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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한국외교문서

黑田淸隆 사절선단 중 4척의 강화 이동 보고

제2부 조일수호조규의 체결
  • 발신자
    洪祐昌
  • 수신자
    議政府
  • 수신일
    1876년 1월 15일(1876년 1월 15일/高宗十二年十二月十九日)
  • 출전
    『왜사』 丙子 1월 2일 啓下
東萊府使洪祐昌狀啓
十二月二十三日到付訓別等手本內本月十九日火輪船七隻下碇于黑巖前洋是如故卽爲就館先探事狀于住永倭處則答以爲書契公幹事到今事勢不得不向往江華乃已而今此出來船七隻卽江華向往之路爲報事由而來是如是遣出示口陳書以呈納本府爲說故責之以書契若果歸正以待回下之處分尙未晩矣若未歸正雖往江華有何所益更勿做此駭妄之說姑竢下回爲可而口陳書不可捧納之意責諭爲乎旀二十一日午時火輪船七隻到泊水門外故問情次乘船前進則就中四隻不待問情未時先卽發船三隻留在同處故卽爲照檢問情則第一隻火船良中頭倭海軍中佐天龍格倭五十名海軍三百五十名等同騎爲有旀第二隻火船良中頭倭海軍少佐姜籠格倭四十名海軍三百名等同騎爲有旀第三隻火船良中頭倭海軍少佐山崎正則格倭三十名海軍二百五十名等同騎爲有矣同倭等言內俺等船三隻他火輪船四隻合七隻今月十九日自馬島同發次第到黑巖前洋下碇二十一日午時到泊水門外他火輪船四隻卽爲離發向往江華俺等船三隻追後隨護次落在是如爲乎等以詰責曰火船之多數出來已是意外而江華卽我國京都近地也頃因洋船之閃忽防守戒嚴非復前日江華則決非尋常冒越之地而今者向往云云是何道理是旀先發船四隻所騎船長姓名爲誰人名爲幾許耶答以爲江華之行果是弊朝廷命令則非帶去人之所可進退亦非俺等之所可詳知而船長誰某人名數爻果未的知是如爲乎等以看檢船樣什物則第一隻長八十把高廣各七把帆竹二箇各長十九把汲水小船六隻各長三把高廣各一把鐵環碇乼一張長可八十把糧米二百石石炭一百五十石大砲八坐鳥銃刀劍各四百柄火藥五十樻鉛丸四十樻大鐵丸三百箇載持爲有旀第二隻長六十把高廣各五把帆竹二箇各長十五把汲水小船五隻長各三把高廣各一把鐵環碇乼一張長可五十把糧米二百石石炭一百五十石大砲六坐鳥銃刀劍各三百四十柄火藥四十樻鉛丸三十樻大鐵丸二百五十箇載持爲有旀第三隻長四十把高廣各四把帆竹三箇各長十三把汲水小船五隻長各二把高廣各一把鐵環碇乼一張長可四十把糧米一百五十石石炭一百石大砲六坐鳥銃刀劍各二百八十柄火藥三十五樻鉛丸二十樻大鐵丸二百八十箇載持爲有矣帆竹之三層間架乼物之無數擺開房欌之飾以琉璃船體之粉白漆黑表旗之質白點紅大砲小船之列置左右火輪烟筒之設置制樣與前到火船無異舟人之言語面目與館倭無異是乎等以同船圖本及上項口陳書私自謄本上送事手本據同圖本與謄本各一件修送云云以書契一款前後公幹不啻綜詳則彼宜從便改修無違舊式事固當然而終始執拗惟意變幻敢以向往江華肆然爲說者狡倭情狀去益痛惋是白遣七隻船中四隻之先發而直向外洋者縱難臨時挽執旣未能到底問情則揆以邊例極爲疎忽假訓導李濬秀假別差韓寅鎭等段不可無重勘是白遣彼倭所呈口陳書雖爲斥退任譯旣已謄本而事係邊情故別爲謄本竝與船樣圖本長廣高把數什物成冊而修正上送于議政府 三軍府爲白乎旀臣責在交鄰接濟之地旣不得臨事斡旋又不能宣威彈壓致使狡倭敢生無前冒越之計者罔非臣不職之罪也惶恐竢勘云云

색인어
이름
洪祐昌, 山崎, 李濬秀, 韓寅鎭
지명
黑巖, 江華, 江華, 江華, 馬島, 黑巖, 江華, 江華, 京都, 江華, 江華, 江華
관서
議政府, 三軍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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黑田淸隆 사절선단 중 4척의 강화 이동 보고 자료번호 : gk.d_0005_1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