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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계사등록

청국 관원 및 감계사 일행이 무산부로 출발했음을 안무영에 보고

  • 수신자
    按撫營
  • 발송일
    1885년 10월 3일(음)(乙酉十月初三日)
 ○ 치보(馳報)하는 일
 감계사(勘界使)와 종사관(從事官)주 407
편자주 407)
『勘界使謄錄』上, 李重夏의 「白頭山日記」에서 從事官은 趙昌植이라고 하였다. 1885년(고종 22) 7월 30일, 교섭아문주사(交涉衙門主事) 조창식(趙昌植)은 종사관(從事官)으로 차하(差下)되었다(『日省錄』, 高宗 22년 7월 30일 조. “安邊府使李重夏土們勘界使差下 交涉衙門主事趙昌植從事官差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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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행원(隨員)주 408
편자주 408)
수행원(隨員)은 안무영(按撫營) 중군(中軍) 최두형(崔斗衡), 전오위장(前五衛將) 최오길(崔五吉), 전첨지(前僉知)이후섭(李垕燮), 출신(出身) 오원정(吳元貞), 영리(營吏) 전보권(全普權), 가동(家僮) 흥업(興業), 근예(跟隷) 춘길(春吉)·응범(應範)·이돌(利乭) 등이었다. 『勘界使謄錄』上, 李重夏의 「白頭山日記」. “隨員按撫中軍崔斗衡前五衛將崔五吉前僉知李后(垕)燮出身吳元貞營吏全普權家僮興業跟隷春吉應範利乭略干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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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거느리고 대국(大國)주 409
편자주 409)
중국 청조(淸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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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파견된 관원(派員) 진영(秦煐)·덕옥(德玉)·가원계(賈元桂) 등주 410
편자주 410)
이 때 중국 청조(淸朝) 관원(官員)에 대해서는 본문 중 李重夏의 「백두산일기(白頭山日記)」에서도 보이는바 감계관(勘界官) 진영(秦煐)·덕옥(德玉)·가원계(賈元桂) 등이었다(『勘界使謄錄』, 「白頭山日記」, “中國勘界官秦煐德玉賈元桂 (후략).”」 중국 감계관의 직책은 독리상무위(督理商務委) 진영, 변무교섭승판처사무(邊務交涉承辦處事務) 덕옥, 호리초간변황사무(護理招墾邊荒事務) 가원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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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과 같이 당일 무산부(茂山府)를 향해 출발하므로 부사가 성밖까지 전송하라고 하여주 411
편자주 411)
여야(亦爲) : 이두로 -라고 하여, -라고 하고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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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장(羅將)주 412
편자주 412)
조선시대 병조(兵曹)에 속한 하급직원으로 나졸(羅卒)이라고도 한다. 의금부· 병조·오위도총부·사헌부·사간원 등에 배속되어 관원의 시종과 죄인을 다루는 일 등을 맡았다. 조선조 영조 때는 소유(所由), 사령(使令), 창도(唱導) 등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관아에 속한 나졸을 의미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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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정해 경상(境上)까지 호송 하였으며주 413
편자주 413)
오며(爲乎旀) : 이두로 하오며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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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원(派員)이하 인원 44명, 말 28필(은(段)주 414
편자주 414)
이두로 -은, -는, -이, -가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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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무산부(茂山府)로 향했고 본부의 인원 9명과 말 1필은 이곳에서 도로 돌아왔다. 음식을 드리는데 들어간 비용은 일일이 계산해주었으며 지불한 비용의 액수는 책으로 묶고 추보(追報)할 것이니 우선 그 과정을 치보(馳報)합니다.
 을유(乙酉 : 1885) 10월 초 3일 오시(午時)주 415
편자주 415)
하루를 12시로 나눈 시간 중 일곱째 시간으로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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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영(按撫營)주 416
편자주 416)
안영(按營) : 안무영(按撫營)의 약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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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보고함.
 뎨(題)주 417
편자주 417)
이두로 뎨김, 題音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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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자주 407)
    『勘界使謄錄』上, 李重夏의 「白頭山日記」에서 從事官은 趙昌植이라고 하였다. 1885년(고종 22) 7월 30일, 교섭아문주사(交涉衙門主事) 조창식(趙昌植)은 종사관(從事官)으로 차하(差下)되었다(『日省錄』, 高宗 22년 7월 30일 조. “安邊府使李重夏土們勘界使差下 交涉衙門主事趙昌植從事官差下”).바로가기
  • 편자주 408)
    수행원(隨員)은 안무영(按撫營) 중군(中軍) 최두형(崔斗衡), 전오위장(前五衛將) 최오길(崔五吉), 전첨지(前僉知)이후섭(李垕燮), 출신(出身) 오원정(吳元貞), 영리(營吏) 전보권(全普權), 가동(家僮) 흥업(興業), 근예(跟隷) 춘길(春吉)·응범(應範)·이돌(利乭) 등이었다. 『勘界使謄錄』上, 李重夏의 「白頭山日記」. “隨員按撫中軍崔斗衡前五衛將崔五吉前僉知李后(垕)燮出身吳元貞營吏全普權家僮興業跟隷春吉應範利乭略干人”바로가기
  • 편자주 409)
    중국 청조(淸朝).바로가기
  • 편자주 410)
    이 때 중국 청조(淸朝) 관원(官員)에 대해서는 본문 중 李重夏의 「백두산일기(白頭山日記)」에서도 보이는바 감계관(勘界官) 진영(秦煐)·덕옥(德玉)·가원계(賈元桂) 등이었다(『勘界使謄錄』, 「白頭山日記」, “中國勘界官秦煐德玉賈元桂 (후략).”」 중국 감계관의 직책은 독리상무위(督理商務委) 진영, 변무교섭승판처사무(邊務交涉承辦處事務) 덕옥, 호리초간변황사무(護理招墾邊荒事務) 가원계였다.바로가기
  • 편자주 411)
    여야(亦爲) : 이두로 -라고 하여, -라고 하고의 뜻이다.바로가기
  • 편자주 412)
    조선시대 병조(兵曹)에 속한 하급직원으로 나졸(羅卒)이라고도 한다. 의금부· 병조·오위도총부·사헌부·사간원 등에 배속되어 관원의 시종과 죄인을 다루는 일 등을 맡았다. 조선조 영조 때는 소유(所由), 사령(使令), 창도(唱導) 등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관아에 속한 나졸을 의미하는 듯하다.바로가기
  • 편자주 413)
    오며(爲乎旀) : 이두로 하오며의 뜻이다.바로가기
  • 편자주 414)
    이두로 -은, -는, -이, -가의 뜻이다.바로가기
  • 편자주 415)
    하루를 12시로 나눈 시간 중 일곱째 시간으로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까지이다.바로가기
  • 편자주 416)
    안영(按營) : 안무영(按撫營)의 약자일 것이다.바로가기
  • 편자주 417)
    이두로 뎨김, 題音을 말한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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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 관원 및 감계사 일행이 무산부로 출발했음을 안무영에 보고 자료번호 : gd.k_0001_0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