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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일대 농막을 방화하고 주민들을 강제로 축출한 대국인들에게 연유를 물어 안무영에 보고

 
  • 수신자按撫營
  • 발송일1885년 4월 14일(음)
□ 치보(馳報)하는 일
 고령(高嶺) 첨사(僉使)의 급한 통지 및 공북(拱北)·인계사(仁溪社) 사임 등의 보고에 따르면, 대국인에게 사정을 물으러 병교(兵校), 집사(執事), 통사(通事) 등을 저쪽으로 보낸 연유를 이미 보고했거니와, 병교(兵校) 이종찬(李宗燦), 집사(執事) 윤방모(尹邦模), 통사(通事) 박종신(朴宗伸) 등의 보고를 들어보니 말을 탄 대국인 120명은 모두 남강(南岡)의 둔병(屯兵) [주165]
편자주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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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전병(屯田兵)의 준말이다. 둔병은 평시에는 토지를 경작하여 식량을 자급하다가 전시(戰時)에는 전투원으로 동원되던 군사였다. 조선시대 둔전은 국경 지역만이 아니라 전국의 산성과 군영에 설치하여 외적의 침입을 방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수세(收稅)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과 혼춘(琿瑃) [주166]
편자주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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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가 지방행정 조직으로 두었던 청(廳)의 소재지의 하나로 오늘날 길림성(吉林省) 혼춘시(琿春市)를 말한다.

의 군병(軍兵)이었습니다. 무산, 회령, 종성, 온성 등의 네 개 읍민들이 어렵지 않게 대국 땅 경계로 함부로 넘어가서 농사를 지으면서 집을 지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을 몰아내고 농사를 금지한다는 부도통(副都統) 대인(大人)의 엄한 명령을 받들어 무산으로부터 강을 넘어 여기에 이르렀으며, 공문은 이미 부도통아문(副都統衙門)에서 글을 지어 안무영(按撫營)에 조회(照會)했으므로, 지금은 갖고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에 저쪽을 경유하여 종성 경계로 갔다고 하므로, 이 연유를 급히 보고하는 일입니다.
 을유(1885년, 고종 22) 4월 14일 유시(酉時) 안무영(按撫營)에 보고함.

 
주 165
둔전병(屯田兵)의 준말이다. 둔병은 평시에는 토지를 경작하여 식량을 자급하다가 전시(戰時)에는 전투원으로 동원되던 군사였다. 조선시대 둔전은 국경 지역만이 아니라 전국의 산성과 군영에 설치하여 외적의 침입을 방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수세(收稅)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주 166
청나라가 지방행정 조직으로 두었던 청(廳)의 소재지의 하나로 오늘날 길림성(吉林省) 혼춘시(琿春市)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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