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주(吉州)에서 감계사의 행차가 불가피하게 지연되고 있음을 알리고 접대는 이전처럼 행할 것을 통지
□ [1887년 4월] 초4일 도착한 감계사 통문(通文)
○ 감계사(勘界使) 어른[이중하]께서 지난 달 19일 덕원(德源)주 190을 출발하여 행차한다는 연유는 이미 노문(路文)으로 통지하였거니와, 그동안 날씨가 순조롭지 않아서 일정이 이로 인해 지체되었습니다.주 191 이번 달 초2일 길주(吉州)주 192
정해년[1887, 고종 24] 4월 초1일 길주 배행(陪行) 방전(房全)
○ 감계사(勘界使) 어른[이중하]께서 지난 달 19일 덕원(德源)주 190을 출발하여 행차한다는 연유는 이미 노문(路文)으로 통지하였거니와, 그동안 날씨가 순조롭지 않아서 일정이 이로 인해 지체되었습니다.주 191 이번 달 초2일 길주(吉州)주 192
편자주 192)
를 출발하여 초3일 명천(明川)주 193 1390년(공양왕 2)에 해양(海洋)에서 길주로 개칭하고, 영주(英州)⋅선화(宣化) 등과 합쳐 만호부(萬戶府)를 두었다. 1398년(태조 7) 동북면의 주⋅군⋅현을 분정할 때 길주목(吉州牧)으로 승격되었다. 1467년(세조 13)이 고을 출신 이시애(李施愛)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여 1469년(예종 1)에 길주를 길성(吉城)으로 개명하고 목을 현으로 강등시켰으며, 영평령 이북을 경계로 양분하여 명천현(明川縣)을 신설하였다. 1605년(선조 38)에 방어사를 두었으며, 1614년(광해군 6)에 목사를 겸직하도록 하였고, 1701년(숙종 27)에는 방어영을 성진으로 옮겼다. 임진왜란 때에는 길주성에 왜군의 본진이 주둔하기도 했다. 갑오개혁으로 지방관제가 바뀜에 따라 1895년 부가 군이 되었다.
편자주 193)
에서 묵고 차차 행차할 것이라 합니다. 연후(延候)주 194와 지대(支待) 등의 뒷바라지하는 절차는 이전 노문에 따라 거행하라 하므로, 분부를 받들어 이에 급히 통지하오니, 이로써 모름지기 정성을 다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본래 여진 궁한리촌(女眞弓漢里村)이었다. 1469년(예종 원년)에 이시애(李施愛)가 반역을 일으켰기 때문에 격을 낮추어 길주를 길성현(吉城縣)으로 만들고, 또 장덕산(長德山)에서부터 북쪽 지역을 분할하여 따로 현(縣)을 만들어 명원역(明原驛)을 치소(治所)로 삼고, 명천(明川)이라 하였다. 1512년(중종 7)에 혁파하여 길주(吉州)에 예속시켰다가 이듬해에 다시 설치하였다. 1606년(선조 39)에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키고 치소(治所)를 영평(永平) 고성(古城)으로 옮겼으며 뒤에 다시 지금 치소로 옮겼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50, 함경도).
정해년[1887, 고종 24] 4월 초1일 길주 배행(陪行) 방전(房全)
- 편자주 190)
- 편자주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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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자주 192)
1390년(공양왕 2)에 해양(海洋)에서 길주로 개칭하고, 영주(英州)⋅선화(宣化) 등과 합쳐 만호부(萬戶府)를 두었다. 1398년(태조 7) 동북면의 주⋅군⋅현을 분정할 때 길주목(吉州牧)으로 승격되었다. 1467년(세조 13)이 고을 출신 이시애(李施愛)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여 1469년(예종 1)에 길주를 길성(吉城)으로 개명하고 목을 현으로 강등시켰으며, 영평령 이북을 경계로 양분하여 명천현(明川縣)을 신설하였다. 1605년(선조 38)에 방어사를 두었으며, 1614년(광해군 6)에 목사를 겸직하도록 하였고, 1701년(숙종 27)에는 방어영을 성진으로 옮겼다. 임진왜란 때에는 길주성에 왜군의 본진이 주둔하기도 했다. 갑오개혁으로 지방관제가 바뀜에 따라 1895년 부가 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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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자주 193)
본래 여진 궁한리촌(女眞弓漢里村)이었다. 1469년(예종 원년)에 이시애(李施愛)가 반역을 일으켰기 때문에 격을 낮추어 길주를 길성현(吉城縣)으로 만들고, 또 장덕산(長德山)에서부터 북쪽 지역을 분할하여 따로 현(縣)을 만들어 명원역(明原驛)을 치소(治所)로 삼고, 명천(明川)이라 하였다. 1512년(중종 7)에 혁파하여 길주(吉州)에 예속시켰다가 이듬해에 다시 설치하였다. 1606년(선조 39)에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키고 치소(治所)를 영평(永平) 고성(古城)으로 옮겼으며 뒤에 다시 지금 치소로 옮겼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50, 함경도).
- 편자주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