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의 특징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과의 사이에 점령상태를 종결하고 일본의 전후 독립을 규정하는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이어 이 조약은 이듬해 4월에 발효됨으로써 연합국에 의한 일본 점령이 사실상 끝났다. 대일 강화조약은 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과거 전쟁에 관한 전후처리 문제를 규정하고 새로운 국제관계 수립을 위한 가장 중요한 근거가되었다.^{주 969}

각주 969)

대일 강화조약문은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일본어로 작성되었다. 당시 UN 공용어인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러시아어·중국어 등 5개국 언어 가운데서 소련과 중국이 강화조약 체결에 참석하지 않게 되자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로 작성되었으며 여기에 강화 당사국의 언어인 일본어가 사용된 것이다.

1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2개월 가량의 기간을 두고 프랑스 베르사이유(Versailles)에서 강화회의가 열렸고 그 후 6개월 채 안 되어 연합국과 독일 사이에 강화조약이 체결되었다. 그것과 비교하면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는 2차 대전 종결 후 6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매우 뒤늦은 회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6년의 기간 동안 강화회의와 관련된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일본과의 강화를 둘러싸고 주로 동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질서와 관련하여 강대국 사이에 다양한 입장이 표출되었고, 일본 국내에서도 점령 종결 방식에서 전면적인 강화를 할 것인가 혹은 부분적인 강화를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 세력간에 커다란 의견 차이가 나타났다. 그 만큼 베르사이유 강화회의에 비하면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는 강대국간의 치열한 이해 다툼 가운데 국가간 조정을 거쳐서 마련된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국제사회나 일본정부가 나름대로 충분한 준비기간을 거쳐 신중하게 추진된 회의였다고도 할 수 있다.
일찍이 1947년 3월 맥아더가 기자회견에서 대일 강화회의의 필요성을 제기하여 이 문제가 국제사회에 크게 알려진 일이 있다. 그 해 7월 미국정부가대일 강화를 위한 예비회담을 제기하면서 이 문제가 급진전하는 듯이 보였다가 이듬해부터 여론에 오르지 않고 잠잠해졌다. 이렇듯 강화회의가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미국과 소련에 의한 냉전이 격화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냉전이 심화되기 이전에 강화가 이루어졌다면 일본제국의 영토 분할 문제나 전쟁배상 문제에서 일본에게 훨씬 더 가혹한 조치가 내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대일 강화회의는 전적으로 미국의 주도에 의해 추진되었다. 여기에 전쟁 전부터 동아시아 국제정치에 깊이 관여해 왔고 아시아 지역에 넓은 식민지를 보유해 온 영국도 대일 강화조약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국과 영국은 공동으로 소련의 개입을 억제하면서 자국에 유리한 강화를 모색했다. 이런 의미에서 강화회의에 제출된 조약안은 미국과 영국의 합작품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일본은 현실적인 방책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배제한 부분강화를 선택했다. 미군에게 기지를 제공하여 자국의 방위를 미국에 의존하면서 자국의 군비를 억제하고 그 대신 경제력 재건을 통해 국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냉전의 분위기를 타고 미국에 의존함으로써 일본은 비교적 관대한 조건의 강화를 맞게 되었다. 반면에 과거 일본제국에 의해 피해를 입은 주변 국가들은 대일 강화회의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어 일본에 대해 강력하게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