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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계사등록

종성(鍾城)과 온성(穩城)으로 분정전(分定錢)을 보냈음을 알림

  • 발송일
    1885년 9월 27일(음)(乙酉九月二十七日)
□ 30일 종성(鍾城)주 222
편자주 222)
함경북도 북동부에 있는 지역으로 동쪽은 경원군(慶源郡), 남쪽은 경흥(慶興)· 부령(富寧)·회령(會寧), 북쪽은 온성(穩城)과 접하고 서쪽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간도(間島) 지방과 마주하고 있다. 조선조 세종대 여진족을 몰아내고 개척한 육진(六鎭)의 하나로, 1435년(세종 17) 종성군(鍾城郡)을 설치하고 1441년(세종 23) 종성도호부(鍾城都護府)로 승격되었고 판관(判官)과 토관(土官)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종성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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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온성(穩城)주 223
편자주 223)
원문(原文)에 ‘鍾移’로 되어 있으나 뒤에 다시 나오는 공문(公文)을 참고하면 ‘鍾穩’의 오자(誤字)일 것이고 ‘鍾穩’은 종성(鍾城)과 온성(穩城)의 略字일 것이다. 온성(穩城)은 함경북도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남쪽으로 종성과 경원(慶源)과 접하고 서·북·동쪽으로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길림성(吉林省)과 마주하고 있다. 조선조 세종대 여진족을 몰아내고 개척한 육진의 하나로, 1440년(세종 22) 온성군(穩城郡)이었다가 이듬해에 온성도호부(穩城都護府)로 승격되었고 1895년(고종 32)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온성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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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공문(公文)이 도달함(도부(到付)주 224
편자주 224)
공문(公文)이 도달함. 도달한 공문을 수령함 또는 수령의 보고 내용에 대한 관찰사의 회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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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고(相考)하는 일
 안무영(按撫營)주 225
편자주 225)
1883년(고종 20) 함경도 종성(鍾城)에 설치한 안무사(按撫使)의 영(營)으로 종성 이북 지방의 행정과 군사 등에 관한 일을 관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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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감(甘)주 226
편자주 226)
감결(甘結)를 말할 것이다. 감결은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에 내리는 관문서(官文書)로 명령이나 지시의 내용을 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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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따라 폐부(敝府) 분정전(分定錢)주 227
편자주 227)
몫을 나누어 정한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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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온(爲去乎)주 228
편자주 228)
이두로 음(音)은 거등이라고 한다. 뜻은 하므로, 하기로, 하기에, 하오니, 하고서, 하고는(『儒胥必知』, 「吏頭彙編」;전경목 외 옮김, 『儒胥必知』, 사계절, 2006,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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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후에 회신할 것[회이(回移)주 229
편자주 229)
移文(각 관아와 관아 사이에 관계되는 일을 조회하기 위하여 공문을 보내는 일이나 그 문건)을 각 관아에 돌리는 일이나 그 이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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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서(光緖)주 230
편자주 230)
중국 청조(淸朝)의 제 11대 덕종(德宗)이 썼던 연호(年號)로서 1875~1908년까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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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1885, 高宗 22) 9월 27일

  • 편자주 222)
    함경북도 북동부에 있는 지역으로 동쪽은 경원군(慶源郡), 남쪽은 경흥(慶興)· 부령(富寧)·회령(會寧), 북쪽은 온성(穩城)과 접하고 서쪽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간도(間島) 지방과 마주하고 있다. 조선조 세종대 여진족을 몰아내고 개척한 육진(六鎭)의 하나로, 1435년(세종 17) 종성군(鍾城郡)을 설치하고 1441년(세종 23) 종성도호부(鍾城都護府)로 승격되었고 판관(判官)과 토관(土官)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종성군이 되었다.바로가기
  • 편자주 223)
    원문(原文)에 ‘鍾移’로 되어 있으나 뒤에 다시 나오는 공문(公文)을 참고하면 ‘鍾穩’의 오자(誤字)일 것이고 ‘鍾穩’은 종성(鍾城)과 온성(穩城)의 略字일 것이다. 온성(穩城)은 함경북도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남쪽으로 종성과 경원(慶源)과 접하고 서·북·동쪽으로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길림성(吉林省)과 마주하고 있다. 조선조 세종대 여진족을 몰아내고 개척한 육진의 하나로, 1440년(세종 22) 온성군(穩城郡)이었다가 이듬해에 온성도호부(穩城都護府)로 승격되었고 1895년(고종 32)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온성군이 되었다.바로가기
  • 편자주 224)
    공문(公文)이 도달함. 도달한 공문을 수령함 또는 수령의 보고 내용에 대한 관찰사의 회답.바로가기
  • 편자주 225)
    1883년(고종 20) 함경도 종성(鍾城)에 설치한 안무사(按撫使)의 영(營)으로 종성 이북 지방의 행정과 군사 등에 관한 일을 관할했다.바로가기
  • 편자주 226)
    감결(甘結)를 말할 것이다. 감결은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에 내리는 관문서(官文書)로 명령이나 지시의 내용을 주로 한다.바로가기
  • 편자주 227)
    몫을 나누어 정한 돈.바로가기
  • 편자주 228)
    이두로 음(音)은 거등이라고 한다. 뜻은 하므로, 하기로, 하기에, 하오니, 하고서, 하고는(『儒胥必知』, 「吏頭彙編」;전경목 외 옮김, 『儒胥必知』, 사계절, 2006, 312쪽).바로가기
  • 편자주 229)
    移文(각 관아와 관아 사이에 관계되는 일을 조회하기 위하여 공문을 보내는 일이나 그 문건)을 각 관아에 돌리는 일이나 그 이문을 말한다.바로가기
  • 편자주 230)
    중국 청조(淸朝)의 제 11대 덕종(德宗)이 썼던 연호(年號)로서 1875~1908년까지 썼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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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성(鍾城)과 온성(穩城)으로 분정전(分定錢)을 보냈음을 알림 자료번호 : gd.k_0001_0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