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일 강화회의에서 제외된 중국

1949년 10월 중국공산당 정부가 수립된 것은 미국이 대일 강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신생 중국공산당 정부에 대해 영국은 이듬해 1월 한 발 빠르게 이를 승인했으나 미국은 타이완으로 옮겨간 국민당 정부를 계속하여 중국의 정통 정부로 인정했다. 이렇듯 미국과 영국이 대일 강화를 앞두고 중국의 정통성 문제를 둘러싸고 입장을 달리 하는 가운데, 미국 정부 내부에서도 국무성이 강화를 서두르는 반면 국방성은 이에 반대하는 등 의견 조율에 시간이 걸려 결과적으로 강화 추진을 위한 움직임이 둔해졌다.
그런데 1950년 6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그 해 11월 말 중국공산당 군대가 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과 중국의 전면적인 군사 대결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영국의 클레먼트 애틀리(Clement Richard Attlee) 수상이 12월 초 급거 미국을 방문하여 해리 트루먼(Harry Shippe Truman)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중국에 대한 유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애틀리는 사태 수습을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타이완을 중국 대륙에 반환하든지 UN에서 대표성을 인정하자고 하는 양보안을 가지고 중국공산당 정부와 교섭할 것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과의 교섭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중국에 대한양보는 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자세를 견지했다. 미영 양국이 중국에 대한 의견을 달리하는 가운데 UN에서 영연방 군대가 이탈하지 않을 것과 미국이 중국에 대해 전면적으로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선에서 양국은 타협점을 찾게 되었다.
중국공산당 군대와 전면 충돌을 피하는 대신 미국 국무성은 동아시아지역에서 반공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태평양협정 구상을 내놓았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하고 여기에 필리핀·호주·뉴질랜드를 추가하여 5개국에 의한 집단방위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미국의 구상에 대해 한국정부는 자국이 반공전선에서 제외된다고 하는 것 이외에 일본의 재무장을미국이 허용하는 것 등의 이유를 들어 이를 반대하는 한편, 미국과 타이완국민당 정부를 포함시키는 독자적인 반공전선 구상을 제시했다. 미국의 구상에 대해서는 영국도 자국이 제외되어 있다는 점과 이 구상이 타이·말레이시아·버마와 같은 아시아 대륙국가에 대한 공산주의 침략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미국의 집단방위 구상은결과적으로 1951년 9월에 체결된 ANZUS 군사동맹으로 귀결되었다.^{주 970}

각주 970)

ANZUS 군사동맹(Australia, New Zealand, United States Security Treaty)은 미국과 호주·뉴질랜드 사이에 체결된 조약으로 2차 대전 이후 영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호주와 뉴질랜드가 미국의 군사적 보호를 필요로 하여 성립된 것이다. 또한 1951년 당시 호주는 일본을 가상 적국으로 판단하고 미국과의 동맹을 추구하기도 했다.

1951년에 들어 미국정부는 존 덜레스(John Foster Dulles)를 특사로 하여 적극적으로 일본과 강화 문제를 협의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대표성에 관한 미국과 영국의 견해 차이는 대일 강화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대표권 문제에서동일하게 재현되었다. 영국은 대일 강화회의에 중화인민공화국 대표를 초청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국은 이에 반대하며 타이완의 중화민국을 두둔했다. 두 개의 중국을 허용하지 않는 영국의 방침에 대해 미국은 내부적 검토를 거듭한 후에 강화회의에 중국의 두 정부를 모두 초청하지 않기로 하고 어느 쪽과 개별적으로 강화조약을 체결할 것인지는 독립한 후의 일본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일본제국의 침략전쟁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중국이 초대받지 않은 가운데 국제사회에서 일본에게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