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감계사등록

안무사의 거처를 중군소(中軍所)로 정했음을 종사관에게 보고

  • 수신자
    從事官
  • 발송일
    1885년 9월 19일(음)(乙酉九月十九日)
□ 첩보하는 일
 안무사께서 본부에 행차하실 때 거처는 중군소(中軍所)주 205
편자주 205)
중군의 거처하는 장소, 건물을 말한다. 조선시대 각 군영(軍營)의 대장 또는 사(使)에 버금가는 장관(將官)이었으며 주로 종 2품 무관직이다. 각 영에서 대장 또는 사를 보좌하면서 실질적인 모든 실무를 총괄하였다. 조선후기 5군영의 중군은 번갈아가며 병조 능마아청(能麽兒廳)의 당상관을 겸하였다. 용호영(龍虎營)의 중군은 금군별장과 함께 초관(哨官)·교련관(敎鍊官)을 시험을 거쳐 뽑았다. 훈련도감의 중군은 마군(馬軍)과 보군(步軍)의 병적(兵籍)인 군안(軍案)을 관리하고 각 초(哨)의 색복마(色卜馬)를 주관하여 봄과 가을로 감독하였으며, 매달의 훈련과 고시를 검사하였다. 진법을 연습할 때에 중군기(中軍旗)와 북은 좌우의 각 별장을 거느리고 중앙에 위치하였으며 또한 국왕을 호종(扈從)할 때, 중군은 대장과 함께 갑주(甲冑)를 착용하였다. 총융청(摠戎廳)의 중군은 북한산성(北漢山城)의 관성장(管城將)을 겸하였으며, 삼도통어영(三道統禦營)과 삼도통제영(三道統制營)의 중군은 수군(水軍)을 조련할 때는 여러 배를 거느리고 훈련하였다.
닫기
로 하고 깨끗이 청소하며 대기하는 연유를 첩보하는 일입니다.
 을유(1885년, 고종 22) 9월 19일 종사관(從事官)에게 보고함.

  • 편자주 205)
    중군의 거처하는 장소, 건물을 말한다. 조선시대 각 군영(軍營)의 대장 또는 사(使)에 버금가는 장관(將官)이었으며 주로 종 2품 무관직이다. 각 영에서 대장 또는 사를 보좌하면서 실질적인 모든 실무를 총괄하였다. 조선후기 5군영의 중군은 번갈아가며 병조 능마아청(能麽兒廳)의 당상관을 겸하였다. 용호영(龍虎營)의 중군은 금군별장과 함께 초관(哨官)·교련관(敎鍊官)을 시험을 거쳐 뽑았다. 훈련도감의 중군은 마군(馬軍)과 보군(步軍)의 병적(兵籍)인 군안(軍案)을 관리하고 각 초(哨)의 색복마(色卜馬)를 주관하여 봄과 가을로 감독하였으며, 매달의 훈련과 고시를 검사하였다. 진법을 연습할 때에 중군기(中軍旗)와 북은 좌우의 각 별장을 거느리고 중앙에 위치하였으며 또한 국왕을 호종(扈從)할 때, 중군은 대장과 함께 갑주(甲冑)를 착용하였다. 총융청(摠戎廳)의 중군은 북한산성(北漢山城)의 관성장(管城將)을 겸하였으며, 삼도통어영(三道統禦營)과 삼도통제영(三道統制營)의 중군은 수군(水軍)을 조련할 때는 여러 배를 거느리고 훈련하였다.바로가기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안무사의 거처를 중군소(中軍所)로 정했음을 종사관에게 보고 자료번호 : gd.k_0001_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