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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동아시아 영토분쟁

1. 동아시아 영토분쟁

동아시아는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 중국의 개혁 개방과 경제성장, 일본의 경제발전과 잃어버린 10년 등의 변화를 겪으면서 한국과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세력관계가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중일3국의 민족주의는 점차 고양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국가간의 영토와 과거사 문제는 한중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데 실패하면 동아시아의 긴장이 고조되고 갈등이 심화될 것이다.
유럽과는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60년이 지난지금에도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잔혹한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여부,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 그리고 일본식민통치로 인해 고통 받았던 국가들에 대한 충분하고 진심어린 사과의 부재는 일본과 한국, 중국 등 주변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은 19세기 이후 서구 열강에 의한 침략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쳤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주의가 무조건 항복을 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었다. 그 결과 한국은 다시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을 할 수 있었다. 한편 중국에서는 1946년에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시작되어 1949년 국민당정부가 타이완으로 철수하였고, 1949년 10월 1일 중국대륙에 중화인민공화국정부가 수립되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평화헌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각국이 독립을 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의 영토 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과거에는 육지의 영토 확장을 위해 전쟁이 발발하였다면, 20세기 후반 이후의 영토 분쟁은 주로 바다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중국의 경우는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경을 확정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청 왕조의 영토는 19세기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으면서 축소되었으나, 여전히 확정되지 않은 국경문제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국과 갈등을 겪기도 했고 평화적인 해결을 하기도 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시작된 영토 분쟁은 최근까지 협의가 이루어져 대부분의 국가와 영토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 일본 사이의 바다를 둘러싼 해양영토분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동아시아 지역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해양영토분쟁이 심해진 것은 1970년대 이후 바다를 둘러싼 해양자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동아시아지역에서 일본제국주의의팽창과 침략에 따른 역사와 영토문제가 함께 결합되어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의 해양영토분쟁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국과일본 사이의 독도 분쟁, 중일 간의 센카쿠[尖閣] :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 러일 간의 북방 4도서 분쟁 및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관련된 난사군도(南沙群島 : Spratly Islands)와 시사군도(西沙群島 : Paracel)분쟁 등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51년 샌프란시스코조약은 동아시아의 수많은 작은 섬들의 영유권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이러한 섬을 둘러싼 지역분쟁은 20세기 후반 자원 확보와 민족주의 감정의 확산으로 인해 심각해졌다.1982년 유엔 국제해양법상에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이 확정된 이후 세계어업의 90% 이상이 각 국가들의 관할권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세계적 자원 고갈에 따라 각국은 대륙붕에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자원 개발에 노력하게 되었다. 각국은 배타적 경제 수역 부근의 작은 무인도에 대해 영유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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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영토분쟁 자료번호 : edeah.d_0006_005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