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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 관원과 이중하가 다시 양 국 경계문제로 인해 논쟁

 
    • 발송일1887년 4월 16일(윤)
□ [1887년] 윤4월 16일
 홍토수(紅土水)를 감계한 후 청국 관원[華員] 3명이 함께 와서 경계를 조사하는 업무[界務]를 함께 상의할 것을 요청하며 “지금 홍토수를 보니 비퇴(碑堆)에 접해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비퇴가 홍토수에 접해 있다면 어찌 경계를 조사하는 일에 분분함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이 “귀 정부(政府)가 ‘복류(伏流) 40리’라고 하였는데 지금 동붕수(董棚水)를 감계하니 과연 홍토수와 접해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접해 있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홍토수를 보니 비퇴와 매우 멀고, 동붕수를 보니 홍토수와 접해 있지 않으니, 부사의 의견은 어떻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비퇴는 홍토수에서 거리가 더욱 멀기 때문에 나는 지난번에 그 사이에 표석(標石)을 추가 설치[增設]할 것을 논급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비석은 근거할 것이 못되고, 나는 이미 [그 비석이] 원래 어느 땅이 있었는지를 알지만, 누가 옮겼다는 것은 차마 분명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귀하께서 만일 비석을 옮겼다는 것을 정확히 아신다면 명백히 공문을 보내셔야 할 것입니다. 이는 대사건이니, 폐직은 마땅히 급히 우리 조정에 상주하여 살펴서 판별[究辦]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나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여, 나는 “이것은 명백히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찌 그것을 공식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니, 그는 또한 답하지 않았다. 나는 “비석은 혹시 옮겨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퇴(堆)가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돌무더기[堆] 위에 자란 나무 중에 노목(老木)도 많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급히 “돌무더기는 우리 조정에서 장백산에 기도하기 위해 왕래하는 지름길에 표시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 사람은 목극등이 비석을 세울 때 왕복한 구안(舊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어찌 말이 됩니까?”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부사께서는 홍토산수(紅土山水)는 상의할 것이 없다고 여기시는데 왜입니까? 우리들은 매번 마음으로 곡진히 말씀드리는데, 부사는 어찌 한결같이 차갑게 들으십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귀하께서 매번 저에게 상의하자고 말씀하는데, 조선 내지(內地)로 축소하여 결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찌 [우리] 땅을 축소하는 것을 상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이제 이미 물줄기를 다 감계하였으니, 귀하께서는 공정하게 말씀해보십시오”라고 하였다. 나는 “공정하게 말하자면, 즉 홍토수입니다”라고 하였다. 저들은 모두 성을 내면서 “이것이 과연 공정한 말입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우리나라의 수백 년 옛 경계에서 정하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한다면 사리가 본래 그러한데 어찌 하여 갑자기 격노하시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또한 크게 노여워하며 “그렇다면 이 일은 다시 논의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당연히 홍단하(紅丹河)로 재판(裁判)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곳은 조선의 내지입니다. 귀하께서 비록 맘대로 결정하시더라도 저는 결정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이 곳이 길림 땅이지 어찌 조선 땅입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황조일통여도』에는 본래 대도문(大圖們)의 계한(界限)이 있으니, 함께 파수(派水)마다 공증함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지도는 황제께서 하사하신 것입니까, 총서에서 보낸 것입니까? 지도는 증거로 삼기 부족합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총서에서 상주한 것은 매번 「여도(輿圖)」를 원정(援訂)으로 삼는데, 이것이 증거로 삼기 불가하다면 다시 어떤 증거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또한 크게 노하며 “총서의 공문(公文)에서 그것을 보고자 합니까? 그 의미는 홍단수가 경계가 된다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홍토산수에 대해서는 귀국처가 지난해에 감계하여 품보(稟報)한 가운데에는 애초에 한 글자도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에 총서는 애초에 이런 강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여 그런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홍토수는 귀 정부에서 이미 누차 북양 [주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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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양(北洋) : 중국 청 말기에 강소성(江蘇省) 이북의 직예(直隷), 산동(山東), 요령(遼寧) 등 세 성(省)의 연해(沿海)를 통틀어 이르던 이름이다. 직예총독(直隷總督)이 북양대신을 겸임하여 관할하였다.

총서(北洋總署)에 요청하였으나 총서의 의견은 그것을 허락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홍단수로 결정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총서의 주의 중에 수원(水源)과 지형(地形)은 논리가 매우 상세하여 홍토수가 대도문(大圖們)임은 또한 분명합니다”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총서는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하고, 오직 우리들이 글로 품보하는 것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부사는 매번 총서의 주의로 증거로 삼지만 실로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번에 모름지기 상세히 그려서 올린다면 반드시 재탈(裁奪) [주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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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재를 말한다.

이 있을 것이니, 우리들이 어찌 이처럼 논쟁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일은 곧 옛 경계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나 귀국처는 마침내 별도로 새로운 경계를 정하고자 하니, 대국 [주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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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大國) : 청국을 말한다.

과 소국 [주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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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小國) : 조선을 말한다.

이 3백 년 이래 본래 옛 경계가 있었는데, 어찌 오늘날 새롭게 다른 경계를 정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옛 경계는 누가 압니까? 부사께서 아십니까?”라고 하여, 나는 “홍토수가 옛 경계입니다”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부사께선 이미 그것이 지류에 접해 있지 않고 비퇴에 접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시고도 한결같이 홍토수라고 주장하십니까? 오늘은 불가불 결정한 후에 하산해야 하겠으니 부사께선 분명히 말씀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며, 3명의 관원이 머리를 모으고 더욱 화를 내면서[增氣連聲] 몰아붙였다. [주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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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 이후부터 조선 감계사 이중하와 청국의 길림파원 진영 일행 간에 극도의 감정 폭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중하는 청국 관원들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토문강설을 주장하여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화를 내며 소리치기를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나라의 강토는 축소할 수 없습니다 [주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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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투식은 주로 관료, 유림이 본인의 의지를 굽힐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자주 사용하던 관용적인 문구이다. 1895년 정부가 전통적인 상투의 제거를 의미하는 단발령(斷髮令)을 하달하자 유림은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吾頭可斷, 髮不可斷]”고 하면서 죽음으로 항거했던 것이 비슷한 사례이다.

[吾頭可斷, 國疆不可縮]. 여기에 국가의 구지(舊誌)가 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압박하십니까?”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홍토수 이외에 있어서 부사는 책임지고 결정할 수 없다고 하시는데, 귀 정부의 명령한 뜻이 본래 이와 같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우리 정부에서 나를 보낼 때 다만 동쪽의 토문(土們) 옛 경계로 경계를 결정할 것을 알았고, 홍단수·서두수의 설은 우리 정부의 생각과 염려가 미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귀 정부의 뜻은 오직 홍토산수에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부사께서 이미 경계를 책임지고 결정할 수 없다면 부사를 파송한 것은 무슨 일을 관장하려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옛 경계를 지적해 증명하기 위해 파송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청국 관원은 “옛 경계는 증명할 만한 유적이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우리나라의 조정과 재야에 있는 도지(圖誌)는 모두 명백히 실은 것이 있으나, 우리의 도지는 귀하께서 반드시 불신하실 것이기 때문에, 저는 다만 황청지도(皇淸地圖)로 정정(訂正)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저들은 모두 노여워하고 한스러워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어서 말하기를, “그렇다면 이것으로 서로 조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그렇게 하신다면 마땅히 그처럼 되어야겠지요”라고 하였다. 그들의 의도는 모두 홍토수가 비퇴와 동수(董水)에 접하지 않다는 것을 성명(聲明)함으로써 우리나라의 홍토수의 설을 타파하고, 또 내가 지난날 외서(外署)에 보낸 ‘복류(伏流)’의 논의를 타파하고자 하는 계획이었다.

 
주 387
북양(北洋) : 중국 청 말기에 강소성(江蘇省) 이북의 직예(直隷), 산동(山東), 요령(遼寧) 등 세 성(省)의 연해(沿海)를 통틀어 이르던 이름이다. 직예총독(直隷總督)이 북양대신을 겸임하여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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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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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大國) : 청국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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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국(小國) : 조선을 말한다.
주 391
이 문장 이후부터 조선 감계사 이중하와 청국의 길림파원 진영 일행 간에 극도의 감정 폭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중하는 청국 관원들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토문강설을 주장하여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 392
이런 투식은 주로 관료, 유림이 본인의 의지를 굽힐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자주 사용하던 관용적인 문구이다. 1895년 정부가 전통적인 상투의 제거를 의미하는 단발령(斷髮令)을 하달하자 유림은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吾頭可斷, 髮不可斷]”고 하면서 죽음으로 항거했던 것이 비슷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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