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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조선후기 서민문화

3. 조선후기 서민문화

조선후기에는 서민문화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었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서민들은 문학과 연결되었으며 특히 소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소설의 작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며, 소설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내용이 개작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서민들이 소설을 향유하는 방법에는 낭독, 세책(貰冊), 방각본(坊刻本) 출판이 있었다.
낭독은 소설을 읽어주는 전문 직업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덕무의 기록을 보면, 서울 종로의 담배 가게에서 소설을 듣던 남자가 영웅이 가장 실의(失意)한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낭독자를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소설의 낭독은 하층의 부자, 상인, 가게나 장터로 모여드는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고, 낭독자의 신분은 매우 미천했다. 조선후기에는 민간에 전해지던 이야기를 많이 기억하고 그것을 개성 있게 구성하는 강담사(講錟師)나 이야기나 소설책을 적당한 몸짓과 표정을 섞어가며 읽어주는 강독사(講讀師)가 등장했다.
세책은 돈을 주고 소설책을 빌어다 읽는 방식으로 여성 독자에게 인기가 있었다. 18세기 이후에는 집안에서 만들어 사용하던 물건들이 대량으로 상품화되어 시장에서 구입이 가능했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고, 시간을 메우는 데는 소설이 유용했다. 소설은 남성 독자를 의식하기도 하지만,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키고 여성의 관심거리를 세세하게 파헤치는 것을 특징으로 했다.
세책이 서울에서 유행했다면 지방에서는 방각본 출판이 발달했다. 방각본은 민간에서 소설을 판각해 인쇄한 책으로 서울, 안성, 전주와 같은 상업 중심지에서 성행했다. 방각본 소설은 새로운 작품을 개발하기보다 인기가 있는 작품을 줄여서 개작하는 편이 유리했고, 몇몇 중심지에서만 애독되던 소설들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방각본으로 출판된 소설에는 『조웅전』 『소대성전』 『장풍운전』 『춘향전』 『심청전』 등이 있다.
서민들은 조선후기에 등장한 판소리도 향유했다. 판소리는 소리꾼이 서서 노래를 하고, 고수(鼓手)는 앉아서 반주를 하면서 추임새를 넣으므로 어디서나 놀이판을 벌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판소리는 전라도 지역에서 생겨나 중부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소리꾼이 장터에서 청중을 모으거나 부잣집으로 초청을 받아가기도 했다. 판소리 소리꾼이 인기를 얻으면 가마를 타고 잘 차린 음식상을 받았으며, 기생들이 사랑을 이루고자 애쓰는 인기인이 되었다. 판소리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중인 이하의 신분층으로 상업 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었다. 판소리의 『춘향가』 『흥부가』 『심청가』는 물론이고, 『수궁가』 『적벽가』에서까지 인습적 규범에 대한 반발이 형상화 된 것은, 양반 사회에 대한 반발심을 가진 수용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음악적 요구에 부응하여 가객(歌客)과 악사(樂士)가 등장했다. 가객으로는 김현택, 김수장, 이세춘, 손실솔, 장우벽이, 악사로는 송경운, 김성기, 유우춘이 유명했다. 이들은 거문고, 가야금, 양금, 해금과 같은 현악기를 위주로 하면서 장구, 젓대, 단소 등의 반주를 곁들이는 일종의 실내악단인 줄풍류를 성립시켰다.
그림 19 판소리 공연
미술에서는 농촌의 중산층이나 도시의 중인층 기호에 맞는 그림이 그려졌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로 대표되는 속화(俗畵)가 그것인데, 중산층이나 중인층이 이들을 후원했다. 이 시기에는 민화(民畵)도 유행했는데, 유랑화가나 방랑화가들이 예술적 감상보다는 생활공간을 장식하는 그림을 그렸다. 민화에는 화조화, 산수화, 어류화, 풍속화, 문자화 등이 있으며, 윤곽선이 두툼하고 힘차며 어질고 선량한 분위기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조동일(1984) ; 정석종(1994)).
조선후기에는 국가행사로서의 도교 의식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양생법(養生法)이나 신선 사상처럼 도교에 연원을 둔 지식이 유행했고, 민간에서는 도교가 신앙의 형태로 남아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관제(關帝) 신앙이 유입되어 관왕묘(關王廟)가 설립되었으며, 관우(關羽), 장아(張亞), 여순양(呂純陽)으로 이루어진 세 성인이 하늘로 올라가 인간의 선악을 감시하고 화복을 내리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그림 20 김홍도의 씨름도
민간에서는 『정감록(鄭鑑錄)』이란 도참서가 유행했다. 『정감록』은 참위설, 풍수지리설, 도교사상이 혼합되어 나타났으며, 왕조의 운이 다하여 계룡산으로 천도를 하며, 운수를 다하는 날 ‘정도령’이란 구세주가 나타나 세상을 구원한다는 내용이다. 조선후기에는 『정감록』에 근거한 참위설이 각종 정변과 연결되어 나타났고, 민란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정승모(1998), 160~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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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서민문화 자료번호 : edeah.d_0004_0040_004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