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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청국 예부(禮部)에서 압록강(鴨綠)과 토문강(土門江) 사이의 국경 문제로 목극등(穆克登)을 파견하기로 결정한 자문을 승문원(承文院) 옛 기록에서 베낌

 
    • 발송일1887년 (음)
□ 승문원(承文院) [주332]
편자주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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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대교리(事大交鄰)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고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에 쓰이는 이문(吏文)의 교육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괴원(槐院)이라고도 하며 성균관(成均館), 교서원(校書院)과 함께 삼관(三館)이라고 하였다. 직제는 국초에는 문서응봉사(文書應奉司)가 설치되었고 1408년(태종 8) 지사(知事), 첨지사(僉知事), 검토관(檢討官), 교리관(校理官), 수찬관(修撰官), 서기(書記)를 두었다. 1411년에는 문서응봉사를 승문원으로 개칭하고 직제도 바꿔 판사, 지사, 첨지사, 교리, 부교리, 정자(正字), 부정자(副正字)를 두었다. 우후에 도제조(都提調), 부제조(副提調), 판교(判校), 참교(參校), 교감(校勘), 교리(校理), 교검(校檢), 박사(博士), 저작(著作), 정자, 부정자를 두었고 그밖에 이문습독관(吏文習讀官)을 두었다. 승문원 관원은 모두 문관으로 임용하고 참교 이하의 관원은 다른 관원이 겸임하였다. 뒤에 제술관(製述官), 이문학관(吏文學官), 사자관(寫字官)이 설치되었다. 정조 때에는 승문원등록(承文院謄錄)을 기초로 하여 조선 후기 대청(對淸) 및 대일(對日) 관계의 외교문서를 모은 「동문휘고(同文彙考)」가 편찬되기도 하였다.

고실(故實) [주333]
편자주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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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동문휘고(同文彙考) 원편(原編)」 권48, 「강계(疆界)」, ‘(壬辰)禮部知會白山査境令本國照管咨’에 실려 있다. 「동문휘고」가 「승문원등록」에서 편집한 것이므로 승문원등록에서 이 내용을 초한 것이거나 1788년(정조 12)에 이미 「동문휘고」가 출간되었으므로 이를 참조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을 그대로 베낌[照抄]

 예부(禮部)에서 자문(咨文)하는 일 [주334]
편자주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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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성·구범진 역, 『국역 동문휘고 강계 사료』, 동북아역사재단, 2008, 47~48쪽 및 106쪽에도 실려 있다.


 강희 50년(1711, 숙종 37) 8월 초4일, 태학사(太學士) 온달(溫達) 등이 상주한 뒤 성지(聖旨)를 받들었는데, ‘금년에 목극등 [주335]
편자주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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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淸實錄)」에는 ‘穆克敦’이라고 되어 있는데(「청실록(제6책)」 권247, 중화서국, 1985, 448쪽), 목극등(穆克登)의 오기일 것이다.

등이 봉성(鳳城)에서 장백(長白)까지 우리의 변경(邊境)을 답사(踏査)하려 하였으나, 길이 멀고 물줄기는 큼으로 인하여 곧장 그곳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다음 해 봄, 얼음이 풀리는 때를 기다려 따로 사관(司官)을 차견(差遣)하여 목극등과 함께 의주(義州)에서 작은 배를 만들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되, 만약 능히 전진(前進)하지 못한다면 곧장 육로(陸路)로 토문강(土門江)으로 가서 우리의 지방을 조사하는데 그 나라와는 상관없다. 다만 우리의 변지(邊地)가 도로(道路)가 요원(遼遠)하고 지방이 매우 험준(險峻)하여, 만일 중로(中路)에 막힘이 있다면, 조선국(朝鮮國)으로 하여금 차츰 조관(照管)하게 하여야 하니, 이 정유(情由)를 해부(該部 : 禮部)에서 조선국에 효유(曉諭)하라. [주336]
편자주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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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실록에도 청국예부자문(淸國禮部咨文)으로 싣고 있다(「숙종실록」 51, 숙종 38년, 2월 24일(정축), “淸國禮部咨文出來. 其咨文以爲, 上年八月太學士溫達等啓奏奉旨, 今年穆克登等, 自鳳城至長白, 査我邊境, 因路遠水大, 未獲卽抵彼處. 竢明春氷泮時, 另差司官, 同穆克登, 自義州造小舟泝流而上, 若不能前進, 卽由陸路, 往土門江, 査我地方. 但我邊道路遼遠, 地方甚險, 倘中路有阻, 令朝鮮國, 稍爲照管, 將此情由, 着該部曉諭朝鮮國”).

금년 진공(進貢) 사신으로 온 관원으로 하여금 베껴 가지고 가 그 왕[조선국왕]에게 가져가게 하라. 의논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조선(朝鮮) 진공정사(進貢正使) 여산군(礪山君) 이방(李枋) [주337]
편자주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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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군(礪山君) 이방(李枋)은 진주사은겸동지사(陳奏謝恩兼冬至使), 부사(副使)는 김연(金演), 서장관(書狀官) 유명응(兪命凝)이었다(「숙종실록」 50, 숙종 37년 10월 30일(을유)).

등에게 분명하게 알리고 그로 하여금 자문을 베껴가지고 가서 그 왕[조선국왕]에게 가져가게 하는 외에 바로 조선국왕에게 알려야 합니다. 이에 마땅히 자문(咨文)을 보내니[合咨 [주338]
편자주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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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자(合咨)’는 ‘합행이자(合行移咨)’의 약어일 것이다.

前去], 살펴보시고 시행해 주십시오. [주339]
편자주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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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휘고 (원편)』 권48, 「강계」, (壬辰)禮部知會白山査境令本國照管咨 말미에는 “康熙五十一年二月初七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주 332
조선시대 사대교리(事大交鄰)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고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에 쓰이는 이문(吏文)의 교육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괴원(槐院)이라고도 하며 성균관(成均館), 교서원(校書院)과 함께 삼관(三館)이라고 하였다. 직제는 국초에는 문서응봉사(文書應奉司)가 설치되었고 1408년(태종 8) 지사(知事), 첨지사(僉知事), 검토관(檢討官), 교리관(校理官), 수찬관(修撰官), 서기(書記)를 두었다. 1411년에는 문서응봉사를 승문원으로 개칭하고 직제도 바꿔 판사, 지사, 첨지사, 교리, 부교리, 정자(正字), 부정자(副正字)를 두었다. 우후에 도제조(都提調), 부제조(副提調), 판교(判校), 참교(參校), 교감(校勘), 교리(校理), 교검(校檢), 박사(博士), 저작(著作), 정자, 부정자를 두었고 그밖에 이문습독관(吏文習讀官)을 두었다. 승문원 관원은 모두 문관으로 임용하고 참교 이하의 관원은 다른 관원이 겸임하였다. 뒤에 제술관(製述官), 이문학관(吏文學官), 사자관(寫字官)이 설치되었다. 정조 때에는 승문원등록(承文院謄錄)을 기초로 하여 조선 후기 대청(對淸) 및 대일(對日) 관계의 외교문서를 모은 「동문휘고(同文彙考)」가 편찬되기도 하였다.
주 333
이 내용은 「동문휘고(同文彙考) 원편(原編)」 권48, 「강계(疆界)」, ‘(壬辰)禮部知會白山査境令本國照管咨’에 실려 있다. 「동문휘고」가 「승문원등록」에서 편집한 것이므로 승문원등록에서 이 내용을 초한 것이거나 1788년(정조 12)에 이미 「동문휘고」가 출간되었으므로 이를 참조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주 334
배우성·구범진 역, 『국역 동문휘고 강계 사료』, 동북아역사재단, 2008, 47~48쪽 및 106쪽에도 실려 있다.
주 335
「청실록(淸實錄)」에는 ‘穆克敦’이라고 되어 있는데(「청실록(제6책)」 권247, 중화서국, 1985, 448쪽), 목극등(穆克登)의 오기일 것이다.
주 336
역시 실록에도 청국예부자문(淸國禮部咨文)으로 싣고 있다(「숙종실록」 51, 숙종 38년, 2월 24일(정축), “淸國禮部咨文出來. 其咨文以爲, 上年八月太學士溫達等啓奏奉旨, 今年穆克登等, 自鳳城至長白, 査我邊境, 因路遠水大, 未獲卽抵彼處. 竢明春氷泮時, 另差司官, 同穆克登, 自義州造小舟泝流而上, 若不能前進, 卽由陸路, 往土門江, 査我地方. 但我邊道路遼遠, 地方甚險, 倘中路有阻, 令朝鮮國, 稍爲照管, 將此情由, 着該部曉諭朝鮮國”).
주 337
여산군(礪山君) 이방(李枋)은 진주사은겸동지사(陳奏謝恩兼冬至使), 부사(副使)는 김연(金演), 서장관(書狀官) 유명응(兪命凝)이었다(「숙종실록」 50, 숙종 37년 10월 30일(을유)).
주 338
‘합자(合咨)’는 ‘합행이자(合行移咨)’의 약어일 것이다.
주 339
『동문휘고 (원편)』 권48, 「강계」, (壬辰)禮部知會白山査境令本國照管咨 말미에는 “康熙五十一年二月初七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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