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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국가와 베트남의 국교수립

3. 한반도 국가와 베트남의 국교수립

일본 패전 직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은 중국에서 개별적으로 베트남민주공화국 인사들과 교류하고 있었다.주 974
각주 974)
한국의 독립운동가 조경한은 『백강회고록』(1979, 한국종교협의회)에서 일본 패전 직후 중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베트남민주공화국 인사들과 교류했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1945년 11월 김구 주석은 한반도로 환국하기 직전에 상해에 머물면서 호치민 주석이 초대하는 파티에 참석했다고 기록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베트남 대사를 역임한 임홍재는 『베트남 견문록』(2010, 김영사)에서 김구 주석의아들인 김신 장군이 어렸을 때 호치민의 충칭[重慶] 임시정부청사 방문을 목격했고김구와 호치민 사이에서 통역과 안내를 담당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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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반도에서 독립 정부가정식으로 수립되고 나서는 냉전체제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가운데 베트남과의 외교관계가 시작되었다. 북한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은 일찍이 1950년1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베트남민주공화국은 소련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북한과 국교를 맺었다. 또한 베트남민주공화국은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은 최초의 동남아시아 국가가 되었다. 베트남 전쟁 기간 중에 북한은 한국이 파병하는 것에 대해 일관되게 비난하는 한편 군수품과 공병부대 등을 보내어 베트남을 지원했다. 베트남이 통일한 후 1978년 12월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북한이 한때 중화인민공화국 편에 서서 베트남과의 외교관계를 대폭 축소시킨 일이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양국 관계는 냉전 시기는 물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우호협력의 기조를 유지해 오고 있다.
한편 한국은 냉전 체제 아래에서 남부 베트남의 보수 정권과 외교관계를 시작했다. 1955년 10월 베트남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자 한국정부는 곧바로 이를 승인하고, 그 이듬해 1956년 5월 사이공에 공사관을 설치했으며 초대 공사로 최덕신 장군을 임명했다. 마찬가지로 베트남공화국은 1956년6월에 서울에 공사관을 설치하고 뉘엔 퀴 안(Nyuyen Qui Anh) 공사를 파견했으며, 1957년에 양국은 공사급 외교관계를 각각 대사급 관계로 각각 승격시켰다. 1957년 9월 베트남공화국의 고 딘 디엠(Ngo Dinh Diem)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고 그에 대한 답방으로 1958년 11월 이승만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1960년대에 들어 한국의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요청을 적극 받아들여 군대를 파견하여 베트남전쟁에 깊이 관여했다. 1964년 9월 한국은 이동외과병원 요원과 태권도 교관단을 남부 베트남에 파견했고 이듬해 1월부터는 비전투요원 파병을 시작했다. 1965년 6월의 후방지원병 파견에 이어 그해 10월부터는 전투부대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요청을 받고 베트남에 파병한 국가는 한국 이외에도 호주·뉴질랜드·필리핀·태국 등이 있지만 미군을 제외하고는 한국 군인의 수가 가장 많았다. 1973년 3월 완전 철수 할 때까지 총 31만 명이 넘는 한국군이 베트남에 투입되었다. 군인과 함께 민간 기업인과 기술자들도 대거 베트남에 들어가 활동했다. 베트남 군대 파견과 기업 진출은 한일 청구권 자금의 도입과 함께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베트남 통일과 함께 1975년 4월 한국은 남부 베트남으로부터 대사관을 철수시켰다. 그 후 17년 동안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관계는 중단 되었다. 1983년부터 양국 사이에 시작된 직접적인 무역관계를 토대로 하여 1992년 4월 한국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이 무역대표부를 설치했고 이것이 양국의 국교정상화로 발전하게 되었다. 1992년 12월 양국은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상호 대사관을 설치했다. 1998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은 베트남을 방문하여 과거 베트남 참전에 대한 유감과 사죄를 표명하고, 한국의 현직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호치민 묘소를 참배하고 헌화했다.
오늘날 베트남은 적극적으로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을 성장 모델로 삼고 있다. 현재 양국의 외교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불리고 있으며 ASEAN+3와 같은 지역협력기구에서 매년 회합을 하는 것은 물론 양국의 정상을 비롯한 고위 정책 담당자들이 빈번하게 교류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양국 정부 사이에 유전개발과 이동통신 분야 등에서 활발한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 각주 974)
    한국의 독립운동가 조경한은 『백강회고록』(1979, 한국종교협의회)에서 일본 패전 직후 중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베트남민주공화국 인사들과 교류했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1945년 11월 김구 주석은 한반도로 환국하기 직전에 상해에 머물면서 호치민 주석이 초대하는 파티에 참석했다고 기록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베트남 대사를 역임한 임홍재는 『베트남 견문록』(2010, 김영사)에서 김구 주석의아들인 김신 장군이 어렸을 때 호치민의 충칭[重慶] 임시정부청사 방문을 목격했고김구와 호치민 사이에서 통역과 안내를 담당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기록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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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국가와 베트남의 국교수립 자료번호 : edeah.d_0006_0010_004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