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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학문 발달

5. 학문 발달

19세기 유럽에서는 다윈의 진화론 등의 영향으로 과학적 정신이 중시되었다. 그것은 인문, 사회과학 제분야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종종 종교상의 교의와 대립하거나 충돌했지만 점차 종교의 속박에서 벗어나 대학을 중심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진화론은 1870년대 후반, 미국의 동물학자이면서 제국대학의 교수로 초빙된 모스(Morse) 등에 의해 일본에도 전해졌다. 일본에서는 미국과 달리 기독교사상과 충돌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진화론이 일찍부터 확산되었다.
메이지 시대의 초기 정부는 왕성하게 외국인 교사를 초빙하여 그의 지도하에 여러 분야에서 과학적 연구를 진행했다. 그래서 1890년대 이후가 되면 점차 일본인의 학자에 의해서 독창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다.
물리학 분야에서 오오모리 후사기치[大森房吉]의 지진계 고안, 기무라 히사시[木村榮]의 위도변화공식의 Z항의 발견, 나가오카 한타로[長岡半太郞]의 원자모형이론의 발표 등이 있다. 의학에서는 고츠(Heinrich Hermann Robert Koch)에 이어서 세균학을 연구한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郞]가 파상풍균의 순수배양, 면역체의 발견 등 업적을 올리고 그의 제자 시가 기요시[志賀潔]가 적리균(赤痢菌)을 발견하고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는 독사의 연구, 매독스피로헤타의 순수배양에 성공하는 등 모두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약학에서는 하타사 하치로[秦佐八郞]의 살바산(salvarsan)의 발명, 다카야마 죠기치[高峰讓吉]의 아드레날인, 다카지아스타제의 복제, 스즈키 우메타로[鈴木梅太郞]의 비타민B1의 발견 등 중요한 업적이 나왔다. 식물학에서는 많은 신종을 발견하고 식물분류학에서 창조적인 업적을 남긴 마키노 도미타로[牧野富太郞]가 유명하다. 수학에서는 근대수학의 개척자 기쿠이케 다이로쿠[菊池大麓]가 있고 응용화학에서는 시모세 마사치카[下賴雅允]가 발명한 신화약이 러일전쟁에서 실용화되어 큰 위력을 발휘했다.
한편 공업기술의 분야에서는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에 의한 자동기계의 발명을 비롯한 일련의 기계의 개량이 면직업과 방적업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또 백열전등, 무선전신, 전화 등이 수입되어 실용화되고 메이지 말기에는 자동차가 수입되어 육상교통기관으로 쓰이게 되었다. 전기사업 특히 수력발전사업이 크게 발달했는데 그와 맞물려 공장의 전동기가 중요한 비중을 점하게 되었다. 과학기술교육도 첨차 보급되어 대학의 이공계학과 각종학회, 연구소 등이 설립되고 정비되었다.
이렇게 일본의 과학기술은 정부의 적극적인 진흥책에 의해서 현저하게 발전하고 세계적인 수준에 다가갔지만 관학과 군사연구에 편중되었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민간의 자주적인 연구가 냉대받아 국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외국에서 인정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인문과학 사회과학에서는 처음에 영미계의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주류였지만 메이지시대 이후에는 독일계의 국가주의적 학문이 점차 우세해졌다. 철학에서는 독일철학의 영향을 받은 이오우에 데쓰지로[井上哲次郞], 오오니시 하지메[大西祝], 법학에서는 프랑스법의 우메겐 지로[梅謙次郞], 도미이 마사아키라[富井政章], 영국법의 호즈미 노부시게[穂積陳重] 경제학에서는 다쿠치 우키치[田口卯吉] 등이 업적을 내었다. 역사학 분야에 있어서도 서양류의 과학적인 연구방법이 들어와 에도시대 이래의 고증학적 전통과 연계되어 여러가지 업적이 나왔다. 메이지 초기에는 문명사관에 기초한 새로운 역사관이 수용되었고 다구치의『일본개화소사』와 같은 문명사관에 의한 일본사의 개설서가 나타났다. 메이지 중기가 되자 제국대학에 초빙되어 온 리스(Riess)의 지도하에 독일류의 실증주의 역사학이 제국대학을 중심으로활발하게 일어났다. 구메 구니타케[久米邦武], 시게노 야스츠구[重野安釋], 미카미 산지[三上參次], 동양사에서는 나카 미치요[那珂通世],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나이토 고난[內藤湖南], 서양사에서는 쓰보이 쿠메조[坪井九馬三]등이 배출되었다. 제국대학에 사료편찬소가 만들어지고『대일본사료』『대일본고문서』등의 편찬사업이 진행되었다. 일본문학에서는 하가 야이치[芳賀矢一], 후지오카 사쿠타로[藤岡作太郞] 등의 문학사연구가 시작되었다. 각종전문적인 학회도 만들어지고 학술연구의 잡지도 간행되었다. 예를 들어 역사학 분야에서 보면 1889년 제국대학 문과대학 사학과, 국사과의 교수, 학생을 중심으로 사학회가 창립되어『사학회잡지(史學會雜誌)』(후에『사학잡지』)가 창간되었다. 이것은 일본의 역사학 연구에서 가장 수준 높은 전문 학술지의 하나로서 오늘까지 존속하고 있다. 이처럼 근대적인 학계가 형성되어갔다. 대학을 중심으로 한 학문연구나 고등교육은 메이지 전기에는 서양인교사 학자에 의해 외국어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지만, 메이지 후기가 되면 유학하고 돌아온 일본인 교사와 학자에 의해서 일본어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대학에서 서양 학문에 대해서 대부분 서양언어가 아닌 자국의 언어로 이루어진 것은 아시아 지역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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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발달 자료번호 : edeah.d_0005_0050_003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