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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전해 준 우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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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기술을 전하다

 
 

◆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

 

임진왜란은 흔히 도자기 전쟁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도자기 제작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일본이 조선에서 도자기를 가져가거나 도자기 기술자인 도공들을 끌고 갔기 때문입니다. 당시 백자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은 명나라와 조선만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백성들은 대부분 나무로 만든 그릇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지배층만 도자기를 사용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지배층들 사이에 차를 마시는 문화가 발달하였는데, 찻잔은 중국이나 조선에서 비싼 값에 들여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도자기 기술자들이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일본은 그릇다운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임진왜란을 왜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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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제작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일본이 조선에서 도자기를 가져가거나, 도자기 기술자인 도공들을 끌고 갔기 때문입니다.

 

◆ 도조로 모셔진 이삼평

 

당시 끌려간 도공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이삼평입니다. 이삼평은 아리타 지방 지도 으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도자기의 재료인 백토를 발견하고, 가마를 짓고 자기를 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만든 백자는 질 좋고 아름다워 일본 영주와 백성들은 무척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영주들은 이삼평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이삼평 자손들이 대대로 관리들이 받는 월급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삼평이 죽은 후 ‘도산 신사’에 그의 위패를 모셔놓고, ‘도조 이삼평비’를 세워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를 도자기 시조인 ‘도조’로 받들고 있답니다. 이후 이삼평 가문의 후손들은 일본에서 조선 도자기의 맥을 이었습니다.

도조 이삼평 비(ⓒ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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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조 이삼평 비(ⓒ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삼평이 만든 아리타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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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삼평이 만든 아리타 도자기


 

 ○ 이삼평은 언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나요? 또 이삼평은 일본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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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에 끌려갔습니다. 일본 도자기의 시조로 모셔지고 있습니다.

 

◆ 유럽에서 큰 인기를 누린 이마리야키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린 아리타 도자기는 이후 유럽으로 수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유럽은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로 중국에서 생산된 도자기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자기를 만들게 된 일본이 중국의 혼란기를 틈타 도자기를 수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리타 지방에서 제작된 도자기는 이후 일본의 규슈 지역의 '이마리 항구'에서 수출되었습니다. 이후 ‘이마리야키’로 불리며 유럽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인도, 남아프리카 등지로 팔려나가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변변한 그릇을 만들 수 없었던 일본이 이렇듯 도자기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기술자인 장인들을 존중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조선에서는 차별받던 도공들이 일본에서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후 우리나라와 달리 도자기 전통이 이어져 오면서 도자기 강국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이마리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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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마리야키


 

 ○ 일본이 도자기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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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인 장인들을 존중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조선에서는 천대받던 도공들이 일본에서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후 우리나라와 달리 도자기 전통이 이어져 오면서 도자기 강국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 조선 도공의 후예, 심수관 가문

 

심당길은 남원 지역에 살고 있는 도공이었습니다. 그는 임진왜란 중에 80여 명의 조선 사람들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왔습니다.
이후 심당길은 도자기의 원료인 백토를 찾아내어 도자기를 굽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이 구어낸 도자기에 사쓰마 지역의 이름을 붙여 ‘사쓰마 도자기’라고 불렸습니다. 당시 끌려온 사람들은 한복을 입었고 한국말을 하였으며, 결혼도 한국인끼리만 하며 우리의 정신을 지키려 하였습니다.
외국에 나가 오랜 시간이 흐르면 그 나라의 성을 쓰게 마련인데, 심당길 가문은 ‘심’씨 성을 썼습니다. 12대 심수관부터 높은 수준에 다다른 장인의 이름을 세습하는 일본의 전통에 따라 후계자들은 심수관이란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현재 15대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5대 심수관은 ‘일본 속 조선 도공의 후예로 한국과 일본 양국 문화 교류의 다리가 되고 싶다.’고 했다고 합니다.

남원 심수관 도예전시관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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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 심수관 도예전시관 도자기

남원 심수관 도예전시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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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 심수관 도예전시관 전경


 

 ○ ‘심수관’이란 이름을 대를 이어 쓰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또 심수관 가문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나요?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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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수준에 다다른 장인의 이름을 세습하는 일본의 전통에 따라 후계자들은 심수관이란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일본 속 조선 도공의 후예로 한국과 일본 양국 문화 교류의 다리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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