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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계사등록

청국 관원 측에서 조사한 결과 동붕수(董棚水)의 하류 물줄기가 홍토수나 석을수(石乙水)와 접해 있지 않았다고 회신

  • 발신자
    李重夏
  • 수신자
    淸國官員
  • 발송일
    1887년 4월 25일(윤)(丁亥閏四月二十五日)
□ [1887년] 5월 1일 장파에서 청국 관원이 조회주 395
편자주 395)
길림파원 진영이 보낸 조회(照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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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하는 일입니다. 본국처는 윤4월 13일에 귀 부사와 회동하여 장파의 북쪽으로 향하는 물줄기를 경유해 부교(浮橋)에서 감계하는 일을 시작해 장산령(長山嶺)을 지나 홍토수와 석을수(石乙水)의 물이 모이는 곳에 이르렀는데, 측량한 물길[水道]이 88리 반이었습니다. 곧장 모인 물의 두 개 물줄기를 나누어 세세히 감사(勘査)하였습니다. 홍토수 위에는 두 개의 수원(水源)을 조사해서, 그중 하나는 원지(圓池)에서 발원하는데 이 물줄기는 물이 모이는 곳을 경유하여 꺾어져 서북쪽으로 향하다가 원지(圓池)에 이르렀고, 길이는 27리 230보(步)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홍토수 위쪽에 있는 수원(水源)에서 물이 모이는 곳을 경유해 서남쪽으로 향하다가 평평한 언덕의 물이 다하는 곳에 이르렀는데, 길이가 11리 340보였습니다. 모두 동붕수에 접해 있지 않았고, 또한 홍토수의 수원 두 개는 모두 비퇴와 거리가 매우 멀었으며, 양자는 서로 관통해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석을수를 조사하였습니다. 조선에서는 도랑수(島浪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물줄기는 소백산에서 발원하는데, 본국처와 부사는 측량위원(測量委員) 등을 독촉해서 대동하여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며 조사해갔습니다. 석을수 위의 도랑 입구를 지나 삼급(三汲)의 제1포(泡)와 거리가 18리이고, 양 끝이 석을수의 작은 도랑, 짧은 지류로 물이 모여서 들어가는 데에 이르기까지는 계측이 되지 않는 외에 조사하기를, 홍토수와 석을수 두 물줄기가 모이는 곳을 경유해 서남쪽으로 향하다가 다시 서쪽으로 향해 석을수의 물 흐름이 잦아지는 곳에 이르기까지 길이가 41리 215보였습니다. 또한 물 흐름이 잦아지는 곳에 인접한 한 도랑을 경유해 서남쪽으로 향하여 길이가 12리, 도랑 너비가 2~3장(丈), 깊이가 5~6척(尺)이나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도랑은 또한 황화송전(黃花松甸)에 접하고 있었습니다. 이 전(甸)은 서쪽으로 향하는데 길이가 5리이고, 그 전은 다시 한 도랑에 접하여 서북쪽으로 향하였는데 길이가 22리이고, 소백산의 서쪽 면 제1봉의 동쪽 기슭 밑에 이르기까지 도랑의 너비는 4~5장에서 2~3장까지 일정하지 않고, 깊이는 1~2장으로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도랑의 양쪽 언덕은 모두 사석(沙石) 무더기의 양 사이에 연계되어 있는데, 이는 장파를 따라 물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위로 향하였습니다. 조사한 석을수의 원류(原流)가 이와 같았고, 아울러 소백산을 경유해 지류를 따라서 석을수를 핵사(覈査)하였는데 역시 이와 같았습니다. 또 소백산의 서쪽에는 물의 흐름이 있는데 압록강으로 들어갔습니다. 마땅히 전부 글을 갖추어 귀 부사께 조회하오니, 번거로우시더라도 옳은지 그른지, 서로 부합하는지 사조(査照)하시고, 곧 조복(照覆)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조회합니다.

  • 편자주 395)
    길림파원 진영이 보낸 조회(照會)이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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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 관원 측에서 조사한 결과 동붕수(董棚水)의 하류 물줄기가 홍토수나 석을수(石乙水)와 접해 있지 않았다고 회신 자료번호 : gd.k_0002_0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