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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역사는 중국사인가 한국사인가

 
 

 고구려의 역사는 중국사인가 한국사인가

 

 
 
알아볼까요
▶ 고구려 유민 중 중국인이 된 사람이 더 많으므로 고구려는 중국사다.▶ 역사 계승은 사람 수가 아닌, 계승의식과 부흥의지로 평가된다.
 

‘동북공정’에서는 고구려 유민 중 상당수가 중국으로 들어가 한족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고구려 사는 중국사라고 주장한다. 고구려 유민 중 2만 8천여 호나 되는 사람들은 당에 의해 중국 내지로 강제 이주되었고, 일부는 고구려 옛 땅에 남아 있다가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자 그 아래로 들어갔다. 일부 유민들은 당의 지배를 피해 돌궐로 도망가거나,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라로 간 사람들도 많았다. 중국에서는 고구려 유민의 1/7만 신라로 내려가 한국인의 선조가 되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이 되었으므로 고구려사는 중국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으로 간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강제로 끌려간 것이며, 그 곳에서 사라져 갔다. 하지만 신라로 내려온 사람들은 삼국 간 교류를 통해 쌓은 동류의식에 바탕하여 신라를 선택했고, 고구려 부흥의지와 계승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 유민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당과 신라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당은 고구려 부흥을 막기 위해 유민들을 강제로 집단 이주시켰다. 반면 신라에서는 유민을 받아들여 보덕국
보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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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년 안승(安勝)이 전북 익산 지방에 세운 고구려 부흥국. 683년에 신라에 흡수되었다.

을 세워주고, 삼국을 통일했음을 강조했다. 이는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도 계승했다는 것을 표방한 것이다. 이러한 고구려 계승의식은 발해, 후삼국과 고려를 거쳐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 나팔입 항아리
- 1988년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고구려의 대표적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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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팔입 항아리

    1988년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고구려의 대표적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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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국
674년 안승(安勝)이 전북 익산 지방에 세운 고구려 부흥국. 683년에 신라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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