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상세검색

닫기
기사제목
작성·발신·수신자
날짜
~
본문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ID :NAHF.gd.k_0002_0910IDURL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청국에서 도문강의 변방 경계를 조사하는 문제로 방랑(方朗)·덕옥(德玉)·진영(秦煐)을 파견하기로 결정

 
  • 발신자招墾總局
  • 발송일1887년 4월 18일(음)
□ 혼춘부도통아문(琿春副都統衙門)의 변무교섭승판처(邊務交涉承辦處)에 이부(移付)할 일
 ○ 본 아문에서 이달 13일에, 비준된 장군(將軍)과 부도통(副都統)의 자개(咨開)에 대한 변무승판처(邊務承辦處)의 안정(案呈), 본년(本年) 4월 5일에 비준된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의 자개(咨開)에 대한 본년 3월 25일에 본 아문에서 아뢴, 길림 도문강의 변방 경계를 다시 조사하였지만 아직 확정하지 못하였기에 삼가 대강의 정황을 아뢰니, 황제의 명령을 청하여 길림장군에게 신칙을 내려서 관원을 파견하여 다시 조사하게 해 달라는 1접(摺), 본일(本日)에 군기대신(軍機大臣)이 성지(聖旨)를 받들어 의논한 대로 이를 공경히 올린 것들을 접수하였습니다. 원주(原奏)를 베껴 기록하고 유지(諭旨)를 삼가 기록한 다음 공손히 준행하여 처리하도록 통지하게 한 것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거행해야 할 것입니다.
 원주(原奏)를 조사해 보니, 명백히 분석해야 할 것이 세 가지이고, 고증(考證)해야 할 것이 다섯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그대로 따라서 각 절목(節目)을 주의(奏議)하고 다시 자세히 회감(會勘)해 보았는데, 변방의 정세와 여지에 대해 잘 아는 관원은 실로 선발하기 어렵습니다. 전에는 협령(協領) 덕옥(德玉)과 지현(知縣) 진영(秦煐) 등을 파견하였는데 이전에 가서 고증하여 조사해서 판별한 일체에 대한 것이 여전히 상세하다고 일컬어지고 있고, 본래 일에 서툰 사람으로 갑자기 바꾸는 것은 온당치가 못합니다. 이에 그대로 원래 조사했던 해당 위원 등의 상역총서(詳譯總署)에 신칙해서 이를 위하여 사리(事理)를 주의(奏議)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응당 명백히 분석하고 고증해야 할 것을 가지고 마음을 다해 추구(推求)하여 그 핵심을 가려내어서 조선의 안변부사(安邊府使)에게 조회를 전달할 적에 이치를 갖춰 변론해야 할 것입니다. [주509]
편자주 509
닫기

청국 관원들이 언급한 안변부사는 이중하를 말한 것이다. 을유년(1885) 감계회담 때에 이중하가 안변부사였으므로 이중하를 안변부사로 인식하였는데, 정해년(1887) 당시 이중하의 직책은 안변부사가 아니라 덕원부사였다.

이에 즉시 기일을 정해서 모일 날짜를 약속하여 재차 가서 상세히 조사한 다음 도문강 경계를 증거로 제시해서 확정하게 된 것을 회도(繪圖)로 품복(稟覆)함으로써 사실을 살펴 판별하는 데에 증빙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해당 위원들을 신칙하는 것은 제외하더라도 조초(照抄)한 점단(粘單)을 귀 부도통(副都統)에게 자문(咨文)을 보내어 사조(査照)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대로 삼가 헌유(憲諭)를 받들어 해당 차원(差員) 등에게 통지하여 잘 살펴 처리하게 하는 것 등의 유시(諭示)를 준행하도록 좌익협령(左翼協領)에게 이부(移付)할 적에 귀 상무총국(商務總局)에서는 번거롭더라도 문서의 내용대로 처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초간총국(招墾總局)에서 이문(移文) [주510]
편자주 510
닫기

조선시대 관청 사이에 왕래되던 공문서를 말하는데, 각 관청이 동등한 지위에서 발송하고 수부하던 것이다.

을 올립니다.
 위의 파견 관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좌익화령협령(左翼花翎協領) 박기파도로(博奇巴圖魯) 덕옥(德玉)
 독리길림조선통상세무총국(督理吉林朝鮮通商稅務總局) 진영(秦煐)
 초간혼춘변황사무총리(招墾琿春邊荒事務總理) 방랑(方朗)
 광서(光緖) 13년[1887, 고종 24] 4월 18일

 
주 509
청국 관원들이 언급한 안변부사는 이중하를 말한 것이다. 을유년(1885) 감계회담 때에 이중하가 안변부사였으므로 이중하를 안변부사로 인식하였는데, 정해년(1887) 당시 이중하의 직책은 안변부사가 아니라 덕원부사였다.
주 510
조선시대 관청 사이에 왕래되던 공문서를 말하는데, 각 관청이 동등한 지위에서 발송하고 수부하던 것이다.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