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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고용외국인

5. 고용외국인

메이지 정부는 선진국의 제도, 지식, 기술 등을 수용하여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구미제국으로부터 많은 기술자, 학자, 교사, 군인 등을 초빙했다. 그 수가 픽크에 달한 것은 1870년대 중반으로 정부가 고용한 외국인이 500명을 넘어섰다. 국가별로 보면 영국인이 과반수를 넘었고 이어서 프랑스인, 미국인, 독일인의 순이었다. 1880년대 이후 점차 일본인이 그들을 대체해 가면서1892년에는 130명으로 전성기의 4분의 1로 줄었다. 이때에는 독일인의 비율이 높았는데 이것은 법률 제도와 군사 제도의 분야에서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용된 외국인은 일본인보다 훨씬 많은 고액의 월급을 받았다. 예를 들어 1870년 철도건설을 담당한 초대 건축소장인 영국인 모레일(Edmund Morel)은 28세였지만 첫해의 월급이 멕시코은 700달러, 3년째부터 1000달러(당시 1달러는 약1엔)의 계약으로 일본정부의 최고관직인 태정대신의 월급 800엔보다 많았다. 최하급의 고용 외국인 직공도 월급 72달러로 일본인 직공의 10~15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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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외국인 자료번호 : edeah.d_0005_0050_0020_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