구’를 발족시켰다. 이들은 ‘교과서개선의 모임’이라는 조직 통해 활동하면서 2011년 교과서 검정에서 이쿠호샤를 통해 교과서를 출판하여 검정에 합격하였다. 이로써 현행 사용 중인 중학교 역사교과서 가운데 우익의 역사관을 대변하는 교과서는 2종류가 되었으며, 2009년도 이들 우익교과서의 교과서 시장점유율은 1.7%(후소샤 0.6% + 지유샤 1.1%) 정도에 불과하였으나 2011년도 채택 결과 이들 우익 ‘새역모 계열’의 교과서 점유율은 약 3.78%에 달하고 있다.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 이후, 국민통합을 촉구하는 슬로건이 빈번하게 등장하면서 일본 사회의 보수화가 진행되고 있다. 자민당의 부상과 함께 도쿄와 오사카, 요코하마 등 대도시에서는 보수성향이 강한 지방자치단체장이 선출되어 교육 현장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일본 내 보수세력의 결집으로 교육에 대한 외부 세력의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 ‘새역모’와 ‘교과서 개선의 모임’ 등을 앞세운 일본 보수우익세력은 기존의 역사관을 ‘자학사관’이라고 공격하면서 교과서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교과서 공격의 주요 쟁점은 근대 일본이 주도한 침략전쟁과 가해자로서의 책임문제를 부각시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교과서 기술에 관련된 부분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2012년 12월 민주당에서 자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후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2012년 총선거에서 자민당 보수세력은 교육제도에 대한 개혁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선거에서 승리하여 제2기 아베정권이 수립되었으며,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은 교육개혁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다수 의석을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과거 자민당과 아베(安倍晋三) 총리는 ‘교육기본법’을 60여년 만에 개정하였지만,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로 말미암아 이전에 수행하지 못하고 남겨 둔 과제를 일본을 회복·재생시킨다는 슬로건 하에 재추진하려고 한다. ‘새역모’와 ‘교과서 개선의 모임’ 등 보수우익 조직은 보수 정치세력과 연계하여 기존의 교과서 기술을 ‘자학사관’에 입각한 기술이라고 비판하면서 교과서 검정·채택제도, 교육위원회제도의 ‘개혁’, 근린제국조항의 재검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교과서제도의 문제점

개정교육기본법과 신학습지도요령
일본의 패전 후, 연합군최고사령부(GHQ)는 군국주의 교육의 근간이 된 교육칙어(敎育勅語)를 폐기하였다. 1947년에 평화헌법에 기초한 교육기본법이 시행되어 전후 교육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런데 이 교육기본법이 2006년에 개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학습지도요령 및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도 신교육기본법에 입각하여 개정·공포되었다. 개정된 교육기본법의 주요 목표는 애국심과 공공의 정신, 전통 문화의 존중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개정된 학습지도요령 및 해설서에도 애국심과 전통문화의 존중을 강조하는 교육기본법의 기본 취지가 반영되어 있어 있습니다. 2012년 1월 28일 개정된 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는 “우리나라가 국제법상 정당한 근거에 기반하여 ‘다케시마’ 및 센카쿠제도를 정식으로 영토에 편입한 경위도 언급한다.”라는 내용이 명기되었다.
 
교과서검정제도
일본의 교과서가 제작되어 사용되기까지는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치게 된다.
편집-검정-채택 및 제조-사용에 이르는 과정은 4년을 주기로 진행된다. 중학교의 사례를 보면, 2013년 집필한 교과서를 2014년 5월 문부과학성에 검정을 신청한다. 이 교과서는 검정을 거쳐 2015년 3월말에서 4월초 검정결과가 발표된다. 그리고 8월에 채택을 하고 2016년부터 사용된다.
일본의 초ㆍ중ㆍ고 교과서 검정 일정(2013년-2020년)
20132014201520162017201820192020
구분초등학교검정
채택
사용개시
중학교검정
채택
사용개시
고등학교저학년용검정
채택
사용개시
중학년용검정
채택
사용개시
고학년용검정
채택
사용개시
그리고 현행 검정제도에서는 검정 합격이 보류된 채로 검정의견이 개진되므로 출판사는 불합격을 피하기 위해 문부과학성의 요구대로 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스템이다. 또한 출판사측에서는 수정 기간이 너무 짧아서 문부과학성의 지시대로 수정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이다. 이러한 교과서검정제도는 교과서검정을 검열과 같은 성격의 제도로 변하게 하였으며, 정부 의견에 반하는 내용을 게재한 교과서는 교과서 시장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어 모든 교과서가 획일적인 내용으로 변해가게 되었다.
 

일본교과서문제의 전망

일본 역사교과서문제는 일본의 정치상황, 구체적으로는 보수우익세력이 주장하는 재군비와 헌법개정의 움직임이 고조되는 시기와 맞물려 전개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1950년대 일본의 재군비와 자위대창설이 이루어 진 시기에 문부성은 교과서조사관제도를 신설하여 검정제도를 강화하였다. 1980년대에도 자민당이 선거에서 승리한 후에 교과서검정제도를 강화하여 출판사의 자주적 검정이라는 명분하에 특정 역사관을 집필자에게 강요했다.
1990년대에는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완화되고 북한의 핵문제가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일본 정계에서는 사회당 등 혁신세력이 약화되고 보수세력이 지반을 확대해 갔다.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일본의 보수우익세력은 내부갈등을 완화시키고 위기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보통국가화’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보수우익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한 전위조직이 새역모였으며, 이들은 과거사를 미화하고 위기상황을 탈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과서를 선택하였다. 물론 이들의 교과서 왜곡 내용과 논리는 과거와 유사한 내용이며 매회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2002년 한일 양국 정부는 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설치하여 교과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이를 통해 역사인식의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으므로 학계의 연구를 심화하고 역사대화와 교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공유하게 되었다. 새역모의 왜곡 교과서 채택을 저지하기 위한 한중일 시민단체의 연대와 활동의 결과, 교과서문제의 반복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민간레벨에서도 다각적이면서 중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경험하였다.
일본 역사교과서문제는 제도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점도 있다. 제도상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과 동시에 역사교육에 대한 정치 상황이나 관료의 영향력을 배제하면서 교육자는 역사적 사실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수업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바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역사공동교재 개발로 연결되어 일정한 결과물을 내고 있는데, 향후에도 한일 간에 역사대화와 각계각층의 교류가 지속적으로 활성화되는 것이 역사교과서문제의 해결을 위해 필요하다.
 

부록

일본 교과서문제 관련 사이트
財団法人日韓文化交流基金,日韓歴史共同研究委員会연계
文部科学省연계
財団法人教科書研究センター연계
新しい歴史教科書をつくる会연계
日本教育再生機構연계
育鵬社연계
 
일본의 교과서 검정 절차
일본의 교과서 검정 절차
 
일본의 교과서 채택 구조
일본의 교과서 채택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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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자료번호 : iscol.d_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