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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 관원과 이중하의 논쟁이 매듭지어지지 못한 채로 회의를 마침

 
    • 발송일1887년 4월 10일(윤)
□ [1887년 윤4월] 10일
 청국 관원 방랑이 종용(從容)히 편지 한 장을 보냈다. 대체로 “지금 귀 부사께서는 홍토산수(紅土山水)로 경계를 정하였는데, 독리 진영의 의견은 한결같이 서두수에 있어서 끝내 조금도 돌이키지 않고 있습니다. 또 총서의 공문 중에 홍단하(洪丹河), 건천구(建川溝)의 논의가 있는데, 지금 비퇴(碑堆)를 근거로 삼아서는 불가함에도 불구하고 귀 부사는 한결같이 홍토산수(紅土山水)의 설로써 가니, 어찌 타협하여 결정할 날이 있겠습니까? 오늘 결정하지 못하면 장차 흠차(欽差) [주376]
편자주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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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명령으로 보낸 파견인으로 특명대사를 말한다.

가 올 것인데, 이는 진실로 귀국이 바라는 것이고, 저희들 [주377]
편자주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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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弟等’으로 청국파원 방랑(方朗) 등을 가리킨다.

의 행운입니다. 하지만 또한 어찌 도리어 오늘만 못할 것임을 알겠습니까? 저희는 마음속에 곡진한 말이 있으니, 한(韓 : 조선)의 땅을 축소하지 않고 장파(長坡)의 백성을 완전히 보호하는 것입니다. 홍토수(紅土水)의 서남쪽 한물길[派水] 중에서 가장 긴 것을 찾아보면 우리들은 비록 삼지(三池)를 경계로 삼지만, 대헌(大憲)께 잘 보고하면 장파에 거주하는 인민 100여 호의 가옥과 분묘(墳墓)는 그 연한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으니, 황제께서 은혜를 너그럽게 하고 특별히 불쌍히 여기신다면 우리 대황제(大皇帝)께서 일시지인(一視之仁)으로 반드시 허락하지 않으실 이유가 없으니, 귀하의 의견은 어떠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귀국처에서 우리 인민을 곡진히 염려하시는 것은 진실로 감사하오나 도문강(圖們江)에 본래부터 그 계한이 있는데, 어찌 그 안에서 축소하여 정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는 “땅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땅을 늘리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이는 본래 옛 도지(圖誌)가 있는데 폐방(敝邦)은 어찌 분수 밖에서 한 걸음이라도 점유하고자 하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는 “한 걸음도 축소할 수 없음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는 마음 속 깊은 것을 말하였는데 귀하의 의도는 선입견을 고집하시고자 한다면 흠차(欽差)가 와야 결정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며, 상당히 불만스럽게 여기며 회의를 끝냈다.

 
주 376
황제의 명령으로 보낸 파견인으로 특명대사를 말한다.
주 377
원문은 ‘弟等’으로 청국파원 방랑(方朗) 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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