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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계사 이중하(李重夏)가 올해 양 국 국경지역 조사 경과를 나열한 계초(啓草)

 
  • 발신자李重夏
  • 발송일1887년 (음)
□ 계초(啓草)
 ○ 신(臣 : 이중하)이 3월 19일에 토문지계(土門地界)를 복감(覆勘)하려고 덕원부(德源府) 임소(任所)로부터 출발한 연유는 이미 치계(馳啓)하였거니와 [주449]
편자주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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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견과, 올잇견과[爲白有在果] : ~하였삽거니와, ~하옵셨거니와.

4월 5일 회령부에 도착하니 [주450]
편자주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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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즉[是白乎則] : ~이사온즉, ~이사오면.

길림파원 독리상무 진영은 3월 26일에 먼저 회령부에 와서 미리 15개의 비(碑) [주451]
편자주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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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청국은 국경비를 세울 목적으로 홍단수 합류처까지 15개의 석비를 운반하였다. 그러나 우리측과 협의를 하고 홍단과 장파의 설이 불문(不問)에 부치게 되자 진영이 운반한 석비는 세우지 않게 되었다.

를 홍단하구(洪丹河口)에 운반하여 장차 경계를 홍단(洪丹) 삼지(三池) 위에 세우고자 성난 기운(盛氣)으로 기다리고 있었으며, [주452]
편자주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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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으[오]며, 이오며[是白乎旀] : 이사오며.

혼춘(琿春) 교섭승판처사무(交涉承辦處事務) 덕옥, 총리흑항자초간국사무(總理黑頂子招墾局事務) 방랑, 측량관(測量官) 유우경 회도관(繪圖官) 왕여주(王汝舟) 등이 차례로 모여 여러 차례 담판을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저번 때에 총리아문의 주의에 의거해서 토문과 두만이 이미 하나의 강이라고 충분히 밝혔으니 우리나라[敝邦]도 감히 옛날과 지금의 상황을 밝히기 어렵다는 안건으로 자주 상국(上國 : 청)을 번거롭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구계(舊界)를 준수할 것을 의망하니, 홍토수는 바로 『여도』에 기재된 대도문강의 수원(水源)입니다. 비퇴에서 거리가 너무 멀다 하여 오래도록 분쟁을 일으켰으니 마땅히 비석 하나를 그 위에 더 세워서 목비(穆碑) [주453]
편자주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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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극등이 세운 백두산정계비를 말한다.

의 토문(土門)을 지칭하였음을 입증하면 경계의 한계[界限]가 자연히 명백해질 것이라 하였습니다. [주454]
편자주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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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이온즉[是如是白乎則] : ~이라고 함이온즉, ~이라고 하옵신즉.


 그러자 청국 관원이 말하기를, 서두수는 가장 크고도 길므로 마땅히 도문강의 진정한 원류[正源]가 된다. 먼저 이 물을 조사한 뒤에 다시 다른 물을 조사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말하기를, 서두수는 우리나라 내지(內地)에 속하므로 가서 감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이다, [주455]
편자주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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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온[是如] : ~이다, ~이라고, ~이라는.

하며 누차 이것을 변론하였습니다. 비로소 4월 22일에 백두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는데, 신은 수행원 사용(司勇) [주456]
편자주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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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5위(五衛)에 속하는 정9품 무관직이다.

신형모(申珩模), 회령상무위원(會寧商務委員) 팽한주(彭翰周) 및 육진(六鎭) [주457]
편자주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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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때 김종서(金宗瑞)를 시켜서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함경도 두만강 하류 지역에 설치했던 군사상 요충지. 곧 종성(鐘城)·온성(穩城)·회령(會寧)·경원(慶源)·경흥(慶興)·부령(富寧)의 여섯 진을 말한다.

중에서 변방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으로 전중군(前中軍) 최두형(崔斗衡), 전오위장(前五衛將) 최오길(崔五吉), 절충(折衝) 오원정(吳元貞), 출신(出身) 김응학(金應學) [주458]
편자주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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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4월 5일 안무영 감결에는 김응학(金應學)이 전응학(全應學)으로 되어 있다.

과 별도로 정한 수행원으로 길림, 혼춘의 여러 사람들을 대동하고 무산 장파지방에 도달하였습니다. [주459]
편자주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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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하가 언급한 수행원 중에 최두형, 최오길, 오원정은 을해년(1885) 제1차 감계 때 함께 했던 인물들이다. 청국 인사들과 조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가 결국 세 갈래로 인원을 나누어서 조사하기로 약정하였다. 이 때 오원정은 청국 화원(畵員) 염영(廉榮)과 함께 서두수(西頭水)로 갔고, 최두형과 최오길은 이중하와 함께 백두산으로 갔다. 당시 일어났던 상황은『백두산일기』(이왕무 외 역, 「역주 감계사등록」 상, 동북아역사재단, 2008, 224~245쪽)에 자세히 나온다.

이 때에 청국 관원은 오로지 홍단수로 가서 조사하려 하는 고로 신은 말하기를, 이 지역도 또한 우리나라 내지이니 왕감(往勘)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여 여러 날 의견을 고집하며 옥신각신 다투다가 [주460]
편자주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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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가[是白如可] : ~이옵다가, ~이옵시다가.

마침 총리각국사무아문의 작년 3월 주의등본(奏議謄本)을 보니 홍단수도 강원(江源)에 들어 있었습니다. 논의하던 중 청국 관원은 오로지 이것에 의거하여 일을 해결하려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한번 확정하지 않을 수 없어 4월 2일에 함께 출발하여 홍단 수원을 찾아보고 삼지(三池) 허항령(虛項嶺)에 이르러서 상세히 조사하고 그것이 당초부터 교계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였으나 연이어 큰비[大雨]를 만나 6일에야 장파로 돌아와서 다시 장백산에 들어가 토문강 수원을 조사할 것을 상의하였습니다. 그런데 청국 관원[華員]은 또 서두수와 홍단수의 논의를 주장하며 여러 날 옥신각신 고집을 피우며 변론하다가 비로소 13일에 일동이 장백산에 들어가기로 하고 홍토수를 따라 수원 끝까지 가서 다시 장백산 비석 세운 곳에 올라가 대택(大澤, 天池)에 도착하여 산수의 형세를 두루 조사하고 24일에 장파를 출발하여 5월 2일 무산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간 한 달에 걸친 산행(山行)은 연일 눈과 비가 장마 되어 시내와 골짜기[谿壑]는 넘쳐 흐르고[漲溢] 구덩이[坑坎]는 질퍽[沮洳]하여 인마(人馬)가 통과하기 어려운데 굶주리고 차가운 몸으로 산과 내를 건너 온갖 험로를 경유했습니다. 그러나 대국[淸]과 소국[朝鮮]의 100여 인원이 다행히도 사고 없이 산에서 내려왔으니 왕령(王靈) [주461]
편자주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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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의 위덕(威德)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조선 역대 선왕들의 신령한 도움을 의미한다.

이 보살피지 않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경계를 감정하는 일은 청국 관원이 처음부터 말하기를, 비퇴가 압록강과 송화강 양원 사이에 있으니 진실로 부합되지 않는다. 총서의 주의 안에도 말하기를, 이 비(백두산정계비)는 곧 황명을 받들고 변방을 조사한 것이지 경계를 나누는[分界] 비가 아니므로 이것으로 증거를 삼을 수 없다. 오직 소백산의 분수령 [주462]
편자주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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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령(分水嶺) : 분수계가 되는 산마루나 산맥이나 여기서는 백두산정계비가 서 있는 분수령을 말한다.

이 바로 압록강과 도문강의 원두(源頭)가 상대(相對)한 지점이므로 삼지(三池)의 홍단하로써 경계를 삼아 비석을 세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은 말하기를, 이번 복감(覆勘)은 오직 구계(舊界)를 거듭 자세하게 밝히는 데에 있고 총서의 주의 내에도 또한 총론하건대 대도문강을 확실하게 증거로 삼아서 계한(界限)이 저절로 분명하게 하는 데에 있다고 말하였으니 이 일구(一句)가 바로 감계의 요지입니다. 지금 이미 수원을 두루 조감하였으니 청컨대 『흠정회전』 및 『황조일통여도』로써 물길마다 고증하면 홍토수가 대도문강이 된다는 것은 확실하여 의심이 없으니 이것으로 경계를 정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청국 관원은 말하기를, 홍토수와 비퇴는 거리가 오히려 멀고 또 분수령과 연접하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은 말하기를, 홍토수는 비퇴와의 거리가 멀고 또 분수령과 연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퇴(堆)를 쌓고 목책[柵]을 설치하였다. 그런데 세월도 오래되었고 산이 깊어서 흙무더기만 남고 목책은 썩어서 지금 상고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의혹을 일으키고 있으니 마땅히 옛 목책[舊柵]의 터에 비석 하나를 세워서 구계(舊界)를 밝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청국 관원은 조금도 듣지 않고 다만 홍단수를 한결같이 굳게 고집하고 고의로 산중에 체류하여 협박하면서 기어코 억지로 결정하고자 하였습니다. 신도 역시 홍토수를 한결같이 굳게 고집하니 피차가 서로 견지하여 한 달이 지나도록 결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청국 관원도 그 홍단수가 도전(圖典)에 맞지 않음을 스스로 알고 끝내 억지로 정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또 하나의 지류(支流)로 이름이 석을수라고 하는 것을 찾아서 경계를 정하자고 요구하였습니다. 대개 석을수라 하는 것은 장파로부터 홍토수를 따라 80리를 올라가면 홍토산에서 10여 리가 채 못 되는 곳에 서남쪽으로부터 흘러와서 홍토수와 합하는 물입니다. 그 수원은 소백산 동남 기슭 30리쯤에서부터 나옵니다. 곧 물은 적으나 그 흐름은 홍토수보다 다소 길며 또한 『일통여도』 속에 기재되었고 대도문강 수원의 한계가 아닙니다. 그런데 청국 관원의 의도는 오로지 비퇴의 경계를 반박하고자 하는 까닭에 드디어 홍토수원[紅土之源]까지도 아울러 버리고 따로 그 곁에 있는 하나의 물줄기를 경계로 정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물을 가리켜 곧 구계(舊界)와 서로 부합한다 하여 경계를 정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또한 청국 관원은 말하기를, 이 물로 경계를 하면 장파지방이 당연히 귀국에 속하니 귀국이 얻게 되는 것이라 운운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은 말하기를, 장파는 원래 우리 땅에 속하고 『여도』 안에 대도문강의 경계는 홍토의 수원임을 밝혔으니 어찌 홍토의 수원을 버리고 일보를 옮겨서 정하겠는가 하였습니다.
 이후로부터 청국 관원은 석을수로 경계를 정하자고 요구하였고 신은 홍토수로 경계를 정하자고 요구하며 시일을 소모하고 끝내 협의하여 정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함께 상의하기를, “이번 감계는 무산부 연강으로부터 장백산 장산령(長山嶺) 서쪽 홍토수와 석을수가 합류하는 곳까지 일일이 고증하여 서로 다른 의심이 없으니 이미 감정을 다한 곳입니다. 합류처 이상 결정하지 못한 원두(源頭)의 두 물줄기[兩水]는 회도(繪圖)하여 총서로 보내어 성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기다려 경계를 세우자는 뜻으로 서로 조회하자”고 하였습니다. [주463]
편자주 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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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是白乎] : ① ~이사온, ~이온, ~인 ② ~이사오므로, ~이옵기로 ③ ~이사오니, 是乎의 높임말.

그러면 홍단과 장파의 설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유민(流民)에 대한 일은 신이 청국 관원에게 의논하여 말하기를, “계한(界限)은 이미 감정(勘定)을 다하였고 아직 완료하지 못한 곳은 곧 원두 몇 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민을 편안하게 머물러 살게 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가 되니 청컨대 장정(章程)을 의논하여 정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청국 관원[華員]이 말하기를, “유민을 편안하게 거주하게 하는 장정(章程)은 조정의 지시를 기다려서 거행할 것이며 내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자의로 재단하여 결정할 수 없으니 장정이 내려지기 전에는 오직 청국 백성[華民]을 금칙하여 월간(越墾)하는 조선 백성을 침학하지 말도록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변계의 형편과 유민(流民)의 사정은 따로 별단 [주464]
편자주 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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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단(別單) : 『감계사등록』 마지막에는 부록으로 이중하가 언급한 별단의 초본[別單草]을 수록하였다.

을 갖추어 을람(乙覽) [주465]
편자주 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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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야지람(乙夜之覽)의 준말로 임금이 취침하기 전에 하는 독서를 뜻한다. 을야는 이경(二更), 곧 밤 9시부터 11시 사이를 가리키는데, 낮에는 정무에 바쁜 임금이 을야의 시간에 독서하여 그로부터 지혜를 얻고 자신을 수양하는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여기서는 임금이 글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에 준비하겠습니다. [주466]
편자주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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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是白遣] : ~이사옵고, ~이옵고.


 지난해 중국총리아문이 주의한 고증변석팔조(考證辨晰八條) [주467]
편자주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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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이 주장하는 양국의 경계에 대해서 분석해야 할 것 세 가지와 고증해야 할 것 다섯 가지를 말한다. 청국의 군기대신(軍機大臣)이 황제에게 상주한 글에 자세히 나오는데, 『감계사등록』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가 있으므로 삼가 조사한 상황에 신의 어리석은 소견을 첨부하여 축조변증(逐條卞證)한 것 [주468]
편자주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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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변석팔조(考證辨晰八條)를 이중하가 조목조목 반박한 글이 바로 ‘도문계변석고증팔조(圖們界辨晰考證八條)’이다. 이 책의 부록으로 별단초와 함께 그 원문과 번역물을 실었다.

을 따로 한 책을 만들어 회인지도 [주469]
편자주 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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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인지도(會印地圖) : 1887년 5월 26일 제2차 감계지도를 의미할 것이다. 이 지도는 「중조변계사(中朝邊界史)」(양소전(楊昭全)·손옥매(孫玉梅), 길림문사출판사(吉林文史出版社), 1993, 338쪽)에도 실려 있다.

1본(本), 조회담초 합 1권과 아울러 수정하여 승정원에 올리오며 신이 이로부터 임소(任所)에 돌아온 연유를 치계(馳啓)하는 일입니다. [주470]
편자주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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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온일, 살누온일[爲白臥乎事] : ∼하옵는 일, ∼하옵시는 일.



 
주 449
빗견과, 올잇견과[爲白有在果] : ~하였삽거니와, ~하옵셨거니와.
주 450
이온즉[是白乎則] : ~이사온즉, ~이사오면.
주 451
당시 청국은 국경비를 세울 목적으로 홍단수 합류처까지 15개의 석비를 운반하였다. 그러나 우리측과 협의를 하고 홍단과 장파의 설이 불문(不問)에 부치게 되자 진영이 운반한 석비는 세우지 않게 되었다.
주 452
이으[오]며, 이오며[是白乎旀] : 이사오며.
주 453
목극등이 세운 백두산정계비를 말한다.
주 454
이다이온즉[是如是白乎則] : ~이라고 함이온즉, ~이라고 하옵신즉.
주 455
이다온[是如] : ~이다, ~이라고, ~이라는.
주 456
조선시대 5위(五衛)에 속하는 정9품 무관직이다.
주 457
조선 세종 때 김종서(金宗瑞)를 시켜서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함경도 두만강 하류 지역에 설치했던 군사상 요충지. 곧 종성(鐘城)·온성(穩城)·회령(會寧)·경원(慶源)·경흥(慶興)·부령(富寧)의 여섯 진을 말한다.
주 458
1887년 4월 5일 안무영 감결에는 김응학(金應學)이 전응학(全應學)으로 되어 있다.
주 459
이중하가 언급한 수행원 중에 최두형, 최오길, 오원정은 을해년(1885) 제1차 감계 때 함께 했던 인물들이다. 청국 인사들과 조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가 결국 세 갈래로 인원을 나누어서 조사하기로 약정하였다. 이 때 오원정은 청국 화원(畵員) 염영(廉榮)과 함께 서두수(西頭水)로 갔고, 최두형과 최오길은 이중하와 함께 백두산으로 갔다. 당시 일어났던 상황은『백두산일기』(이왕무 외 역, 「역주 감계사등록」 상, 동북아역사재단, 2008, 224~245쪽)에 자세히 나온다.
주 460
이다가[是白如可] : ~이옵다가, ~이옵시다가.
주 461
왕조의 위덕(威德)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조선 역대 선왕들의 신령한 도움을 의미한다.
주 462
분수령(分水嶺) : 분수계가 되는 산마루나 산맥이나 여기서는 백두산정계비가 서 있는 분수령을 말한다.
주 463
이온[是白乎] : ① ~이사온, ~이온, ~인 ② ~이사오므로, ~이옵기로 ③ ~이사오니, 是乎의 높임말.
주 464
별단(別單) : 『감계사등록』 마지막에는 부록으로 이중하가 언급한 별단의 초본[別單草]을 수록하였다.
주 465
을야지람(乙夜之覽)의 준말로 임금이 취침하기 전에 하는 독서를 뜻한다. 을야는 이경(二更), 곧 밤 9시부터 11시 사이를 가리키는데, 낮에는 정무에 바쁜 임금이 을야의 시간에 독서하여 그로부터 지혜를 얻고 자신을 수양하는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여기서는 임금이 글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주 466
이고[是白遣] : ~이사옵고, ~이옵고.
주 467
청국이 주장하는 양국의 경계에 대해서 분석해야 할 것 세 가지와 고증해야 할 것 다섯 가지를 말한다. 청국의 군기대신(軍機大臣)이 황제에게 상주한 글에 자세히 나오는데, 『감계사등록』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주 468
고증변석팔조(考證辨晰八條)를 이중하가 조목조목 반박한 글이 바로 ‘도문계변석고증팔조(圖們界辨晰考證八條)’이다. 이 책의 부록으로 별단초와 함께 그 원문과 번역물을 실었다.
주 469
회인지도(會印地圖) : 1887년 5월 26일 제2차 감계지도를 의미할 것이다. 이 지도는 「중조변계사(中朝邊界史)」(양소전(楊昭全)·손옥매(孫玉梅), 길림문사출판사(吉林文史出版社), 1993, 338쪽)에도 실려 있다.
주 470
누온일, 살누온일[爲白臥乎事] : ∼하옵는 일, ∼하옵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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