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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인이 받은 피해와 고통

3. 동아시아인이 받은 피해와 고통

일본의 아시아 태평양전쟁은 국가자본주의 및 국가체제의 위기를 배경으로 시작되었다. 국가체제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일본은 군사적 파쇼체제를 수립하고 침략전쟁을 재개한 것이다. 그리하여 일제는 1931년 만주 침략을 시작으로 1945년 8월 패전하기까지 15년에 걸친 침략전쟁을 감행 하였다. 이런 침략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일본은 국내뿐만 아니라 침략을 당한 동아시아인들을 철저하게 탄압·지배하는 동시에 인력 및 자원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수탈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런 수탈을 극대화 하기 위해 동아시아인들을 일상생활과 함께 의식세계까지도 통제하고자 하였다.주 847
각주 847)
김승태 (2009), 『중일전쟁이후 전시체제와 수탈』,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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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에서 대외 침략전쟁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일본 국내 뿐 아니라 점령지의 민중의 저항을 철저히 탄압하는 길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일본의 침략 행위 과정에서 피침략자에 대한 탄압과 잔학 및 학살 행위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전쟁의 일반 속성으로 돌리거나 우발적·부분적인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속적이며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이 동아시아인에게 준 상처와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성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1937년 12월부터 거의 2개월에 걸쳐 일어난 ‘남경대학살사건’ 이었다.주 848
각주 848)
아이리스 장 저 Ⱁ김은령 역 (1999), 『난징대학살』, 서울: 끌리오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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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이 일어난 지 반년 만에 중국 국민정부의 수도인 난징이 함락되었다. 난징을 점령하면 국민당정부가 항복할 줄로 일본은 판단했으나 예상외로 이들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이에 당황한 일본군이 선택한 대응이 집단적 학살이었다. 일본군은 전쟁 중 시내로 피난 온 사람과 도시 주변의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무참하게 살해하기 시작하였다. 학살의 방법은 기총에 의한 무차별 사격, 생매장,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죽이는 등 온갖 잔인한 방법이 다 동원되었다.
당시 일본국내에서는이 사실이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외국인 생존자들에 의해 세계에 보도되고 몇 가지 르포나 보고서에 의해 점차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후 동경재판에 따르면, 당시 비전투원 1만 2,000명, 패잔병 2만 명, 포로 3만 명이 시내에서 살해되었고, 근교에 피난 간 시민 5만 7,000명 등 총 12 만 9,000명이 살해되었다. 물론 이것은 최소한의 숫자이며 실제로는 30 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본은 타이완과 조선의 식민통치 초기부터 민족적 특성을 말살하려는 동화정책(同化政策)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경찰과 군사력에 의한 물리적 억압만으로 식민지를 안정적으로 지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일본은 식민지인들의 의식세계까지 일본인화(日本人化)시키려 하였다. 이를 통해 식민통치의 영구적 안정을 도모하여 식민지 수탈을 강화하고자 하였다.주 849
각주 849)
中塚明 (1981), 「일본제국주의와 식민지」 『일본근대화론』, 지식산업사, 299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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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강력한 동화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일본은 1930년대에 들어서 침략전쟁을 전개하고, 이를 더 한층 강화시킨 ‘황국신민화정책’ (皇國臣民化政策)을 실시하였다.주 850
각주 850)
吉野誠 (1983), 「일본제국주의의 한국지배」 『새로운 한국사입문』, 돌베개, 299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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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1937년 8월 중국과의 전면전쟁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민의 지지와 협력을 끌어내기 위한 국민정신 결집을 목표로 하는 ‘국민정신총동원 실시요강’ 을 발표하였다. 이어 9월에는 ‘국민정신총동원 중앙연맹’이 결성되었다.주 851
각주 851)
박경식 (1986), 376~377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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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은 1938년 5월부터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식민지 였던 조선과 타이완에서 전면 실시되었다.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은 전쟁협력에 국민을 동원하기 위한 관제운동으로, 천황을 현인신(現人神)으로, 신국(神國) 일본, 그리고 국가주의 및 보국, 일본정신 등이 강조되었다. 이 운동은 뒤에 금품헌납, 국채응모, 저축장려, 물자절약, 근로봉사 등의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을 제한하는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군인과 우익의 주도로 전개된 이 운동은 동아시아인들을 침략전쟁으로 내몰았다.
조선과 타이완 식민지에서는 애국일 설정과 신사참배 강요, 황국신민서사의 제창, 그리고 창씨개명 등을 통해 식민지인들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하려고 하였다. 교육에서는 내선일체(內鮮一體)차원에서 일본어만 배우고 일본어로만 말하게 했다.주 852
각주 852)
일제하 식민지 언어정책과 관련되어 손준식 외 (2008), 『식민주의와 언어』, 서울: 아름나무를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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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침략 확대로 본토와 동남아시아 각지, 태평양 상의 도서 지역에서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강제 징용과 강제 연행이 실시되었다.주 853
각주 853)
이상의 (2002), 「일제의 조선인 노동력 동원체제 연구」, 연세대 박사학위논문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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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태평양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되고 전세의 악화에 따라 부족한 인력과 전쟁물자의 조달을 위한 식민지 동원 수탈정책을 한층 더 강화하였다. 이런 전시 체제하에서 경제적 자원수탈과 함께 희생을 강요한 것이 인력수탈이었다. 그들은 전선의 확대에 따라 병력과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육군특별지원병령, 국민징용령, 학도 전시동원체제 확립 요강, 해군특별지원병령, 유군 특별지원병 임시채용규칙 등을 공포하였다. 급기야는 ‘여자정신근무령’ 을 공포하여 여성인력까지 전쟁에 동원하였다.주 854
각주 854)
안자코 유카 (2003), 「총동원체제하 조선인 노동력 ‘강제동원 ’정책의 전개」 『한국사학보』제14 호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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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된 여성들은 전시물자 제조 공장의 노동자나 전선의 군위안부로 투입됨으로써 엄청난 비인도적 희생과 고통을 강요당했다.
일본은 침략전쟁을 위해 식민지와 점령지에서 모든 산업을 군수품 생산에 집중하도록하고 식량은 물론 생활필수품까지 배급제를 실시하였다. 미곡공출을 강요하거나 각종 지하자원과 광물자원도 수탈의 대상이 되어 전쟁물자 생산에 투입되었으며, 모든 금속류를 공출하도록 하여 생활금속, 집기 등을 강제 공출하였다. 심지어는 사찰의 범종이나 교회의 종·철탑·울타리까지 수탈하여 전쟁물자로 동원하였다.주 855
각주 855)
김인호 (2010), 「태평양전쟁시기 조선에서 금속회수운동의 전개와 실적」 『한국민족 운동사연구』62, 한국민족운동사학회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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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847)
    김승태 (2009), 『중일전쟁이후 전시체제와 수탈』,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참조 . 바로가기
  • 각주 848)
    아이리스 장 저 Ⱁ김은령 역 (1999), 『난징대학살』, 서울: 끌리오 참조 . 바로가기
  • 각주 849)
    中塚明 (1981), 「일본제국주의와 식민지」 『일본근대화론』, 지식산업사, 299 쪽. 바로가기
  • 각주 850)
    吉野誠 (1983), 「일본제국주의의 한국지배」 『새로운 한국사입문』, 돌베개, 299 쪽. 바로가기
  • 각주 851)
    박경식 (1986), 376~377 쪽. 바로가기
  • 각주 852)
    일제하 식민지 언어정책과 관련되어 손준식 외 (2008), 『식민주의와 언어』, 서울: 아름나무를 참조 . 바로가기
  • 각주 853)
    이상의 (2002), 「일제의 조선인 노동력 동원체제 연구」, 연세대 박사학위논문 참조 . 바로가기
  • 각주 854)
    안자코 유카 (2003), 「총동원체제하 조선인 노동력 ‘강제동원 ’정책의 전개」 『한국사학보』제14 호 참조 . 바로가기
  • 각주 855)
    김인호 (2010), 「태평양전쟁시기 조선에서 금속회수운동의 전개와 실적」 『한국민족 운동사연구』62, 한국민족운동사학회 참조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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