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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명의 정세

2. 명의 정세

명은 건국 초기부터 북의 몽골과 동남해안의 왜구, 이른바 ‘북로남왜(北虜南倭)’에 의해 시달렸는데 16세기 중반에 그 위협이 정점에 달하였다. 징기스칸의 직계후손이라고 자칭하는 알탄의 지휘 아래 몽골은 명을 위협하였는데, 1550년 알탄군은 북경까지 진공해 8일간 자금성(紫禁城)을 포위하기도 하였다. 이른바 경술의 변[庚戌之變]이다. 임진전쟁이 일어나기 20년 전인 1571년 명은 몽고와 이른바 ‘융경화의(隆慶和議)’를 체결함으로써 몽고의 알탄을 순의왕(順義王)에 봉하고 조공무역을 허락하였다. 몽고와의 화의를 통해 북변(北辺)의 평화를 보장받고자 하였다. 한편 이러한 정세 속에서 만주의 여진은 명의 통제를 벗어나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16세기 후반 장거정(張居正)의 개혁정치(1572~1582)로 일시 중흥의 기운이 일어났지만, 연이은 정치 혼란, 농민반란, 외적 침입 등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렸다. 또 이 시기에는 명에서도 조선의 당쟁과 같이 동림당(東林黨)과 반동림당(反東林黨) 사이에 정쟁(政爭)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지배층이 분열되었다. 이에 더해 연이어 일어난 대외전쟁으로 군비지출과 재정적자도 심각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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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정세 자료번호 : edeah.d_0004_0010_003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