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넷

상세검색 공유하기 모바일 메뉴 검색 공유
닫기

상세검색

닫기
기사제목
작성·발신·수신자
날짜
~
본문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ID :NAHF.gd.k_0002_0600IDURL
사료라이브러리 열기
  • 글씨크게
  • 글씨작게
  • 프린트
  • 텍스트
  • 오류신고

청국 관원이 신무충(申武忠)에서 이중하에게 홍토산수(紅土山水) 물줄기는 양 국 경계로 합당치 않음을 서신

 
  • 발신자淸國官員
  • 수신자李重夏
  • 발송일1887년 4월 19일(윤)
□ 같은 달[1887년 윤4월] 19일 청국 관원이 조회함[신무충(申武忠) [주393]
편자주 393
닫기

부록의 백두산 지도에서 보이는 신무성(神武城)으로 추정한다.

에서]

 조회하는 일입니다. 본국처에서 귀 부사와 함께 홍토산(紅土山) 물줄기의 두 수원(水源)을 감득(勘得)하였는데, 비퇴(碑堆)와 거리가 매우 멀고, 물줄기와 비퇴는 양자가 서로 관통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동유와붕수(董維窩棚水)에서 남쪽으로 흐르는[南面] 물줄기를 조사하였는데, 이 동유와붕수[棚]를 경유하여 물줄기를 따르고 지류를 따라가다가 물이 없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생각건대 전번에 말씀하신 ‘복류’는 조사하였으나 실제 근거가 없었습니다. 이에 귀 부사도 “홍토산수는 비퇴와 접해 있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동붕(董棚)의 물줄기는 홍토산수에 접해 있지 않고, 또 가운데에는 강격(岡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국처와 귀 부사의 두 차례 감계는 험난하고 어려운 고통이 필설로는 곡진히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귀 부사께서 이 감계하는 일을 위해 심력(心力)을 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경계지점[界址]은 하루에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고, 소국(小國)의 인민들은 한 달에 편안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까닭에 재삼 귀 부사와 어느 곳을 경계의 근거로 삼을지 의논하며 결정하였습니다. 권 통사(通詞)는 구술(口述)하기를 “부사께서는 직접 ‘홍토산수는 비퇴 및 동붕수와 본디 접해 있지 않고, 복류(伏流)도 확실한 증거가 없으나, 정부의 의견이 홍토산수를 경계로 정하는 데에 있다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으니, 홍토산수를 제외하면 부사께서는 감히 책임지고 결정하지 못하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본국처는 진실에 근거하는 연유로 진정 통사의 구술하는 말이 오류가 있지 않을까 걱정되어 응당 조회를 시행하여 여쭈어서 권 통사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 서로 부합하는지를 밝히고자 합니다. 이에 조회하오니, 귀 부사께서는 사조(査照)하시고 견복(見覆)하여 시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조회합니다.

 
주 393
부록의 백두산 지도에서 보이는 신무성(神武城)으로 추정한다.
 

태그 :

태그등록
이전페이지 리스트보기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