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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역사

맺음말

Ⅴ. 맺음말

이상에서 10~16세기 중국·한국·일본에서 나타난 성리학의 성립·수용·발전의 과정을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동아시아 3국에서는 지배층의 교체와 정치·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사회사상을 필요로 하였으며, 성리학은 그와 같은 역사적 필요성에 부응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주류 사상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중국에서는 한유·이고·유종원 등이 처음으로 기존의 훈고주소학과는 다른 새로운 유학의 단초를 열었고, 북송 초반 호원·손복·석개 등 3선생이 중심이 된 ‘경력정학’을 거치면서 성리학이 정립될 기반이 확립되었다. 이어 북송대에 주돈이·정재·이정(二程)을 거치면서 성리학의 주요 이론들이 정립되었고, 남송대에 이르러 주희가 북송의 성리학을 종합·집대성함으로써 주자성리학의 완전한 체계가 확립되었다. 이후 성리학은 원대(元代)에 이르러 성리학에 입각한 경전 주석서들이 과거시험의 표준 교재로 채택되면서 관학(官學)으로서 자리매김하였고, 명대 초반 『사서대전』 『오경대전』 『성리대전』의 간행을 통해 국가 공인의 교과서가 확립되면서 체재교학으로서 그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
한국에서의 성리학은 고려중기 북송과의 학술 교류를 통해 북송유학이 수입되면서 첫 발을 내딛었지만 무인집권기(武人執權期)를 거치면서 그 흐름이 끊어졌다가, 14세기 원나라를 통해 본격적으로 성리학을 수용하였다. 그리고 성리학을 이념적 기반으로 수용한 사대부들이 조선을 건국함으로써 성리학은 조선 사회의 주류사상이 되었다. 15세기 조선의 성리학은 건국 초기 정도전·권근 등을 통해 이론적 발전을 보았고, 이러 세종~성종대에는 집현전(集賢殿)을 비롯한 관학(官學)이 중심이 되어 새 나라의 문물·제도 정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한편, 15세기 후반 이후 기성 관학자들이 저마 보수화되자 새로 중앙 정계에 진출한 신진 학자들은 기성 관학자들의 도덕적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성리학적 규범의 철저한 실천을 강조하였다. 16세기 중반 이후 많은 성리학자들이 등장하면서 성리철학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었고, 주요 학자들을 중심으로 사승(師承) 관계를 통한 학파의 형성이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12세기 경 송나라와의 교역이 확대되면서 선종 승려들을 통해 성리학이 전래되었다. 1500년대까지는 불교에 예속된 형태로 머물러 있다가 무로마치 말기부터 점차 불교색에서 벗어나 독립된 성리학으로 연구되었다. 이어 에도 시대에는 고잔 승려 출신인 후지와라 세이카와 하야시 라잔에 의해 근세 주자학의 기초가 마련되면서 막부의 관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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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자료번호 : edeah.d_0003_0040_0050