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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계사등록

회령에서 감계사와 청국 관원 방랑(方朗)이 서로 논의하였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함

  • 발송일
    1887년 5월 16일(음)(丁亥五月十六日)
□ [1887년] 5월 16일 회령에서 청국 관원 방랑을 찾아가 만나다
 ○ 내가 말하기를, “한 달이 넘도록 감계를 논의하였지만 끝내 서로 의견이 합치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곧 돌아가려고 합니다. 다만 생각하건대 대국(大國 : 청)과 소국(小國 : 조선)은 원래 일가(一家)였으며 요사이[近日]에는 더욱 옛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에 이르렀습니다.주 428
편자주 428)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에 청국 정부가 조선에 개입하였으며, 원세개가 당시 한양에 머무르면서 입김을 행사하였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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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장황하게 감계를 논의하는 것은 지극히 옳지 않습니다. 하물며 이번 회감에서도 경계를 결정하지 못하였다는 말이 바로 주변[隣주 429
편자주 429)
이중하가 말하는 주변[隣]은 당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남하하는 러시아와 한반도와 대륙에 야욕을 품고 있던 일본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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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알려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방랑(方朗)이 말하기를, “귀하의 말씀이 매우 옳습니다. 만약 석을수로 경계를 정한다면 장파(長坡)도 잃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부사(府使)주 430
편자주 430)
덕원부사(德源府使)이자 토문감계사(土們勘界使)인 이중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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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서는 한결같이 굳게 고집하시니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석을수는 홍토수와의 거리가 몇 리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곳이며 들판도 경작할 수 없는 곳입니다. 곧 삼나무와 도랑 뿐이라 오랜 세월[千年]동안 쓸모 없는 땅입니다. 이 어찌 득실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국가의 강토(疆土)는 아주 작은 땅[寸尺]도 매우 중요합니다. 홍토수는 명백하게 옛 경계입니다. 내가 어찌 마음대로 다른 강물에 정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방랑이 말하기를, “강토(疆土)의 중요함은 서로 간에 똑같습니다”라고 하였다.

  • 편자주 428)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에 청국 정부가 조선에 개입하였으며, 원세개가 당시 한양에 머무르면서 입김을 행사하였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바로가기
  • 편자주 429)
    이중하가 말하는 주변[隣]은 당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남하하는 러시아와 한반도와 대륙에 야욕을 품고 있던 일본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바로가기
  • 편자주 430)
    덕원부사(德源府使)이자 토문감계사(土們勘界使)인 이중하를 가리킨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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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에서 감계사와 청국 관원 방랑(方朗)이 서로 논의하였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함 자료번호 : gd.k_0002_0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