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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예술

8. 예술

메이지기의 예술, 예능의 세계는 초기의 구화주의의 영향에 의해서 서양풍이 크게 일어났지만 국수주의의 대두로 전통예술에 대한 부흥의 움직임이 일어나 서양풍 예술을 흡수, 소화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1) 연극
에도시대 이래의 전통을 가진 가부키는 메이지 초기에는 막말부터 활약하고 있던 가와다케 목쿠아미[河竹默阿彌]가 문명개화의 풍속을 수용하여 산절물이나 활역극을 써서 인기를 얻었다. 또 쓰보우치 쇼요는『동일엽(桐一葉)』등의 사극을 발표하여 가부키의 혁신을 꾀했다. 1889년에는 도쿄에 가부키좌 결성되고 1890년대에 들어오면 전통문화 부활의 풍조를 타고 이시가와 단주로[市川團十郞], 이시가와 사단지[市川左團次], 오노에 기쿠고로[尾上菊五郞] 등이 중심이 되어 가부키계는 크게 활성화되어 이른바 단(團), 기쿠(菊), 사(左)의 전성시대가 출현했다. 이 시기의 작가로서는 후쿠치 오치[福地櫻痴]가 유명하다.
이에 대해 자유민권운동을 선전하기 위해 스도 사다노리[角藤定憲], 가와카미 오토지[川上音二郞]로 등이 시작한 소시[莊士] 연극은 청일전쟁 뒤, 전쟁극을 공연해서 입지를 쌓은 후, 점차 가정을 다룬 비극을 공연하게 되었다. 이것이 신파극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또 러일전쟁 후에는 서양 근대극의 이식이 시작되었다. 선구자인 쓰보우치 쇼요가 1906년 시마무라 호게츠[島村胞月] 등과 함께 문예협회를 만들고 섹스피어나 입센의 작품을 공연했다. 또 1909년에는 오사나이 가오루[小山內薰], 이치가와 사단지가 중심이 되어 자유극장을 창설하고 신극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2) 음악
음악도 서양음악의 수입됨에 따라 큰 변화가 일어났다. 1879년 문부성에 음악조사부서가 설치되어 이자와 슈지[伊澤修二]를 중심으로 서양의 가요를 모방한 창가(唱歌)가 초등학교 교육에 도입되고 국민 사이에 친숙하게 되었다. 1887년엔 도쿄음악학교가 설립되어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작곡가로서는「황성(荒城)의 달」로 알려진 다키 렌타로가[瀧廉太郞] 나와 뛰어난 작품을 다수 발표하였다. 한편 영화와 축음기가 도입된 것도 1890년대의 일이었다.
3) 회화
일본화는 메이지 초기 구미숭상의 조류로 일시 쇠퇴했지만 미국인 페놀로사(Ernest Francisco Fenollosa)가 전통적인 일본 미술의 부흥을 주장하고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은 가리노 호가이[狩野芳崖], 하시모토 가호[橋本雅邦] 등과 함께 1887년 도쿄미술학교를 설립했다. 텐신은 결국 반대파와 대립하여 교장직을 사임하고 1898년 일본미술원을 설립했다. 그의 문하에서 요코야마 다이칸[橫山大觀], 히시다 슌소[菱田春草], 시모무라 간잔[下村觀山] 등이 배출되었다.
한편, 서양화에서는 워그만(Charles Wirgman)에게 사사받은 다카하시 유이치[高橋由一]가 사실적인 화풍으로 근대 서양화의 개척자가 되었다. 메이지초기에 일본 정부의 초청으로 내일한 이태리인 기욘네(Edoardo Chiossone)는 동판화기술을 지도하고 더불어 폰타네시(Antonio Fontanesi), 라구사(VincenzoRagusa) 등이 초빙되어 고부[工部] 미술학교에서 각각 서양화와 서양조각 기법을 가르쳤다. 그들에게 배운 아사이 츄[淺井忠], 고야마 쇼타로[小山正太郞]등은 1889년 메이지 미술회를 결성했다. 이어서 프랑스에서 귀국한 구로다세이키[黑田靑輝]는 1896년 하쿠바[白馬]회를 결성했는데 프랑스 인상파의 밝은 화풍에 근거한 신선한 기법을 외광파(外光派)라고 불렀다. 세이키는 도쿄미술학교에 신설된 서양화과의 교수가 되어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 오카다 사부로스케[岡田三郞助], 와다 에이사쿠[和田英作] 등 후진을 양성해냈다. 아사이 츄 문하의 미츠타니 쿠니시로 [滿谷國四郞] 등은 태평양화회를 만들어 하쿠바회에 대항하는 한편 아사이 츄는 무대를 교토로 옮겨 간사이[關西] 미술원을 시작하고 야스이 소타로[安井曹太郞], 우메하라 류사부로[梅原龍三郞] 등을 키워냈다. 이 밖에 하쿠바회로부터 나온 아오키 시게루[靑木繁]는특이한 로맨틱한 화풍으로 메이지 후기의 화단을 장식했다.
4) 조각, 공예, 건축
조각에서는 메이지 초기 외국인의 취향에 맞춘 상아 조각이 유행하면서 서양 조각기법도 전해졌으나 이윽고 목각이 부흥하여 다카무라 코운[高村光雲], 다케우치 큐이치[竹內久一] 등이 명작을 남기고 서양조소에서는 오기와라모리에[荻原守衛], 아사쿠라 후미오[朝倉文夫] 등이 뛰어난 작품을 만들었다.
공예에서는 도자기, 칠기, 칠보 등에 관련된 전통적 기술에 있어서도 서양적 기술이 가미되어 뛰어난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 건축에서는 영국인 콘데르(Josia Conder)의 지도를 받은 다쓰노 킨고[辰野金吾] 등이 나와 붉은벽돌로 된 서양식 건축에 힘을 쏟았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메이지 후기의 건축물로서는 일본은행본관, 아카사카 리궁[赤坂離宮 ; 현재의 영빈관]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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