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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일본의 정세

3. 일본의 정세

15세기 중반 오닌의 난[應人の亂, 1467~1477] 이후로 일본은 100여 년에 걸친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무로마치막부[室町幕府]의 전통적인 슈고다이묘[守護大名]가 약화되고 대신 센고쿠다이묘[戰國大名]가 등장하였다. 이들은 치열한 전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 엄격한 체제 정비는 물론 대외교역에 주력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당시 동아시아해역에 진출했던 포르투갈, 스페인을 상대로 무역을 하였다. 이들이 매개했던 ‘남방무역(南方貿易)’은 일본의 다이묘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제공했다. 이에 유력한 센고쿠 다이묘들은 사카이[堺]와 같은 무역항을 개설하고, 대외무역을 장려하였다.
15세기 중반 서양세력과의 무역과 문물의 전래는 일본에 큰 영향을 끼쳤다. 1543년 포르투갈 상인이 일본에 철포(撤庖 ; 일명 鳥銃)를 전하였다. 이 새로운 무기는 빠른 속도로 일본 국내에 보급되었고 자체 생산도 이루어졌다. 특히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이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는데, 그는 조총수 3만 명을 양성하여 통일전쟁에 활용하였다. 1568년 교토[京都]에 입성한 노부나가는 1573년 무로마치막부의 15대 장군 요시아키[義昭]를 추방하고 본격적으로 통일에 진력하였다. 이처럼 조총의 전래는 전국시대를 통일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오다 노부나가가 1582년 부하에게 피살된 후 뒤이은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1590년 마침내 전국을 통일하였다.
16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는 명이 쇠퇴하고 서양세력이 진출하면서 중국적 세계질서의 변화의 기운이 싹트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히데요시는 일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려는 망상을 품었다. 국내를 통일한 히데요시는 체제를 공고히 하고 대외전쟁을 위한 준비를 실행하였다. 1582년부터 16년간에 걸쳐 토지와 농민을 일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토지조사[檢地]를 전국적으로 실시하였다. 또 1587년에는 농민의 저항과 반란을 예방하기 위해 칼·창·활·총 등 무기를 압수한 도수령(刀狩令)을 발표하였다. 1591년에는 호구조사를 단행하였는데, 군대와 인부의 징발 등 전쟁동원계획에 필요한 것이었다.
1587년 큐슈[九州] 정벌 중에 대마도주에게 명 정벌계획을 이야기하면서 ‘정명가도(征明假道)’라는 입장을 조선에 전하라고 명하였다. 조선의 입장을 잘 아는 대마도주는 일본에 새 정권이 들어섰음을 알리고, 히데요시의 명령을 ‘가도입명(假道入明)’으로 변조하면서 통신사의 파견을 요청하였다. 조정에서는 거절하였으나 계속 요청을 해오자, 격론 끝에 1590년 9월 통신사를 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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